중동 산유국 감산 도미노…정부 “대체 수입선 역량 총동원” [유가 100달러 돌파]
최고가격 지정제 초읽기…시장 개입 천명
유가 담합 단속 등 석유가격 안정화 주력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 관세 패키지 활용
전쟁 이전 수준 유가 회복에 13개월 예상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도미노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전략적 요충지이자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길이 막히면서 저장 공간이 부족해진 중동 산유국들의 감산이 본격화하고 있다.
9일 국제유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특히 이번 미국-이란 전쟁은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이 변수로 떠오르면서 과거 전쟁 때보다 시장 불안이 훨씬 큰 상황이다. 정부는 석유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유례가 없는 강력한 시장 개입 카드인 ‘최고가격 지정제’ 도입 준비를 마치는 등 대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재한 국내 석유 시장 점검을 위한 ‘중동 상황 대응본부’ 회의에서 “석유 가격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한국시간 9일 오전 7시55분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 5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16.5% 오른 배럴당 107.99달러를 가리키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18% 폭등한 107.38달러에 거래중이다.

정부는 범부처 석유시장 점검단을 구성해 정량 미달, 가짜 석유, 가격 담합, 세금 탈루 등 불법행위를 엄중히 단속하고 있으며 2000여개 주요소를 대상으로 특별 현장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또 중동 정세 불안에 따라 산업부는 지난 5일 오후 3시부로 자원안보 위기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중동 상황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비상 상황에 대비해 석유·가스 등 에너지 대체 수입선을 확보하고, 해외 생산분 도입을 추진하는 등 물량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중동 이외 지역에서 원유를 수입해오는 기업에 운송비를 지원하는 등 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원유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33.6%), 미국(17%), 아랍에미리트(11.4%), 이라크(10.4%), 쿠웨이트(8.5%) , 카타르(4.4%) 등 순으로 중동지역이 69.1%로 절대적이다. 천연가스의 중동 의존도는 2019년 44.9%로 절반에 육박했으나 지난해 19.7%까지 낮아진 상태다.
지난해 7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4년간 1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과 맞물리면서 에너지 수급 다변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가 제안했던 미국 루이지애나주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 건설을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후보군에 올려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최고가격 지정제’를 언급한 후 주무부처인 산업부에서 문신학 차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구체적인 제도 시행 방안을 설계하고 있다. 최고가격 지정제는 석유사업법(23조)에 따라 정부는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석유 가격을 통제할 수 있다.
김 장관은 전날 취재진을 만나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와 관련해서는 “거의 준비를 다 마쳤다”면서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고, 시행하게 되면 바로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 시행 시 일각에서 우려하는 재정 부담 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그런 내용들도 이미 준비를 다 마쳤다”며 “발표 시점에 상세한 내용을 같이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은 전쟁이 끝나고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선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도 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은 단기간에 급등했다.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까지 약 1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인 2021년 12월 2일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9.13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65.57달러 였다.
전쟁이 본격 개시되기 직전인 2022년 2월 3일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7.46달러, WTI는 92.31달러였다. 그러나 2월 24일 전쟁 발발로 공급 불안이 확산되면서 국제유가는 급등해 2022년 3월 9일 두바이유 127.86달러, WTI 123.70달러까지 치솟았다. 2021년 12월 초 대비 두바이유는 약 85%, WTI는 약 88% 급등한 수치다.
급등한 유가가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는 1년 이상 소요됐다. 두바이유는 2023년 3월 20일 70.31달러), WTI는 같은해 3월 15일 67.61달러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시점으로부터 이전으로 회복되는데 약 13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주유소 가격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직후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전쟁 직전인 2022년 1월 리터당 1635.22원이었던 휘발유 가격(전국 평균)은 2월 1714.61원, 3월 1938.5원으로 치솟았으며, 6월 2084.0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2021년 12월 1646.37원 대비 약 26.6% 폭등한 수치다.
이후 점진적으로 하락세를 보이며 그해 10월 1666.65원까지 내려앉으며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이어 12월에는 1563.7원을 기록, 전쟁 발발(2월) 이후 약 10개월 만에 전쟁 이전 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회복됐다.
전쟁 충격이 완화된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70~90달러, 국내 휘발유가격은 리터당 1550~1650원대에서 보합을 유지했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2024년 평균 1646.71원, 2025년 평균 1680.29원 수준으로 국제유가와 비슷한 흐름을 형성했다.
배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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