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말 대단한 팀이다" 이젠 대만이 예의 차린다…감독-선수 모두 승자의 여유, 이것이 한국야구의 진짜 현실

[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윤욱재 기자] 아직 '경우의 수'는 남았지만 충격적인 결과인 것은 사실이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 대표팀은 8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대만과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4-5로 석패했다.
애초부터 한국은 대만전에 올인했다. 냉정히 말해 '우승후보' 일본을 넘어설 확률은 크지 않았다. 때문에 한국은 현실적인 시각에서 조 2위를 노려야 했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여긴 대만을 상대로 류현진, 곽빈, 데인 더닝 등 주축 투수들을 쏟아 붓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패배라는 결과와 마주했으니 더욱 충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때 한국야구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야구를 호령하는 '야구 강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수 아래'로 여겼던 대만에게도 밀리는 신세가 됐다.
특히 한국은 이전까지 WBC에서 대만을 상대로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2006년 WBC 예선에서 대만을 2-0으로 이겼던 한국은 2009년 WBC 1라운드에서는 9-0으로 완파했다. 2013년 WBC 1라운드에서도 3-2 신승을 거뒀던 한국은 2017년 WBC 1라운드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11-8로 승리했다.
양팀의 희비가 엇갈린 만큼 기자회견장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사실 현재 확률적으로 한국보다 대만이 1라운드에서 탈락할 확률이 더 큰 상황. 그러나 대만은 접전 끝에 한국을 이기면서 '축제 분위기'가 됐다. 도쿄돔에는 4만 여명의 대만 관중이 몰려 마치 홈 구장을 연상케했다.
정하오쥐 대만 감독은 일본에 0-13 콜드게임 대패를 당할 때만 해도 벤치에서 눈물을 훔쳤으나 한국을 이기고 나서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마치 승자의 품격을 보여주듯 한국야구를 존중하는 메시지까지 담은 것이다.
"굉장히 재밌는 경기가 펼쳐졌다. 즐겁기도 하면서 힘든 경기이기도 했다"라는 정하오쥐 감독은 "우리에게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봤지만 우리가 유리한 입장이 아닌 것도 알고 있었다. 선수들 모두 경기 초반부터 각자 맡은 역할을 잘 해줬다. 그래서 결국 이길 수 있었고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나타냈다.


정하오쥐 감독은 WBC에서 한국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것에 대해서는 "한국은 정말 대단한 팀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한국과 경기할 때마다 집중했고 압박도 있었지만 오늘은 경기에 집중해서 이겼다는 말씀만 드릴 수 있다"라며 한국에 예의를 차리는 '승자의 여유'도 보였다.
대만 주장 천제셴도 마찬가지. "어릴 적부터 한국과 경기하는 것을 봤다. 지금까지 WBC에서 한국을 상대로 이긴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라는 천제셴은 "대만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사명감에 벅찼다. 오늘은 운도 있고 실력도 있었기에 한국을 이길 수 있었다. 젊은 선수들은 자신감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한국은 상대에게 부담감을 줄 수 있는 강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훌륭한 상대이지만 국제대회에서 또 상대할 때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간절한 승리였다. 천제셴은 "나는 부상으로 출전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꼭 이기고 싶었고 동료들이 좋은 결과를 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만에서 온 팬들의 응원을 들었고 그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정말 눈물이 났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팬들도 포기하지 않았다. 도쿄돔이 우리의 홈 구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대만은 1라운드 일정을 마친 상태다. 9일 한국-호주전 결과에 따라 2라운드 진출의 운명이 정해진다.
정하오쥐 감독은 "가족과 함께 편하게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물론 아직 2라운드에 올라갈 기회는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것이고 우리는 멘탈을 계속 유지하면서 마이애미에 간다는 목표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천제셴도 "오랫동안 쉬지 못했다.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남은 경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신이 대만에 좋은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째 우리보다 대만이 더 홀가분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승자의 여유'가 고스란히 묻어났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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