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돈으로 살펴보는 에너지전환의 흐름
에너지전환을 위한 각국의 노력은 해마다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나 해마다 감소하는 전력의 원단위 배출량 외에 다른 여러 지표로도 확인됩니다. 발전량이나 배출량이 '그간의 노력'을 담아낸 결과라면, 정부와 민간의 투자는 '앞으로의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꼽힙니다. IEA(International Energy Agency, 국제에너지기구)는 최근 에너지 관련 투자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에너지 분야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의 R&D 지출은 파리협정의 해인 2015년 이래 2023년까지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 2024년과 2025년 소폭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총액 차원에선 약한 감소세를 보였다 할지라도, 세부 지역별로 보면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2015년만 하더라도 유럽(93억달러)-북미(88억달러)-중국(73억달러) 순이었던 에너지 R&D 지출은 2021년 유럽(158억달러)-중국(153억달러)-북미(111억달러)로 순위 변동이 한 차례 일어났습니다. 중국의 R&D 투자 확대에 대응해 유럽은 이 규모를 2023년 211억달러까지 늘렸고, 미국 등 북미 국가들 또한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입했지만 중국의 양적 팽창을 넘어서긴 역부족이었죠. 결국 2025년, 순위는 중국(179억달러)-유럽(174억달러)-북미(116억달러)로 또 다시 바뀌게 됐습니다. 유럽의 에너지 분야 R&D 지출이 2023년 211억달러에서 2024년 178억달러, 2025년 174억달러로 주춤해진 사이, 중국은 계속해서 이를 늘려 10년새 정부 지출이 2.5배가 된 겁니다.
한편,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주요 선진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의 에너지 R&D 분야 정부 지출은 2025년 4개국 합산 32억달러에 그쳤습니다. 10년 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기술혁신' 업종에 대한 투자는 지난 2025년에도 전체 VC 투자의 6.8%를 차지하며 2015년 비중의 2.6배를 기록했습니다. 어느정도 진전을 이뤄낸 에너지 기술 상용화 및 보급 기업에 대해선 투자가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이산화탄소 포집·제거나 핵심 광물, 차세대 지열 에너지, 저공해 생산기술, 항공우주, 핵분열 및 핵융합 등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는 증가한 덕분입니다. 2015~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들 혁신 분야 기업에 대한 투자는 전체 에너지 VC 투자에서 5%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IEA는 이들 7개 분야에 대한 투자 증가가 2021년 이후 전기 모빌리티 VC 투자 감소분을 그나마 상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특허출원 비중이 20여년간 줄어든 분야도 있습니다. 바로, 화석연료 외의 기타 저배출 에너지와 관련한 특허와 수소 및 연료전지에 대한 특허입니다. 금세기 초만 하더라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전기화로의 전환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과도기적인 '중간 단계의 에너지'를 찾기 위한 연구가 많았지만, 재생에너지의 확산이 인류의 에너지 역사상 전에 본 적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고, 전기화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중간 단계'의 필요성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됩니다. 더불어 수소 및 연료전지의 경우, 초창기 모빌리티 분야를 중심으로 수소의 쓰임을 찾다 2010년 이후부터 BEV가 미래 모빌리티의 '지배적 디자인'으로 등장한 점과 그린, 핑크 등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기술개발 이후 해당 기술을 적용한 설비의 대형화(Scale-up)이나 대중화가 당초 예측보다 더뎌진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됩니다.
전체 에너지 관련 특허 가운데 배터리 관련 특허가 전례 없이 급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IEA는 중국을 꼽았습니다. 2010년에만 하더라도, 일본의 특허가 전체 양극재 특허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2022년엔 일본의 비중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반대로 중국의 비중은 4%에서 4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겁니다. 이런 IEA의 설명에 주요국의 에너지 관련 투자와 특허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민간 차원의 투자인 VC의 에너지 R&D 지출은 일본을 제외하곤 공히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해마다 들쭐날쭉했다곤 하나, 비교 대상 5개국 가운데 VC의 에너지 R&D 투자가 가장 많았던 영국(2024년 기준 20억 300만달러)뿐 아니라 프랑스(14억 5,300만달러), 캐나다(7억 8,100만달러), 한국(6,600만달러) 모두 2021~2022년만 못 한 수준을 보였죠. 이들 중 유일하게 일본에서만 2021년 7,700만달러에서 2024년 3억 4,600만달러로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북미와 유럽, 아시아에서 이러한 투자 변화에 따른 특허의 변화도 나타났을까. IPF(International Patent Families, 국제특허패밀리) 건수 기준으론 2015~2023년 까지 유의미한 비교가 가능한 5개국(한국, 일본, 중국, 미국, 독일)과 유럽 전체를 함께 비교해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서 IEA의 분석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급부상'입니다. 5개국 중 가장 적은 에너지 관련 특허출원(약 4,000IPF)을 기록했던 2015년과 달리, 2017년 한국과 독일을 넘어서고, 2020년엔 일본을, 2021년엔 유럽 전체와 미국을 넘어서 2023년 약 19,000IPF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로 격차를 벌린 것이죠. IEA는 “지난 10년간 전 세계 기업 에너지 R&D 투자 증가의 대부분은 중국 기업의 투자”라며 “2020년~2023년 사이 중국의 에너지 관련 특허출원은 거의 배가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증가세는 에너지 저장과 산업부문의 에너지 효율 분야에 대한 특허 덕분으로, 앞으로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 개선, kW급 고체 냉방 시스템, 세계 최초의 50MW급 부유식 해상풍력 등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반면 2015년, 약 1만 2,000IPF로 이들 국가 가운데 압도적 1위였던 미국은 점차 에너지 관련 특허출원이 줄어들었고, 독일 한 나라뿐 아니라 전체 유럽 차원에서도 IPF는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그나마 '현상 유지' 또는 '느린 성장세'를 보인 것은 일본(2015년 약 8,000IPF → 2023년 약 9,000IPF)과 한국(2015년 약 4,000IPF → 2023년 약 5,000IPF)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그리드와 관련한 스타트업은 꾸준한 신규 설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배터리 관련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2017년이 정점(스마트 그리드 관련 스타트업 41곳, 기타 그리드 하드웨어 관련 스타트업 32곳)이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관련 스타트업의 창업이 이어진 것이죠. 그 결과, 2024년 기준 스마트 그리드(11곳)-배터리(9곳)-기타 그리드 하드웨어(7곳)-기타 에너지 저장(4곳) 순의 분포를 보이게 됐습니다.
정부 차원의 투자규모에서 중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것과 달리, 민간 시장의 역동성을 나타내는 스타트업 기업의 움직임에 있어선 여전히 북미와 유럽이 주도적인 모습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에너지 스타트업 기업을 향한 VC 투자 규모는 300억달러를 조금 상회했습니다. 중국의 확장에 맞서 에너지 혁신 분야의 패권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의 미국에 대해 IEA는 “에너지 R&D 우선순위의 재조정이 진행중이나 에너지 혁신 생태계의 근본적인 강점들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른 나라들보다 정부-기업-VC 투자자 간 에너지 혁신 투자가 더욱 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며 “2025년 전 세계 VC 투자액의 50% 가까이가 미국 스타트업에 유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대부분 미국 투자자들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투자자도, 그 투자를 받을 스타트업도 북미 지역에 여전히 다수 위치한 덕분입니다. 여전히 미국은 에너지 VC에 있어 1차 조달원(primary source)인 동시에 최종 투자 목적지(destination)인 셈이죠.
신규 특허출원 건수는 감소세에 접어들었더라도, 이미 첫 투자를 유치한 전 세계 에너지 스타트업의 40% 이상이 위치한 유럽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IEA는 “유럽은 에너지 분야 R&D에 꾸준히 GDP의 0.1%를 투자해왔다”며 “유럽 스타트업은 2025년 전 세계 에너지 VC 투자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지역이 아닌 기술을 두고 살펴볼 때, 여전히 배터리나 전기차 등 모빌리티 관련 기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는 점차 변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IEA는 “이들 영역의 기술이 점차 성숙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VC 투자 의존도는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TRL(Technology Readiness Level, 기술 성숙도, 기술준비수준) 4~6 사이 가장 집중되는 VC인 만큼, 이미 실증 단계를 넘어선 기술은 VC 투자에서 실질적인 융자나 산업계의 직접적인 투자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2025년 미국에선 VC 투자의 상당 부분이 핵분열 및 핵융합 분야에 집중됐고, 유럽에선 수소와 에너지 효율, 전력망 관련 스타트업들이 전체 VC 투자의 상당 비중을 차지했다는 설명입니다. 반면,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 중심으론 여전히 수송부문에 대한 VC 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이러한 기술과 그 기술에 대한 투자의 변화로 앞으로의 에너지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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