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이 감탄한 '천혜의 요새' 한국인 최초로 오르다 [미국 동부 메릴랜드 하이츠]

정영훈 외대산악부OB 2026. 3. 9. 07: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메릴랜드 하이츠를 완등하면 상으로 주어지는 하퍼스 페리 풍경. 사진 게티이미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송골매다. 최대 시속 340km라고 한다. 먹이를 사냥할 때 나오는 속도다. 송골매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몰렸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DDT와 같은 농약이 송골매의 알껍데기를 얇게 만들어 개체수가 감소되었다. 1900년대 중반 농약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송골매는 절멸위기에 처했었다.

현재 개체수가 많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보호가 필요한 새다. 이렇게 귀한 송골매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웨스트버지니아의 암벽지대다. 메릴랜드 하이츠Maryland Heights가 그중 대표적인 송골매의 주요 서식지다.

메릴랜드 하이츠, 한국인 최초 등정을 노리다

워싱턴 인근 한인 클라이머들이 만든 모임 포카POCA·Potomac Climbers' Academy에서 메릴랜드 하이츠를 찾았다. 약 1년간 동부 지역 곳곳의 암장을 매주 찾아다니며 등반을 하다가 시즌이 마감될 무렵 대미를 장식할 곳을 심사숙고한 끝에 웨스트버지니아의 하퍼스 페리Happer's Ferry라는 유서 깊은 도시에 우뚝 솟아 있는 암벽 '메릴랜드 하이츠'가 낙첨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북한산 백운대 옆 인수봉과 같은 상징적인 존재다.

하퍼스 페리 마을에서 하산주 마시러 펍으로 향하는 클라이머들.

워싱턴 인근에는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넌도어가 가까이 있어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쉽게 아름다운 산을 찾아갈 수 있다. 하퍼스 페리 또한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하페스 페리에 인접한 '메릴랜드 하이츠'도 걸어서 오를 수 있는 루트가 뒤편으로 나 있어 많은 등산인들이 오른다. 그렇지만 메릴랜드 하이츠를 상징하는 정면 암벽을 올라 본 한인은 여러 기록을 뒤져보고 수소문을 해봐도 아직 없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우리들의 등반은 한인 산악인 처음으로 오르는 등반일 수도 있다. 조금 있는 체하자면 '한국 초등'인 셈이다.

메릴랜드 하이츠의 높이는 약 500m다. 그리고 병풍 같은 바위의 수직 길이는 100m다.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곳을 최초로 올랐던 사람들은 남북전쟁 때 북부의 군인들이었다. 산에 올라서면 시야를 가리지 않는 조망이 펼쳐진다. 산 정상이 메릴랜드,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가 만나는 삼각지대인 터라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이곳을 점령하고 있으면 버지니아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막아내고 펜실베이니아와 수도 워싱턴을 지키는 데 매우 수월했다.

벽을 올려다보며 루트 파인딩.

북군의 병사들은 산 정상에 요새를 세우고 수많은 대포를 올려다 놓았다. 산의 경사가 매우 가파른 이곳에 그 많은 물자를 올려놓고 요새를 구축한 북군 병사들의 노력이 대단했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이곳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이곳 하페스 페리를 방문하고, 걸어서 메릴래드 하이츠 요새를 찾아가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다만 산 정상에 있는 요새까지 올라가는 데는 실패했다. 경사가 워낙 가파르고 산세가 험준해 도저히 오를 수 없다고 판단해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요새를 만들고 지킨 수많은 무명의 북군 병사들을 제외하면 에이브러햄 링컨이 실명을 알리고 등반을 시도했던 최초의 사람으로 기록돼 있다.

메릴랜드 하이츠 암벽은 셰넌도어 강으로부터 수직으로 솟아 있다. 등반가들은 하퍼스 페리 기차역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다리를 건넌다. 도보로 10분이면 암벽 밑에 도착할 수 있다. 이곳의 암벽이 본격적인 인기등반지역이 된 것은 1970년대다. 이 지역의 유명 등산가 랍 사보에Rob Savoye가 이 암벽을 열심히 올랐다고 한다. 암벽의 유명 루트 대부분을 그가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미 동부지역의 유명한 산악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한편으로는 오픈 소스 컴퓨팅FOSS·Free and Open Source Software의 개척자로도 유명하다. 잘 알려진 리눅스 생태계 기반을 다진 핵심적인 인물이다. 일에서도 등반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사람이다.

메릴랜드 하이츠 사인 월.

지워도 지워도 계속 생기는 '고스트사인' 옆으로 올라

우리 팀이 오르고자 하는 루트도 그가 개척했다. 이곳의 상징 같은 바위길이다. '하드 업Hard up'과 'D루트'다. 전날 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바위가 미끄러울 것을 예상은 했지만 D루트는 아예 위로 물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비록 암벽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 하려니 접근이 쉽지 않았다.

반면 '하드 업'은 바위 정면 직벽에 개척된 루트라 폭포가 형성되진 않았다. 바위에 거대하게 새겨져 있었던 사인 옆으로 직상하는 코스다. 수직을 넘어 약간의 오버행으로 고도감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곳이다. 총 4피치로 이루어져 있고 피치마다 모두 크럭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루트는 최기용(록파티 산악회) 그리고 하드 업은 크리스(버지니아대학 가정의학 전문의)가 각각 맡아 오르기로 했다.

한편 메릴랜드 하이츠 암벽은 사인 월Sign Wall이라고도 불린다. 이 바위 정면에 큰 글씨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에 "Mennen's Borated Talcum Toilet Power" 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Menne라는 회사가 만든 붕산성분의 화장용 파우더를 홍보한 문구다. 지금으로 따지면 베이비파우더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강 건너 하페스 페리 마을 사람들과 바위 아래로 지나는 B&O 철도Baltimore&Ohio 기차 승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드 업 루트를 등반하고 있는 최기용.

B&O 철도는 이름에서 보듯이 볼티모어와 오하이오를 오가는 기차다. 지금도 하루에 수십 차례 기차가 지나간다. 수도 워싱턴으로 오가는 통근 기차는 물론 서부에서부터 오는 화물차도 있다. 기차 애호가들은 등산이나 등반은 관심이 없고 오직 기차를 보러 이곳에 오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는 화물기차는 아무리 짧아도 100량 이상이다. 기차가 접근하고 있다는 기적이 울리면 그 후로 10분 이상 기차 행렬을 볼 수 있다. 기차의 형태도 다양하다. 곡물을 실은 기차는 천장이 닫혀 있다. 석유나 천역가스가 담긴 것은 둥그런 탱크 모양이다. 광물을 실은 기차는 뚜껑이 열려 있어 쉽게 싣고 내릴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컨테이너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화차에 얹혀 있다. 등반하다가 발아래 터널로 들어가는 기차 행렬은 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이 사인은 1960년대 하퍼스 페리가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국립공원이 되면서 페인트 자국을 몽땅 지워야만 했다.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인을 지우는 작업에 동참했다. 그렇게 작업이 금방 끝나고 모두가 사인을 다 지웠다고 생각하고 해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구와 흔적이 다시 살아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희미하게 사인이 보일 정도다. 이후로도 이 사인은 지워도 사라졌다 다시 살아나는 유령 같은 존재라 하여 '고스트 사인Ghost Sign'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드 업 루트 완등 후.

등반하다보면 옆으로 송골매 지나

암벽등반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단 국립공원사무소에 신고해야만 한다. 혹시라도 있을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신고 없이 오르다가 적발되면 낭패다. 벌금이 수백 달러에 달하고 즉시 등반 퇴거 조치를 당한다. 연방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에 심각성에 따라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신고도 어렵지 않다. 사무소를 방문하자 담당자가 서류작성과 서명 따위는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의 동선만 파악하는 것으로 허가를 대신했다.

등반을 신고제로 운영하는 건 등반 시기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한다. 매년 2월부터 7월까지는 등반이 허가되지 않는다. 이곳의 터줏대감 송골매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송골매의 산란기와 부화기에는 등반을 할 수 없다. 이곳은 미 동부 어느 곳보다도 많은 송골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가파른 암벽은 송골매의 서식지로 안성맞춤이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할 수 있고 조망이 좋아 먹이 사냥에 유리하다. 그래서 암벽을 오르면서 옆을 스쳐 지나 활공하는 송골매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송골매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자연환경이 좋다는 것이다. 이곳의 산은 유난히 푸르다. 그리고 산허리를 감고 도는 셰넌도어 강바닥이 보일 만큼 맑다. 강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이곳은 민물고둥의 천국이다. 강에 들어서면 발에 밟힐 정도로 많다. 고둥은 일급수에 산다. 눈을 물에 대고 보면 바위에 많은 고둥이 붙어 있다. 바위를 스윽 문지르면 손에 고둥이 가득하다.

오래 전 이곳으로 고둥 사냥을 나온 중국인이 신문에 대서특필된 적이 있다. 그때 미국 사람들은 고둥이나 재첩을 먹지 않았다. 워낙 식재료가 싸고 고기가 흔하기 때문에 굳이 발품을 팔고 땀을 흘리면서 먹거리를 채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연의 맛을 몰랐다.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달랐다. 식재료마다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을 안다. 중국인들도 민물고둥의 맛을 잘 알고 있었는지 이곳에 단체로 고둥을 따러 왔다. 일단 따러 온 것 자체는 옛날임을 감안한다고 쳐도 적당히 먹을 만큼 잡았어야 했다. 강에 씨가 마를 정도로 고둥을 싹쓸이하면서 엄청난 문제가 됐다. 각자 포대자루 가득 고둥을 쓸어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그래서 비슷한 시기 도로 옆에 심어놓은 두릅을 따서 팔다가 걸린 한국인처럼 그들도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했다.

미국의 고속도로 옆에는 두릅나무가 많이 자란다. 도로관리국에서 일부러 심어 놓은 것이다. 두릅나무 가시는 도로로 접근하려는 동물, 특히 사슴을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사슴은 주요 교통사고 원인이다. 특히 한 번 부딪치면 대형 사고란 특징도 있다.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로 옆에 심어놓은 두릅나무는 절대 건들면 안 되는 방어선이다. 미국 사람들은 두릅 순을 따는 것은 나무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채취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어쨌든 고둥을 포대자루에 담아 온 중국사람 그리고 두릅을 따서 돈을 벌고자 했던 한국사람 모두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기사를 접할 수 없는 걸 보니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환경에 대한 의식이 많이 성장한 듯하다.

쉘터에서 크리스(의사), 최기용(록파티), 변준범(고대산악회).

아시아인만 환경보호의식이 약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본디 셰넌도어와 포토맥 강에는 철갑상어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남획과 수질오염으로 이제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셰넌도어 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은 철갑상어가 서식하기에 좋았다. 많은 철갑상어가 산란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다. 대서양에서 생활하다가 강으로 올라 온 철갑상어는 잡기 쉬운 물고기였다. 육질은 다른 물고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쫀득하고 맛있다. 쇠고기 최고 부위보다 맛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품고 있는 알은 '캐비어'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식가들을 흥분시킨다. 그래서 절명위기를 겪고 있는 슬픈 물고기다.

몇 년에 한 번꼴로 셰넌도어 강에서 유영하는 철갑상어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볼 수 있다. 철갑상어 복원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지만 송골매만큼 좋은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다음 세대가 이곳 메릴랜드 하이츠를 등반할 때에는 하늘에 송골매가 가득하고 강에는 역류하는 철갑상어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