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1234쪽 판결문 분석··· 지귀연의 기이한 요약

2월19일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내란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 재판 생중계 방송을 시청하고 나서 화가 난 쪽은 윤어게인 세력만이 아니다. 무기징역이라는 ‘낮은’ 형량 외에, 지귀연 판사가 선고 요지를 낭독하며 설명한 법리를 겨냥한 비판도 나왔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사법심사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친위 쿠데타 실패를 시민이 아닌 윤석열의 공으로 보았다’ 등, 재판부의 논리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한 것’ 외에 달리 건질 게 없는 판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원인을 재판부의 ‘전력’과 그로 인한 선입견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2월19일 당일 지 판사가 낭독한 선고 요지, 직후 배포된 재판부의 설명 자료에는 의아한 요소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후 공개된 판결문 전문은 사뭇 다르다. 판결문 핵심 논지는 선고 요지에서 빠졌고, 도리어 판결문에 없는 표현이 선고 요지에 들어갔다. 선고 도중 지귀연 판사가 “자세히 적어두었다”고 여러 차례 말한 1234쪽짜리 판결문 전문을 〈시사IN〉이 분석해본 결과, 예상외로 윤석열이 형법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이유가 정연하게 쓰여 있었다. 2024년 12월3일 밤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윤석열의 행위가 어째서 내란인지’를 논증하는 내용이다.
특히 입길에 오른 부분부터 보자.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라는, 2월19일 지 판사가 낭독하고 당일 배포된 재판부 설명 자료에도 포함돼 있던 이 구절이 논란을 빚었다. 윤석열 측의 주장을 길게 인용한 앞의 내용(“사사건건 무리한 탄핵과 예산 삭감 등 정부의 발목을 잡아 반국가세력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국회” 등)과 결합해, ‘목적은 정당할 수 있으나(성경 읽기) 계엄이라는 수단은 잘못(촛불 훔치기)’이라고 읽히기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결문 원문에는 ‘성경’ ‘촛불’ 운운하는 비유 문구 자체가 아예 없다. 판결문과 별개로 지 판사 또는 누군가가 선고 요지 낭독문과 재판부 설명 자료에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에 대해 국회의 ‘거대 야당의 줄탄핵’과 ‘입법 독재’ 따위를 주장한다. 반대 측은 ‘정치적 위기 타개’ ‘장기 집권 도모’ 등의 의혹을 제기한다. 그런데 1심 재판부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동기나 이유, 명분”이 될 수는 있으나 “목적”은 아니다. 내란죄 법리에 따른 목적은 선고 요지에 나와 있고, 판결문에는 더 상세하게 쓰였다. “군대를 보내 국회를 봉쇄함으로써 국회의 활동을 상당 기간 저지하거나 마비시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목적이다.
지귀연 판사는 선고 요지 낭독 중 여러 차례 ‘국회에 군을 보낸 것’이야말로 사건의 “핵심”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계엄 후 국회에 군대만 안 보냈으면 문제가 없단 말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판결문 전문에는 그 상세한 맥락이 쓰여 있다. 1심 재판부가 보기에 ‘군 동원’은, 단순히 물리력을 동반한 군사적 조치라서가 아니라 12·3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헌문란임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내란죄의 요건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형법 제87조)” 것이다.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국헌문란이다(형법 제91조 제2호). 윤석열은 군경을 통해(“강압에 의하여”) 국회(“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이 12·3 내란이다.
‘국회에 군을 보낸 것’이 핵심인 이유
계엄 선포 목적에 주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재판부는 ‘위헌·위법 계엄이 곧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따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이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계엄 선포는 내란’이라고 본다고 해보자. 권력이 국가긴급권을 남용하지 않게 견제하는 효과가 있으나 무수한 의문을 남긴다. 회의록 작성이나 보고 체계 등 비교적 사소한 절차에 흠이 있을 때도 내란이라고 해야 할까? ‘국가비상사태’ 여부에 대한 대통령 판단을 매번 사법부가 재확인하는 건 바람직한가? 사례가 한정적인 상황, 긴박한 상황에 놓인 대통령은 법정 최고 형량까지 받을 수 있는 내란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임에도 (비상계엄) 권한 행사를 주저하거나 고려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요건에서 벗어난 비상계엄 선포는 “탄핵 등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족하”지, 내란 책임을 곧바로 물릴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보았다.

특별히 일탈에 가까운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통치행위)에 대한 사법 자제’는 이미 기존 판례들이 천명하는 원칙이다. 윤어게인 세력 주장과 달리, 통치행위 이론은 ‘계엄은 언제든 대통령 마음대로 선포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두환·노태우 등 12·12 사건 주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보자.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중략) 그 계엄 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96도3376).”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한 계엄이라면 범죄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 선출 권력의 긴급한 판단을 존중하되, 그 남용과 폭주는 막는 법리다.
이번 재판부가 내란의 요건으로 채택한 건 다음과 같은 견해다. “대통령이 비상계엄하에서도 할 수 없는 행위를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중략) 겉으로만 비상계엄 권한을 내세운 것일 뿐 실제로는 헌법과 법률이 비상계엄하에서도 허용하지 않은 권한을 사실상 실력으로 행사하는 것.”
1심 재판부가 보기에, 12·3 비상계엄 선포는 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일개 수단, 껍데기에 불과하다. 윤석열이 “실제 행사”하려던 진짜 목적은 군의 국회 동원이다. 그의 주장처럼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계엄법 제2조 제2항)”이라기에 이 계엄은 이상하다.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도 아니고 병력 동원이 필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실질적인 국무회의 심의 없이” 선포했다. 물론 불법 비상계엄 선포가 곧 내란은 아니다. 그런데 계엄의 위법성이 다른 불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형적으로 비상계엄을 내세운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간접사실”은 될 수 있다고 재판부는 적었다. 불법 계엄을 저질렀다면 그 진정한 목적이 ‘계엄을 핑계로 한 국헌문란’이 아닌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 된다는 의미다.
이 대목을 규명하는 1심 재판부는 수동적이지 않다. 윤석열 일당은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군 투입을 모의했고, 실제 실행에 옮겼다. 최상목 문건의 ‘국가비상 입법기구’는 국회를 대체하는 기구로 의도했다. 무엇보다 계엄 선포 대국민담화에서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몰고,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밝힌 점에서 “국회 활동을 저지하려는 의도와 목적이 명확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라고 썼다. 재판부에 따르면 윤석열이 비상계엄 요건을 어긴 것은 단순 실책이 아니었다. “비상계엄 선포의 목적 자체가 군을 국회로 동원하여 봉쇄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피고인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비상계엄이 군을 통한 국회 무력화의 수단으로 선택되었을까? “군 통수권이 있는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국회를 봉쇄하라는 명령에 군이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란(‘국헌문란 목적 폭동’)의 수단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12·3 비상계엄이라는 조치는 애초 그 법적 요건을 지킬 수가 없었다.
형법 제91조 제2호의 국헌문란(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충족된다. 재판부는 ‘계엄과 군경 투입이 짧은 시간 마무리되었기에 국헌문란, 내란이 아니다’라는 윤석열의 주장도 부인한다. “윤석열은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이 임박하자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하면서까지 의결을 저지하려 했다.” 불법 계엄을 저지할 사실상 유일한 길인 국회 의결을 막은 상황, 국회 봉쇄를 푸는 시기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윤석열의 마음먹기에 따라 (비상계엄) 해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고성 계엄’ ‘호소형 계엄’이었다는 윤석열의 항변은 어떨까. 이 주장은 여론전의 무기가 될 수는 있어도, ‘국헌문란’과 ‘폭동’이 기준인 내란죄 요건을 심사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쟁점이다. 선고 당일 낭독한 요지에는 이에 대한 판단이 없었다. 앞서 살핀 ‘성경-촛불 운운’과 겹쳐, 재판부가 윤석열의 이 주장을 인정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는 나왔다.
의문의 선고 요지, 빛바랜 판결의 가치
하지만 판결문 전문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이른바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여 둔다.” 비상계엄은 국민 기본권과 정부·법원 권한에 막대한 제약을 가한다. 위험 ‘예방’을 이유로 자의적으로 선포한다면 악영향이 너무도 크다. 따라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했을 때”에만 선포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논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단순한 ‘오기’나 ‘실패한 요약’으로 보기에 치명적인, 판결문과 선고 요지(설명 자료)의 불일치가 보인다. 가령 선고 후반부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지귀연 판사는, 윤석열이 내란에서 “물리력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시키려 했던 사정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설명 자료에도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나 해당 부분 판결문 문구는 주어가 ‘윤석열’이 아닌 ‘군·경’이다. “군·경은 (중략)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물리력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 곳곳에서 이런 차이가 보이는 까닭은 아직 외부에서 단정해 짐작하기 어렵다.
헌재의 탄핵 결정문이나 한덕수 1심 선고와 같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도 못한다. 계엄을 저지한 시민, 일부 정치인들의 공을 언급한 대목을 찾을 수 없다. 계엄 준비 기간과 세부 계획을 판단하는 데 핵심 근거인 노상원 수첩도 인정되지 않았다. ‘65세 고령’이나 ‘오랜 기간 공무원으로 봉직’이 양형에 유리한 영향을 주는 것을 두고도 설왕설래한다.
‘비상계엄의 목적’을 밝혀 내란으로 못 박은 대목은 분명 유의미하다. 1심 결론은 ‘내란의 요건을 갖췄으므로 내란’이라는 데서 멈춘다. 노상원 수첩의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윤석열이 ‘장기 집권’이나 ‘독재’를 염두에 뒀다는 의혹을 인정했다면, 즉 ‘계엄 이후’의 생각까지 완전히 밝혀냈다면 형량이 달리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항소심의 과제다. 그러나 ‘어떤 배경과 동기에서든 국헌문란은 곧 내란’이라는 판결은 미래의 권력자에게 그 자체로 교훈이 된다. 설령 사리사욕이 아닌 애국심의 발로라 강변해도, 어떤 이유에서든 국회 무력화는 내란죄를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각종 논란을 남긴 ‘고구마 판결’의 이런 가치는, 선고 당일 다수 국민이 생중계로 접한 재판부의 형편없는 요약 탓에 당장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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