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사람들은 나를 '망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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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망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다.
망고를 처음 만난 곳은 아프리카였다. 막연히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모 신문사에서 모집하던 자원봉사 활동에 지원했고, 아시아나 중남미 지역에 비해 경쟁률이 낮았던 아프리카 가나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1년 동안 아프리카 가나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난 아프리카 생활은 쉽지 않았다. 자원봉사를 하러 간 곳이었지만, 나는 봉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프리카에 도착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미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선 이상 쉽게 돌아나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가나 생활에 적응해 갔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를 쓰던 시절이었다. 몇 장 찍어 둔 사진마저 모두 버려 지금은 남아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아쉽지만 물건을 남겨 두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어, 아프리카의 기억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다.

내가 지냈던 가나의 수도 아크라는 모래사막처럼 황량한 지대 위에 건물이 세워진, 흙먼지가 날리는 도시였다. 가나 음식은 토마토소스를 넣어 만든 쌀 요리 졸로프와, 곡물을 발효시켜 떡처럼 만든 시큼한 반죽 반쿠에 아주 적은 양의 고기볶음을 얹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채식을 하는 사람이 지내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다행히 과일은 싼 가격으로 양껏 먹을 수 있었다.
껍질을 깎아 놓은 오렌지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파는 강인한 아프리카 여인들이 있었고, 먼지가 가득한 도로 한편에는 과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꼭지를 입술로 깨물어 버리고 쭉 빨아먹는 오렌지, 그리고 생전 처음 직접 본 파파야를 주로 사 먹었다. 파파야는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때문에 막연히 동경하던 과일이었는데, 역시 주황빛의 과육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 흙먼지가 나는 길을 걷다가 커다란 망고를 가득 쌓아 놓고 파는 노점을 발견했다. 아마 그때가 망고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타원형의 녹색 바탕에 군데군데 붉은색이 물든 망고는 크기가 아주 커서 우리가 동남아시아에서 보던 망고의 세 배쯤 되어 보였다.
망고 하나를 사 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피해 방 안에서 몰래 칼로 베어 먹었다. 그 맛이 정말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나눠 먹고 싶었지만, 내가 있던 시설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고 시설에도 규칙이라는 것이 있어 마음대로 간식을 나눠 주기에는 애매한 분위기가 있었다.
가끔 창밖에서 나를 훔쳐보던 아이들에게 망고를 먹는 모습이 들키기도 했지만, 아침 산책 후 시장에 들러 망고를 사 와 혼자 의식을 치르듯이 칼로 잘라 먹는 그 아침의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망고와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 나는 곧 인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인도에서 여행 관련 일을 하며 지내던 우리는 인도인들이 기억하기 쉬운 별명을 하나씩 만들기로 했다. 그때 문득 가나에서 먹던 망고가 떠올라 내 별명을 '망고'로 정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인도 친구들은 물론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를 망고라고 부른다.

망고 하면 인도 망고가 떠오를 정도로 나는 인도의 망고를 좋아한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인도에는 약 26가지 종류의 망고가 있다고 한다. 종류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맛이 나서 나는 점점 더 인도 망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몇 년 뒤 여행 일을 그만두고 홀로 들어간 인도 리시케시에서 나는 망고의 맛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인도의 망고 시즌은 5월부터다. 그때가 되면 거리 곳곳에 망고가 진열되기 시작한다. 망고는 4월에도 나오지만 가격이 비싸서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하우 머치?"라고 묻기만 하며 구경하다가 가격이 떨어지는 5월이 되면 그제야 조금씩 망고에 다가간다.
진한 주황빛 과육에 신맛이 강한 녹색 망고, 흐린 노란색 과육에 달콤한 맛이 도는 노란 망고를 먹다 보면 어느새 푸른색 바탕에 붉은빛이 도는 애플망고가 등장한다. 새콤함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는 애플망고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고 나는 매일 두 개씩 먹었다.
망고를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칼로 깎다 보면 과육이 껍질에 묻어 아깝다. 그래서 꼭지 부분을 입으로 물어 뜯고 쭉 빨아먹는 방식이 가장 편하다. 나중에 거대한 씨가 쏙 빨려 나오고 껍질 안에 남은 과육까지 손으로 눌러 끝까지 먹고 나면, 시원한 망고 주스를 한 잔 마신 듯한 기분이 든다.
망고를 입으로 빨아먹으면 편하긴 하지만 입술 주변에 붉은 알레르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고 하루에 두 개씩 망고를 먹었다. 그래서 인도에서 보내는 5월이면 늘 입술 주위가 붉게 부어 있었다.

망고는 단순히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다. 내게는 행운을 가져다주거나 길을 알려주는 어떤 신호 같은 존재다. 인도에서 처음 배운 요가원도 망고나무 아래에 있었고, 요가 수업 후 인도 홍차 짜이를 마시던 곳도 망고나무 아래 벤치였다. 망고라는 이름의 숙소와 카페, 심지어 망고 부동산까지 내가 애용하는 곳이다.
곳곳에 가지를 넓게 펼친 망고나무는 무더운 날씨에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작은 망고들이 조금씩 자라 색이 변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나무에 매달린 망고가 익어 가면 나는 망고를 한 아름 들고 친구들을 찾아간다. 바닥에 망고를 내려놓고 둘러앉아 함께 망고를 나눠 먹으며 망고 시즌이 시작된 것을 축하한다.
망고는 이렇게 내 삶 가까이에 들어왔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하든 '망고'라는 이름을 붙인다. 망고 요가, 망고 빵집, 망고 요가 트래블. 망고라는 행운의 이름 덕분에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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