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름값이 민심인데 불붙었다…뉴요커 목줄 조인 중동발 'S공포'

뉴욕=심재현 특파원 2026. 3. 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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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가 현대미술관(MoMA) 인근 푸드트럭 '할랄가이즈'. /사진=심재현 특파원

"식자재 물가도 골치 아픈데 기름값까지 불이 붙어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53번가 현대미술관(MoMA) 인근의 명물 푸드트럭 '할랄가이즈'. 부지런히 닭고기와 밥을 담아내는 분주한 손길과 달리 점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푸드트럭 운영 부담이 커진 탓이다.

푸드트럭은 장사를 하는 내내 음식 조리와 보관 등을 위해 휘발유로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점주는 "아직까진 미리 사둔 재고 물량을 쓰고 있지만 다음주부터 새로 기름을 채울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며 "설마 했는데 일주일새 기름값이 이렇게 빨리 오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로 8일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세계의 금융 수도 뉴욕을 흔들기 시작했다. 기름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생존 도구'로 쓰이는 이들에게 유가 급등이 직격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맨해튼 도심 휘발유값 5달러대…유가 상승 불가피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미국 50개 주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3.785ℓ)당 약 3.41달러로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습 전보다 50센트 이상 올랐다. 일주일 사이 상승률이 거의 20%에 육박한다.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비싼 캘리포니아주에선 갤런당 휘발유 평균 가격이 이미 5달러를 넘어섰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서도 일반 휘발유 가격이 전날부터 갤런당 5달러대에 진입했다. 정제 과정이 복잡한 경유 가격은 미 전역 평균이 일주일 만에 3.75달러에서 4.51달러로 0.8달러 가까이 치솟았다.

유가 상승세는 당분간 불가피한 분위기다. 이라크에 이어 쿠웨이트도 이날 원유 감산을 선언하면서 중동 주요 산유국의 '감산 도미노'가 확산할 조짐이다. 유가 급등이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주유소마다 길게 늘어선 줄… 서민 경제 '빨간불'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주유소에서 일반 휘발유가 갤런당 5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사진=심재현 특파원
가파른 유가 상승 여파는 이미 다양한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차량 운행이나 배송에 의존하는 기업에선 중동 분쟁 이후 유가 부담으로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버나 리프트, 도어대시 같은 차량 호출 플랫폼에서 일하는 운전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만난 한 우버 운전자는 "기름값이 이렇게 계속 오르면 실제 손에 쥐는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당분간 우버 운행을 접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으려는 운전자들의 행렬도 길어졌다. 일반 주유소보다 갤런당 0.20~0.30달러가량 저렴한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 주유소에는 이날 하루 종일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다.

뉴저지주 코스트코 주유소에서 만난 한 운전자는 "일주일 전보다 기름을 채우는 데 15달러가 더 들었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운전자는 "지난주 장 보러 왔다가 바빠서 주유를 미뤘는데 지금 와서 보니 후회된다"며 "내일이면 기름값이 또 오를 것 같아 서둘러 왔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긴장… "휘발유 가격이 곧 민심"
자동차가 사실상 필수 생활수단인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민심의 향배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식료품 등 필수 소비재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워싱턴 정가에서는 유가 상승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휘발유 가격 상승을 그대로 둘 경우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감이 크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최근 에너지·경제 관련 참모진에게 휘발유 가격 인하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024년 대선 당시 휘발유 가격을 갤런당 2달러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시장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유가 방어를 위해 2022년 중간선거 전 조 바이든 전 행정부처럼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가능성을 점치지만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하는 '땜질식 처방'은 오히려 시장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가 투자자문사 반센그룹의 데이비드 반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휘발유 가격은 단순한 에너지 비용을 넘어 미국 경제의 혈류와도 같다"며 "치솟는 기름값이 서민 경제는 물론 정치 지형까지 뒤흔드는 거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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