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잡으려다 얼어붙은 빌라 시장···“‘건전 임대’ 늘릴 정책 병행해야”[올앳부동산]

“매물이 많이 나와도 거래는 전멸이에요. 지금 누가 빌라 시장에 들어오겠어요?”
지난 4일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이 밀집한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A씨는 “10년 전 1억4000만원에 거래됐던 역세권 빌라를 1억1000만원까지 낮춰도 문의가 없다”며 “전세사기 이후 매수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다주택자 규제가 더 강해진다는 얘기까지 나오니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목표로 한 다주택자 압박 정책이 서민 임대주택의 주요 공급원인 비아파트 시장을 먼저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아파트 매매시장의 침체는 전·월세 시장 불안과 주거 사다리 약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비아파트 시장에서 다주택자 규제 기준을 ‘보유 주택 수’가 아니라 ‘건전한 임대 운영’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주택 규제 직격탄…비아파트 거래 ‘반토막’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의 연립·다세대 매매 거래량(6일 기준)은 올해 1월 3478건에서 2월 1640건으로 한 달 만에 절반 가량(52.8%) 감소했다. 1년 전 같은 달(2119건)과 비교해도 22.6% 줄어들었다.
정부는 오는 5월10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재개를 결정한 데 이어 임대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연장 제한 등 추가 규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다주택자 압박이 거세지면서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을 떠받치던 투자 수요도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빌라 거래 절벽은 가격 하락 압력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서울 은평구에서 빌라 등 비아파트를 주로 취급하는 공인중개사 B씨는 “빌라는 실제 거주 목적으로 사는 경우는 적고 다주택자들이 투자·임대용으로 매수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지금처럼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면 매물이 나와도 수요가 없어 거래 침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A씨도 “지금도 10세대짜리 신축 빌라 매물을 파는 데 2~3년은 걸리는데, 앞으론 더 쌓이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와 달리 가격 상승세가 미미했던 비아파트 시장까지 다주택 규제의 직격탄을 맞게 된 셈이다. 비아파트 시장은 실거주 매수 수요가 적고 임대사업자와 투자 수요 의존도가 높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전체 가구의 아파트 자가 비율은 36.9%인 반면 비아파트 자가 비율은 20.5%에 그쳤다. 특히 청년 가구의 경우, 아파트 자가 비율이 19.6%인 데 비해 비아파트 자가 비율은 4.5%에 불과했다. 비아파트가 자가 주택보다는 임대 중심 주거 유형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현재 검토되는 등록임대사업자에 대한 대출 연장 제한 등이 시행되면 비아파트 시장의 타격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서울 장기매입 민간임대주택 중 84.3%는 빌라·오피스텔 등 비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사라진 전세, 치솟는 월세…임대차 시장 불안

문제는 비아파트 시장 위축이 곧 임대차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주택자들이 임대로 공급하던 주택을 매물로 내놓으면 그만큼 전·월세 물량이 줄어 전·월세 가격이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주택 시세 하락으로 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되거나 다주택자가 빚을 갚지 못해 빌라·오피스텔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 미반환 등 ‘깡통전세’의 위험이 커질 수도 있다.
2022년 전세사기 여파와 지난해 10·15 대책 등에서의 다주택자 대출 규제 강화 영향이 겹쳐 비아파트 시장 침체와 그에 따른 임대차 가격 불안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연립·다세대 월세가격지수는 올해 1월 103.32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역촌동 공인중개사 C씨는 “5년 전만 해도 보증금 3000만원에 60~70만원 하던 투룸 빌라 월세가 지금은 9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D씨는 “예전에는 작은 원룸에서 시작해 더 넓은 빌라로, 나중에는 아파트로 이동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요즘은 매물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동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전세는 워낙 희귀해 울며 겨자먹기로 반지하를 선택하는 임차인도 있다”고 말했다.
선호도가 높은 신규 빌라 등 주택의 공급도 부족한 상황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아파트 인허가는 3만3061호로 전년 대비 11.4% 감소했다. 착공은 3만1215호로 7.7%, 준공은 3만311호로 28% 줄어 모든 공급 단계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불법 건축이나 과도한 전세가율 등을 걸러낼 기준 마련 필요”
전문가들은 비아파트 시장의 경우 다주택자가 ‘임대 공급자’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다주택자 규제’라는 틀로 시장을 일괄적으로 묶기보다 건전한 임대 공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임대 확대만으로는 전체 가구의 40%에 달하는 임차 가구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파트 가격 안정에 초점을 맞춘 다주택자 규제를 비아파트 시장까지 무차별하게 적용할 경우 임대주택 공급 기반이 위축될 수 있다”면서 “기존 등록임대주택에 대한 보완 등 민간 비아파트 시장에서 저렴하고 우량한 임대 주택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비아파트 시장에서는 다주택자 규제의 기준을 ‘보유 주택 수’가 아니라 ‘건전한 임대 여부’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파트에만 쏠린 수요를 빌라 등으로도 분산될 수 있도록 주거 인프라 개선도 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다주택자’ 자체에 대한 규제 여부가 아니라 불법 건축이나 과도한 전세가율 등 위험 요인을 걸러낼 기준을 만들어 임대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동시에 현재 기피되고 있는 비아파트 자가 수요를 회복시켜, 아파트에만 쏠린 주택 수요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아파트 임대 시장에서 저렴한 주거를 제공할 기관·법인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온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현재 비아파트 임대는 시세 차익을 노린 개인 임대인들이 전세 중심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책대출 등을 통해 전세가율을 낮추고 월세 중심의 안정적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기관·법인 등 제도화된 임대 공급 주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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