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AI·기후위기…‘생명평화’로 나아가야 서로를 살리죠”
60여개 단체 아우르는 첫 대규모 행사
네트워크 조직인 ‘생명평화회의’ 출범

낮은 단계의 목표는 달성이 쉬워 보이지만, ‘저걸 바꾸지 않는 한 이걸 바꿀 수 없는’ 경험을 되풀이하다 보면 목표는 점점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기후·생태의 위기, 전쟁과 폭력, 기술 진화의 위협, 혐오와 차별, 불평등의 심화 등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온갖 병폐들을 포괄할 수 있는 큰 인식 틀을 가다듬는 것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말을 꼽자면 아마도 ‘생명평화’가 아닐까?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 동안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청년문화공간 주(JU)에서 ‘2026 생명평화전환한마당’(생명평화 한마당)이 열린다. 국내에서 근대적 의미의 생명운동이 태동한 지는 4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60여개 단체들이 모여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한마당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2일 이번 행사의 준비위원 중 한명인 유정길(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씨와 세션 기획자로 참여한 김은제(생태적지혜연구소 이사)씨를 만나 생명평화의 가치와 의미, 이번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생명평화는 ‘문명전환’을 이루려는 운동이죠. 같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흩어져서 주로 지역운동 또는 환경운동이란 이름으로 각자 운동을 해왔는데, 이번에 ‘생명평화회의’라는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한마당 행사도 함께 열게 됐습니다.”
생명평화운동에 오래 몸담아온 유정길씨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사회에선 과거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부터 눈 밝은 사람들이 근대적 의미의 생명운동을 태동시켰고, 이는 1992년 ‘리우회의’로 표출한 전세계 환경주의의 흐름 속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살려야 한다’는 ‘살림’의 철학은 우리 생명운동의 고유한 지평이었고, 이후 이는 갖가지 갈등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생명평화’로 나아갔다. 2000년대 중반 5년 동안 발로 전국을 누빈 도법스님의 ‘생명평화탁발순례’는 이 흐름을 대표한다.


환경, 생태, 기후, 지역 운동들엔 기본적으로 생명평화 정신이 스며있지만, 문명전환이란 거대 담론을 의식하기보단 저마다의 활동에 주력하다 보니 “서로의 존재를 알고 눈빛을 나누면서도, 그간 한자리에 모일 계기가 없었다”고 한다. 유씨는 “총체적인 문명 전환의 고려 없이 민주주의든 기후든 개별 문제들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이번에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댐으로써 앞으로 생명평화운동이 본격화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대공약수보단 최소공배수를 찾기 위한 한마당이다. ‘멈추고 □□□□ 전환하라’라는 제목에 “각자 채워 넣어야 할 몫을 찾아보자”는 뜻이 담겼다. 우리가 속박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죽이는 ‘죽임의 문명’을 일단 멈추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더듬어 찾아보자는 것이다. 현재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는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은제씨는 생명평화가 “어떤 개념이라기보단 감각”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예컨대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비건식을 하는 행위는, ‘생명은 숭고하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 같은 당위 때문이라기보단 나와 하나의 관계망으로 연결된 존재들을 좀 더 예민하게 감각하는 데에서 출발한단 것이다.
“어느날 학교에서 ‘제로웨이스트’ 교육을 하는데, 어떤 아이가 ‘쟤는 페트병을 갖고 왔어요’ 하더라고요. 각자의 환경과 조건이 있는데, ‘좋은 일 한다’는 게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명평화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자신과 연결된 것들을 좀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 반대는 단절, 즉 감각하지 않으려는 태도고요.”

첫 생명평화 한마당이 최초의 ‘기후정부’를 표명하는 이재명 정부 시기에 열리는 것은 상징적이다. 기후 문제에 대해 현재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지만, 생명평화운동은 더 큰 차원의 전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이재명 정부는 과거 정부들보다는 낫지만,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여전히 성장·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데이터센터·반도체 등에 집중해 에너지 생산·소비를 늘리거나 ‘탈탄소’ 명분으로 핵발전(원전)을 짓겠다고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김씨는 “주식시장 ‘불장’에 대한 대중의 환호에서 보듯, 언제까지나 무한히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데 이 정부의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성장이 중요한 가치로 전달되면서 기술과 자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속에 그것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감각은 점점 흐려진다”고 짚었다.
한마당 프로그램들을 보면, 남북관계·가자 전쟁 등 국제질서부터 인공지능, 동물 정치, 농사와 먹거리, 혐오와 단절, 탈성장과 커먼즈 등 다채로운 주제들을 아우른다. 이에 대해 유씨는 “거칠게 말해 생명평화 운동은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판단한다. 서로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관점이 지속해서 더 큰 확장성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미래 사회의 중요 변수인 인공지능의 경우, 뭇생명을 살리는 구실을 할 것인지 죽이는 일을 할 것인지 따져 봄으로써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열린 ‘사물의 의회’ 행사에 참여했던 경험을 말하며, 이번 한마당에도 관련 발표·토론이 있다고 소개했다. 사물의 의회는 시민 100명이 비인간 그룹(대기·해양·산림·동물·기술)과 인간 그룹(기업인·노동자·농민·미래세대·사회적 약자)의 대변인이 되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논의했던 실험적 행사다. 당시 ‘기업인’을 대변했던 김씨는 “그 뒤로도 내가 아닌 무언가를 대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이처럼 끊어진 것 같은 연결을 되살릴 수 있게 ‘배치를 바꿔보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에 ‘생명평화회의’가 출범하니, 앞으로 한마당도 정례화될 가능성이 있다. 유씨는 “상반기에 한마당, 하반기에 축제 등 1년에 두 번씩 대규모 행사를 계속 열어볼까 한다”고 말했다. 특히 “생명운동의 현장은 기본적으로 마을”이라며, 각 지역에서도 연동된 활동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아이에게 좋은 공동체를 물려주는 게 꿈”이라는 김씨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려면 나와 연결된 다른 존재의 고통을 무디지 않게 감각하는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앞으로 생명평화운동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역량을 키울 계기를 제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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