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은 생각보다 큰 나라… 동북아 문제만 걱정 말고 세계 리더 될 기회 찾아야”

“한국을 50번 넘게 방문했지만, 시시각각 빠르게 발전하는 풍경에 갈 때마다 감탄합니다. 한국은 본인들 생각보다 더 큰 나라입니다. 한반도·동북아 등 지역 문제만 걱정하지 말고 세계 리더가 될 기회를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지난 5일 사무실에서 본지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2000년부터 CSIS를 이끌면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 햄리 소장은 오는 5월 26년만에 퇴임할 예정이다. CSIS는 현재 그의 후임을 찾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이르면 3월 안에 차기 소장 인선에 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햄리는 20년 넘게 천착한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동맹의 가장 큰 위기 요인”이라 했다.
- CSIS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 중 하나로 키웠다.
“우리 고객은 정부, 기업, 재단, 개인 등을 아우른다. CSIS는 컨설팅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객관적인 분석을 하는데, 때로는 싫어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가치는 정직한 평가를 제공한다는 신뢰에서 나온다. 인재를 채용하면 믿고 맡기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직원들에게 무얼 쓰고, 어떻게 생각할지 지시하지 않는다. 지난 26년 동안 내가 직원에게 다시 검토하라고 말한 적은 단 한번 밖에 없었다.”
- CSIS는 한반도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했다.
“상원에서 젊은 직원으로 일하던 38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해 한국을 사랑하게 됐고 50번 넘게 방문했다. 나는 근면함과 성실함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한국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한국 군대는 세계에서 4~5번째로 훌륭한데, 나는 그들에게 내 목숨을 맡길 수도 있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땐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변화가 반드시 올 것임을 느꼈다. 나는 법치주의, 적법 절차, 시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정부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한국은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나라다. 아시아 대륙에서 민주주의 깃발을 들고 있는 선두 주자다.”

- 한국의 여러 대통령과도 교류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이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청와대에서 만난 박 대통령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는데, 나는 ‘한국은 비확산 분야에서 모범적인 나라지만 리더는 아니다’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당시 외교부에 비확산 담당 부서도 없었고 한국 정부가 원자력 정책을 우선순위로 삼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박 대통령이 내 제안을 곧바로 행동에 옮겨 그에 대한 인상이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CSIS에서 연설했는데.
“이 대통령을 알지 못했고, 대선 직전인 2022년 4월 처음 만났다. 예의상 인사만 하는 자리라 생각했는데 면담이 90분이나 진행됐다. 보좌진이 많았는데도 이 대통령이 직접 메모를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며 ‘이 사람은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보통 한국 정치인을 만나면 자기가 어떤 신념을 갖고 있고, 어떤 일을 하겠다 일장 연설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깊이 있는 질문을 했고, 얘기를 경청하며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면 눈이 반짝이면서 반응하더라. 그는 3루에서 태어난 것(금수저)도 아니고, 아예 경기장 더그아웃에도 못 들어갔던 성장 배경을 갖고 있지 않나. 그런데 대통령이 됐으니 이건 한국의 성장 스토리 그 자체다.”
- 돌이켜보면 동맹의 정점과 저점은 언제였나.
“어느 정부 때도 다 순탄한 시기와 고비가 있었다. 이건 한미가 진정한 동맹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월감을 보이며 ‘한국은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논쟁을 멈추고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한국이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파트너로 미국을 초대했다고 생각한다. 한미 관계가 가끔 삐걱거리기는 했고 갈등의 순간도 있었지만 서로 필요로 하고 상호 이익이 된다는 인식이 작은 다툼이나 갈등에 앞섰다.”
- 앞으로 한미 동맹에 우려가 될만한 요소는.
“한미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그렇다면 북한을 침공해 핵무기를 제거하거나 아니면 억지력을 갖추거나 두 가지 선택지가 남는다. 전자는 핵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럼 유일한 선택지는 억지력을 갖추는 것인데,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나 친구들은 ‘우리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를 믿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 핵 억지력을 사용하면 미국도 북한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는데 과연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이게 동맹이 직면한 진짜 위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면 자체적으로 억지력을 갖출 수밖에 없는데, 핵무기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 ‘미국을 신뢰할 수 있다’고 재확인시키는 것이 모두에 나은 방법이다.”
- 자유주의 질서가 흔들리는 격변기다.
“미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베네수엘라 모두 군사력을 동원해 상황을 바꾸려 했지만 진정한 개혁을 위한 깊이 있는 조치는 없었다.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를 축출했지만 나머지 정부는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나.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정권이 후원하는 폭력배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란 역시 전략이 뭔지 이해가 안 간다. 결국 그 나라를 침공해 점령하고 미국이 원하는 새 정부를 세울 사람을 직접 선택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과연 (트럼프가) 그런 일을 할까? 유엔이나 G20(20국)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유럽 중심인 G7에 한국은 포함돼 있지 않다. 결국 더 강해지는 수 밖에 없다.”

- 한·미·일 협력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트럼프가 국제 관계를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한·미·일 세 나라가 함께할 때 훨씬 더 낫다는 강한 인식을 갖고 있다. 한일 사이에 고통스러운 역사를 알고 있지만, 세 나라가 계속해서 협력하면 모두의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다. 이 대통령이 먼저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일 정상이 함께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한국만큼이나 일본에 자주 가는데 일본 대중들은 K-팝, K-드라마 등 한국을 정말로 사랑한다. 한일 정치인 중에 양국 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자신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양국 정상이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한일 두 나라 모두를 사랑하는 내 삶도 훨씬 더 나아졌다.”
- 마지막으로 한국에 남기고 싶은 말은.
“나는 한국을 사랑하지만,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게 불만이다.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인데 한반도, 동북아 등 인접한 지역 문제만 걱정한다. 한국은 더 큰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리더가 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낮은 출산율, 서울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시골은 텅 비어버리고 있다는 점이 걱정되기도 한다. 내 고향 사우스다코타주(州)도 그런데, K팝 문화가 세계를 사로잡았지만 사람이 없다면 그 레거시를 유지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은 결의에 차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이제 은퇴하지만 한국, 한미 관계가 더 나아지고 강해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할 것이다.”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존 햄리 소장
미 CSIS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 알레이 버크 해군 제독과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앱셔가 주도해 조지타운대 산하 연구 기관으로 출발했다. 소련과의 지정학적 갈등 속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에 관한 전략적 사고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87년 비영리 기관으로 재편성됐고, 이후 여러 지역과 주제에 관한 연구를 확장해 왔다. 존 햄리(76) 소장은 2000년부터 CSIS를 이끌면서 각종 이슈에 대해 심층 분석과 정책 제안을 제공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25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예산은 지난해 기준 6000만 달러(약 890억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생인 햄리는 사우스다코타주(州) 출신으로 리버럴 아츠 컬리지인 아우구스타나대를 졸업했고,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회 예산국(CBO)에서 국가 안보, 국제 문제를 담당하는 부국장을 맡아 상·하원 소속 위원회 예산 집행을 감독했다. 이후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조달, 연구, 개발 프로그램의 감독과 평가, 국방 예산 문제 등을 담당했다. 햄리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과 부장관을 지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당시 인수위 군사분과위원장을 맡았는데, 이후 민주당 정부의 개각이 있을 때마다 국방장관 후보감으로 거론됐다.
CSIS는 역대 한국 대통령들이 워싱턴 DC를 방문하면 미 조야(朝野)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하고, 메시지를 발신하는 주요 플랫폼이었다. CSIS 내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 지원을 받아 한반도 문제를 집중 연구하는 ‘한국 석좌’ 연구직도 있다. 햄리는 한국을 50차례 넘게 방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이재명 대통령까지 교류하며 조언한 손꼽히는 지한파(知韓派)다. 워싱턴 DC의 정책 커뮤니티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을 위한 목소리를 냈고, 때론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2020년 외국인에게 주는 수교훈장 중 최고 등급인 광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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