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가 밥을 먹나, 월세를 내나. 울산은 끝인 기라"
①울산 할매와 로봇<상편>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 이세돌을 꺾으며 특이점의 전조가 도래했음을 알린 지 10년. AI는 이제 바둑판을 넘어 인간의 삶 곳곳에 깊이 침투했다.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하고 AI 비서가 의사결정을 돕는 시대. 모든 직업군에서 인간과 기계의 전쟁 같은 생존 경쟁이 불붙었다. 기획 연재 <그림자 전쟁 : AI의 직업 침탈기>에서는 AI가 회사에 조용히 침투해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현실을 현장 깊이 들어가 취재했다. 또 알고리즘에 밀려나지 않기 위한 노동자의 분투, AI와 인간이 공생하기 위한 해법 등을 알아봤다.

혁신 기업과 기득권 노조의 싸움. 현대차가 지난 1월, 일하는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인 뒤 이 회사를 보는 시선은 틀 안에 갇혔다. 납작한 선악 구도로만 볼 수 있는 문제일까. 본보 특별기획팀은 울산으로 향했다. 완성차 공장 6개를 중심으로 구축된 '현대차 생태계'가 떠받치는 도시. 2월 10일부터 이달 3일 사이 총 6일간 3명의 기자가 울산 전역을 종일 누비며 현대차·협력업체 임직원, 자영업자, 대학생 등 모두 46명을 만났다. 이들은 아틀라스가 각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말했다. 이 기록은 '산업 수도' 울산의 이야기인 동시에, 노동이 있는 모든 곳이 머지않아 마주할 미래에 대한 보고서다.
팔순 식당 주인의 걱정 "코로나 때도 끄떡없었는데…"
올해 나이 여든인 식당 주인 주정희는 매출 걱정을 해 본 기억이 없다. 검버섯 핀 두툼한 손등 아래로 너덜거리는 파스를 붙인 노인은 밀려드는 손님 덕에 진통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면서도 여전히 일하는 게 좋다. 25평(82.6㎡) 남짓한 가게 안 철제 테이블 10개는 점심시간마다 사람들로 가득 찬다. 구내식당 밥에 지쳐 할머니의 동태찌개와 순두부를 맛보러 온 공장 노동자다. 그들에게 식당은 사랑방이다. 정희는 반찬을 나르며 귀동냥한 까닭에 아들, 손주 같은 손님들이 다니는 대기업의 부장급 인사가 언제 나는지도 꿰고 있었다.
"우린 코로나 때 끄떡없었어. 코로나 때도 우리집만 비껴갔다니까. 공장 단골손님 덕분이지."
주변 식당은 지난 1년 사이에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정희는 공장 정문 건너편 터를 30년간 지켰다. 울산. 정희와 세 아들을 먹고살게 해 준 고마운 도시다. 충청북도 속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열일곱 소녀는 "울산에 가면 일자리도 많고 무엇이든 할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홀로 이 도시에 닿아 가정을 꾸렸다. 울산은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넘치는 곳이었다.

웬만한 악재에는 눈 하나 꿈쩍 않는 노포 주인이지만 두 달 전쯤 뉴스를 듣고는 걱정이 커졌다. 공장에 사람 닮은 로봇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잠시 얕은 숨을 고른 그가 말했다.
"로보트가 공장에 들어오면 당연히 타격이 있고 말고지. 사람이 있어야 밥도 먹고 하는데. 로보트만 있으면 누가 밥을 먹겠어?"
정희의 말마따나 로봇이 청국장을 먹을 리도, 동료와 소주잔을 기울일 리도 없었다. 전염병은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사람 대신 로봇이 채운 공장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다. 식당 손님 열의 아홉이 공장 노동자여서 공장이 쉬는 날엔 반찬도, 순두부도 훨씬 덜 만들 만큼 가게는 공장에 맞춰 움직인다.

정희만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휴머노이드(인간 형태) '아틀라스' 공포는 이미 울산 북구의 공장 안팎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로봇이 택시를 타나, 원룸 월세를 내기를 하나. 사람이 떠나면 울산 경제는 끝장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정희네 백반집이 있는 양정동은 축구장 670개 크기(500만㎡), 4만 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하는 현대자동차 공장 6개가 터 잡은 곳이다.

30년 베테랑의 '손' 위협하는 로봇…"다음은 무인공장일 것"
“아틀라스를 2028년까지 미국 공장에 투입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동료들 반응이 처음엔 재밌었어요. 사람 노동자를 줄일 가능성이 커지니 현대차 주식은 엄청 올랐잖아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죠."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인 박태균(52)은 아틀라스가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6'에서 공개된 직후 공장 분위기를 떠올렸다. 관절이 56개인 이 로봇은 짐을 집어 들고는 허리를 180도 돌려 뒤편에 내려놓았다. 오랜 노동 탓에 허리와 어깨, 손목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사는 인간보다 훨씬 튼튼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 같았다. 경이로움보다 섬뜩함이 앞섰다.
회사 소식에 밝은 태균이지만 이 로봇이 해외 공장에서 2년 뒤부터 일하게 됐다는 사실은 뉴스로 처음 접했다. 노조도 아는 게 없었다. 회사가 설명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동료 윤한섭(59)이 거들었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을 때 방송으로 텀블링하는 로봇이나 로봇개의 모습을 계속 보여줬거든요. '왜 저걸 틀어주지' 싶어 의아했는데 계속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틀라스 소식을 듣고 '올 게 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
사람 닮은 로봇이 등장하자 공장 안엔 불안감이 퍼졌다. 당장은 미국 공장에 도입한다지만 언제든 한국 공장에도 들어올 수 있어서다(①). 특히, 키 190㎝에 몸무게 90㎏으로 짐을 50㎏까지 들고 성인 걸음걸이의 2배 속도로 이동하는 로봇이 공장에서 무슨 일까지 해낼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30년 가까이 기름밥을 먹은 터라 태균은 직감했다. "웬만한 건 다할 거예요."


노동자들이 유일하게 믿는 건 '손'이다. 공장에서 '쇼바'(완충기·차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충격을 흡수하는 부품) 조립을 하는 박민구(가명·58)는 뭉툭하고 굽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35년간 궂은일 하며 쌓은 경험과 땀의 흔적이 손가락 끝에 감각으로 스며 있다. 아무리 뛰어난 로봇이라도 이 감각만큼은 당장 흉내 낼 수 없지 않을까. 한섭이 희망을 드러냈다.
"차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공정이 의장이에요. 도장(페인트칠)까지 끝낸 차체에 전선을 연결하고 시트나 대시보드 같은 걸 사람이 직접 부착하는 작업이죠. 결국 사람 손가락으로 하는 일이거든요. 작은 볼트를 조이거나 커넥터를 ‘딸칵’ 하고 체결하는 일(차체 안 전선 뭉치를 부품에 꽂는 작업)은 단순해 보여도 섬세한 손기술과 감각이 필요해요. 예전에 공장에서 물량 맞추려고 주말에 아르바이트생을 쓴 적이 있거든요? 그때 '고객이 토요일에 만든 차는 안 산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압력을 적절히 줘가며 볼트를 조여야 하는데 알바생은 그 감각이 없으니까. 차체 조립 등 다른 공정은 이미 상당히 자동화됐지만 의장부에는 여전히 사람이 할 일이 많아요."

하지만 손의 효용마저 곧 사라질 것임을 노동자들은 안다. 중형 SUV인 싼타페를 만드는 라인에서 일하는 정성용(54)은 싱가포르의 현대차 글로벌 혁신센터에서 받은 충격을 떠올렸다.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압력 데이터로 바꿔 쌓아놓더라고요. 힘을 얼마큼의 세기로 가했을 때 부품이 체결되는지 통계 내서 로봇에 입력하려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사람밖에 못한다' 싶은 일은 없는 거죠. 결국은 로봇만 움직이는 무인공장이 될 겁니다."
무인공장은 겁에 질린 노동자의 허황된 상상이 아니다. 현대차는 실제 'DF247'이라는 무인공장 프로젝트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의 공장(다크팩토리)을 로봇으로 주 7일 내내 24시간 돌린다는 내용이다(②).

"노조 없는 미국 공장에 먼저 도입…계약·촉탁직부터 타격"
여론은 현대차 노동자에게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이들이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틀라스를 공장에 한 대도 들일 수 없다"는 노조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한 문장이 머릿속에 콕 박혀서다. "평균 1억 원 넘는 연봉을 받아온 '귀족 노조' 조합원들이 이기심 탓에 혁신을 거부한다"는 비난도 들린다. 심지어 일부 협력업체 직원은 "노조 사람들은 트렁크의 경칩 같은 작은 금형이 작업하는 데 불편하다며 자꾸 모양을 바꿔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 로봇은 그럴 일이 없지 않느냐"고 냉소했다.
노동자들은 답답하다.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분노 아래는 불안감이 깔려 있었다. '우리에겐 죽고 사는 문제인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정이 잔뜩 굳은 태균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현장 직원 모두 뉴스를 보고서야 아틀라스 투입 계획을 알게 됐어요. 이 로봇이 정확히 어떤 공정을 담당할지, 노동자의 역할이 어떻게 바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요.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에는 신기술 도입 때는 노조와 사측이 논의해 심의·의결(합의)하고 고용안전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 고용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도록 해놨어요. 노조가 ‘노사 합의 없는 아틀라스 투입을 반대한다’고 한 건 상식적인 주장인 거죠.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

로봇은 반발할 노조가 없는 미국 조지아 신공장에 먼저 발을 들인다. 하지만 그 불똥은 국내 노동자에게도 곧 튄다. 현대차 정규직인 김창섭(가명·37)은 "당장 급여가 깎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미 울산 1공장 물량이 미국 공장으로 많이 넘어갔어요. 로봇까지 도입되면 사측이 물량을 더 빼돌려 미국으로 보내겠죠. 우리는 연장근무 수당으로 먹고살잖아요. 시급제 같은 월급제(③)인 거죠. 물량이 삭감되면 급여가 줄 텐데 회사는 아무 대안도 제시하지 않아요."

역설적이게도 현대차 정규직의 형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섭은 "우리는 로봇의 등장 탓에 입는 피해를 가장 마지막에 볼 것"이라고 했다. 노조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노동자(④)일수록 먼저 공장 밖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얘기다.

"사내 비정규직부터 타격받을 거예요. 부품사 등 협력업체로 번지겠죠. 가장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묵묵히 일해온 사람이 제일 큰 피해를 받는 겁니다. 현대차 내에 기술직 일자리가 한 5만5,000개 정도 되거든요?(사측은 3만여 개라고 설명) 정규직은 4만 명쯤이고 나머지는 계약직이거나 촉탁직(정년퇴직 이후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해 일하는 노동자)이에요. 언제든 재계약하지 못하면 공장에서 나가야 하죠."
기자는 현대차 공장에서 10분 남짓 떨어진 효문공단으로 급히 향했다. 현대차 협력업체, 부품사가 모여있는 곳이다.
<1화 하편에서 계속>(9일 낮 12시에 한국일보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공개됩니다.)
어떻게 취재했나
현대차가 휴머노이드(인간 형태) 로봇 아틀라스를 도입하기로 한 것을 두고 직간접적 이해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려 울산 현지를 취재했다. 북구의 현대차 공장 주변 등을 엿새 간 종일 돌아다니며 수 십명을 인터뷰 시도했고 이 가운데 응한 46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상황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취재원의 다양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고용 형태로는 △직영 정규직 직원 9명(노조원 6명·비노조원 3명) △하청업체 소속 파견 직원 3명을 인터뷰했다. 특히 특정 연령대에 치우치는 것을 막기 위해 △20대 3명 △30대 4명 △40대 1명 △ 50대 4명을 만났다.
효문공단에서는 현대차 부품 협력 업체 임직원 9명과 대형 화물트럭 기사 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대차 직원들이 소비하는 상권(양정동·명촌동)에선 식당·편의점·부동산·미용실·당구장 등 자영업자 11명을 만났다. 실명 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신원이 특정돼 불이익이 우려되는 이들은 익명 처리했다.
울산대에선 공대 재학생·졸업생 5명의 의견을 물었다. 울산시청 관계자 2명과 AI·노동·산업공학 분야 전문가 5명과는 전화 인터뷰했다. 현대차 측 입장도 상세히 듣기 위해 서면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았고 기사에 추가 설명 형태 등으로 반영했다.
<그림자 전쟁 : AI의 직업 침탈기> 특별기획팀
취재 : 송주용·박지윤·강지수·전예현 기자
사진 : 최주연·강예진 기자
영상 : 권준오 PD, 박홍균 인턴 PD
울산=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울산=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울산= 전예현 기자 hyu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힘 하믄 전한길만 떠오른다…우짜다 당이 이래 됐노" 착잡한 부산 민심-정치ㅣ한국일보
- '50세' 배우 이민우, 열애 고백… 깜짝 놀란 고주원·김승수-문화ㅣ한국일보
- 엄흥도가 단종 눈을 감겨줬다? 단종이 삼촌과 의기투합? 천만영화 '왕사남'의 역사 점수는-문화
- "남편 외도 안 지 3년 지났는데"…상간녀 소송도 시효를 넘긴 걸까 [중·꺾·마+:중년 꺾이지 않는
- 이 대통령·정청래, 미묘한 균열... 검찰개혁법 수정 둘러싸고 당청 갈등 전조?-정치ㅣ한국일보
- 오세훈, 결국 서울시장 공천 신청 안 했다… 장동혁 지도부, '절윤' 할까-정치ㅣ한국일보
- 김재섭 "정원오 일가 6,800평 농지 보유"… 鄭 "막가파식 정치 공세, 법적 책임 물을 것"-정치ㅣ한
- "20대야, 60대야" 싱가포르 사진작가 환갑 사진 화제… 건강 비결은?-국제ㅣ한국일보
- '가구 공룡' 이케아, 한국 시장서 잔치는 끝?… 하락세 이유 4개-경제ㅣ한국일보
- "소파 두고 바닥에 앉는 한국인들… 모두를 위한 '디딤'을 제안합니다"-경제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