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재현 대표 “한미약품 대주주 건건이 개입…전문경영 약속 안 지켜져”

“전문경영인 체제 선언은 사실상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최근 대주주 경영 개입 논란이 일고 있는 회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에서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다. 한미약품그룹은 총수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혼란을 겪다가 2024년 말~지난해 초 봉합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최대주주와 전문경영인 사이의 정면충돌로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2024년 당시 모녀(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와 형제(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맞서 경영권 분쟁을 이어갈 때, ‘백기사’로 나선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박 대표 연임을 두고 송영숙 회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4자 연합’이 깨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2월 경영권 분쟁을 일단락하며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공식 선언했다. 창업주 일가와 대주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당시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신 회장의 경영 개입을 폭로했다. 신 회장이 지난 1년여간 대표이사를 거치지 않고 공장장·임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사내 성추행 사건 처리에도 개입해 조사 사실을 가해자에게 알리는 등 조사를 방해하고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 박 대표 주장이다. 신 회장은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지분 29.83%를 보유한 대주주다.
한겨레가 확보한 ㄱ씨의 성추행 사건 사내 조사 문답서를 보면, ‘조사를 어떻게 인지했느냐’는 관련 부서의 물음에 ㄱ씨는 “신 회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인사팀에서 조사차 올 거라고 전해 들었다”고 답했다. 이후 가해자는 ‘가해자-피해자 분리’를 위해 박 대표가 지시한 재택근무 명령을 어기고 나흘간 공장에 출근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신 회장이 회사의 대표 제품인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 원료를 검증되지 않은 저가 수입 원료로 교체하도록 지시했다고도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신 회장이 박 대표에게 “돈을 받은 것만 비리가 아니고 원재료를 비싸게 사는 것도 비리”라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박 대표에게 “떳떳하다면 재산 공개를 하라”는 말도 했다.
박 대표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신 회장이 바꾸라고 지시한 거래처는 국내 유통 실적조차 없고 인도 한 곳에만 수출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확인한 한미약품 내부 메일을 보면, 지난해 11월 한미약품 품질팀은 “해당 원료에 불순물이 있을 위험성이 있으므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박 대표는 ‘이후 공장장이 임의로 원료 교체 작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바뀐 원료로 만든 로수젯은 시험 생산 단계에 들어가 있다’고 밝혔다.
이 사안은 제약계로도 번졌다. 지난 5일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원료 변경은 단순한 경영 판단이나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의약품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한미약품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철저한 검증을 전제로 원료 변경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약사사회와 충분히 소통할 것을 요청했다.
박 대표가 신 회장이 공장장을 통해 직접 유지비용을 줄이라고 지시한 사례도 언급했다. “수선유지비를 줄이라는 (신 회장의) 압박 때문에 고장률이 30% 늘었다.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24시간 돌려야 하는 공조기를 끄라고 지시했다가 미생물 오염 위험이 확인되자 그제야 멈춘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신 회장의 경영 개입이 개정 상법이 규정하는 이사 충실 의무 위반 소지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대주주가 이사회를 통하지 않고 임직원에게 직접 지시해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를 흔드는 것은,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특정 대주주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송영숙 회장도 지난 5일 입장문을 내어 “한미약품은 특정 개인이 전권을 쥐고 운영할 수 없는 기업”이라며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견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신 회장의 경영개입을 사실상 비판한 바 있다.
다만, 박 대표가 이달 말 임기 만료를 앞두고 대주주 경영 개입 문제를 공론화를 한 것을 두고는 회사 안팎에서 의구심이 제기된다. 연임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꼬리표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연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밖에서라도 이 문제를 계속 알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지난달 23일 신 회장의 경영개입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부터 최근까지 한미약품 본사에서 △부당한 경영간섭 중단 △저가 원료 사용 압박 중단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쪽 관계자는 한겨레에 “조만간 기자회견을 열거나 입장문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 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멤버 일부를 제외하면 한미약품에 내가 추천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사내 성추행 사건 처리와 관련해서는 국외 체류 중이어서 알지 못했고, 원가 절감 지시도 “고장 난 기계는 원인을 찾아 고쳐 쓰라는 효율화 조언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신의 역할은 대주주로서 전체 주주 이익을 위해 전문경영인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대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부당하지만, 전체 주주 입장에서 관심을 갖고 견제하는 것은 경영 간섭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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