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공감은 ‘느리게’ 온다

김규미 학교도서관 사서 2026. 3. 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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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 을 요약하면 '빵 한 조각을 훔친 남자가 남은 평생을 헌신하며 사는 이야기'이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짧은 요약본에 익숙해진 뇌는, 내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난 타인을 만났을 때 그 서사를 파악하려 하기보다 '이해 불가능한 비정상'으로 손쉽게 라벨링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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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주도하는 극효율주의 세상
요약된 정보만으로는 공감·이해 불가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을 요약하면 '빵 한 조각을 훔친 남자가 남은 평생을 헌신하며 사는 이야기'이다. 이 짧은 문장에는 그 어떤 감동도 없다. 그러나 1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소설 속에는 빵 한 조각 뒤의 굶주림을 보지 못했던 자베르의 매정함, 자베르의 집요한 추적에 떨던 장발장의 공포, 코제트를 향한 부성애,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까지의 처절한 고뇌가 행간에 차곡차곡 쌓여 맥락 속에 숨 쉬고 있다. 한 줄 요약만으로는 결코 읽어낼 수 없는 감정이다. 독자는 시간을 들여 행간의 숨은 뜻과 복잡한 속사정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바로 나와 다른 타인을 입체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지적 지구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요즘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말을 할 정도로 AI가 주도하는 '극효율주의' 세상이다. 누군가 두꺼운 책을 늦은 밤까지 읽는 동안, 누군가는 AI 요약 기능으로 벽돌같이 두꺼운 책도 순식간에 해치운다. 차분히 긴 글을 읽는 것은 비능률로 치부되고 신문이나 뉴스조차 요약해서 본다. 사실 확인이 생략된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 몇 초짜리 영상으로 상황을 요약하고 오판한다. 깊은 이해 없이 도파민이 주는 흥분만 남았음에도 다 읽었고 다 안다고 말하며 편향된 시선으로 마녀사냥도 서슴지 않는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5년 사회 갈등 관련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한국 사회의 갈등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다"라고 답했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으며, 이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된다'라는 말은 사실 내 에너지를 써서 타인의 결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과 같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짧은 요약본에 익숙해진 뇌는, 내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난 타인을 만났을 때 그 서사를 파악하려 하기보다 '이해 불가능한 비정상'으로 손쉽게 라벨링 해버린다. 공감의 부재는 결국 거대한 사회적 단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국경 너머의 비극에서도 반복된다. '정밀 타격', '에너지 인프라 공격' 같은 머리기사와 함께 바다를 건너온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 소식을 사람들은 건조하게 소비한다. 누군가는 폭락한 주식에 속상해하고, 누군가는 방산주 수익에 환호하며, 누군가는 오를 유가를 걱정해 주유소로 향했다. 지지한 적 없는 전쟁에 분노하며 시위하는 미국 시민들, 폭격의 공포 속에서 아이를 잃은 이란 부모들의 구체적인 서사는 '성공적인 작전'이라는 짧은 뉴스 몇 줄 뒤로 사라졌다. 이상하고 이해 안 되는 전쟁 뉴스 앞에 혀를 차며 채널을 돌릴 때 우리는 빵 한 조각 뒤의 굶주림을 보지 못했던 서늘한 눈빛의 자베르와 다를 바가 없다.

타인을 온전히 한 주체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균형 잡힌 인지능력은 마녀사냥 같은 편향적 휩쓸림에서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는 일찍이 문학은 어둠을 찢는 칼이며, 자유를 향한 문이며, 우리가 아직 인간일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증거라고 주장했다. AI 시대에 굳이 방대한 분량의 문학을 읽는 것은 지적 허영이자 시간 낭비라 폄하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상대의 의중을 읽어내고, 누군가에게 공감 받는 것이 하찮은가?

공감은 천천히 느리게 일어나는 감정이다. 주변에 온통 이해 못 할 사람과 사건들이 가득하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문학이 필요하다.

/김규미 학교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