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민들이 일군 ‘대동문화’, 지역 유산으로 계승”

조덕진 2026. 3. 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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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이 만난 사람]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한류의 저력은 전통과 삶의 축적
전통과 문화에 대한 국민 자부심
단순한 유행으로 그쳐서는 안 돼
1990년대 답사 자료집서 출발한
‘대동문화’는 시민문화공동체로
현장 답사·강연·시민참여 원동력
30년 지역 문화잡지 명맥 이어와
시민 메세나와 후원으로 유지
민간운영과 기업협력으로 확장도
조상열 광주대동문화재단 대표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주필이 만난 사람]

한류가 세계의 언어가 됐다. 그 성취는 기술이나 속도, 유행이 아니라 축적, 전통의 유니크함에서 비롯된다. ‘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길어 올려,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이어온 시민 문화의 실험장이었다. 1990년대 답사 자료집에서 출발해, 지역 문화잡지의 명맥을 30년 가까이 이어온 이 기록은 행정이나 자본이 아닌 시민 메세나의 힘으로 일궈졌다. 메세나 그룹 대동문화재단 운영이사회, 이름 없는 전국 후원자들의 연대는 문화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이끌고 있는 조상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대세다. 저력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한류의 저력은 새로움이나 기술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방식과 정서에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AI가 일상을 지배해도 문화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기억, 공동체의 경험, 전통이 힘을 만든다. 한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전통과 생활문화가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한 결과다.

-서양, 일본 등을 쫒던 국민들이 마침내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된 것 같다. 각별하실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서구와 일본을 기준으로 살아온 점이 있다. 전통은 낡았다는 반응이 돌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감회가 크다. 다만 자부심이 일시적 유행으로 소비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좋아한다’를 넘어서 왜 소중한지 이해하고 지켜내려는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동문화’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역의 중요 거점이다. ‘대동문화’를 설명해달라.

▲‘대동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현장에서 발굴하고, 이를 잡지와 답사, 강연으로 풀어내는 문화공동체라 할 수 있다.

특정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후원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자랑이다. 광주를 거점으로 전국과 세계를 향하고, 전통을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재의 자산으로 만드는 일을 한다.

-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하시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90년대 중반, 한문학원 강사들과 함께 전라도 역사탐방을 하며 운영한 답사 자료집이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2001년에 지역의 유일한 문화잡지로, 금호 그룹이 운영하던 ‘금호문화’가 22년 만에 폐간되고 언론사가 운영하던 ‘예향’까지 중단되자 지역 원로 언론인과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금호문화’ 폐간 이듬해에 대동문화가 문화잡지 형태로 본격 출범했다.

-역사 탐방에서 시작됐다는 게 이채롭다.

▲당시 한문학원이 번성하던 시절인데 강사들의 역량 강화가 절실했다. 한문은 글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고전의 정신을 삶 속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제자·후배들이 각 지역에 학원을 차리면서 역량강화로 매달 공부를 하던 중 책상머리를 벗어나 ‘현장’을 찾아 나서게 됐다. 그렇게 소쇄원·낙안읍성 등으로 답사를 다니며 답사 자료집을 발간한 것이 지역사회의 관심을 끈 것이다.

조상열 대동문화회장이 26일 광 조상열 대표는 지역의 유일한 민간 문화잡지 ‘대동문화’를 태동부터 지금까지 이끌고 있는 잡지 대표이자, 지역 전통문화지킴이, 인문학 강사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민간에서 문화잡지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많은 분들이 도움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경영의 숨통을 틔워준 건 현대그룹 연수 사업이었다. 대통문화 역사탐방이 소문이 났던지 현대그룹 본사에서 ‘전라도 답사 연수’를 요청했다.

2001년 첫 회의 참여자들 만족도가 최고점을 기록하며 그룹의 성공사례가 돼 전 계열사로 확산됐다. 14년을 성공적으로 내달렸는데 세월호 참사로 잠정 중단하면서 끝이 나벼렸다. 그 기간 현대그룹 광고까지 더해지면서 발간 체계를 안정시키는 결정적 기반이 됐다. 이후 현대는 물론 여타 기업의 인문강의 요청이 이어지며 대동문화가 전국으로 뻗어나갔다.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듯하다.

▲그렇다. 광주의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와 시민들의 참여와 도움, 지원이 생명이다. 어느 날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님이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셔서 “이 귀한 걸 시민들이 하느냐, 내가 100만 원씩 내는 사람 50명을 만들겠다”고 제안하시고 실재로 55명의 운영이사회를 이끄셔서 2007년 3월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운영이사회가 출범했다. 이 후원을 기점으로 계간지였던 ‘대동문화’가 격월 체제로 끌어올려졌고, 대동문화의 핵심 자원이 됐다. 지금은 약 250명 규모로 확장됐다. 이밖에도 전 광주라마다 김대원 회장께서 수년 동안 사무실을 무상지원하는 등 많은 지역사회의 도움이 이어져 왔다. 시민후원과 출판사업, 광고 등이 주 수입원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전국 유일의 시민 메세나로 만들어지는 문화잡지로 기록돼야 할 것 같다. 시민들과 접촉면 확장이 중요해 보인다.

▲대동문화는 말 그대로 시민 후원으로 운영된다. 다만 지금까지는 대부분이 중장년 이상 세대로 전승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젊은 세대 유입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대학생 문화유산지킴이 장학생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대학생 중심으로 미래인재·청년부 준비모임’이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 장학금 역시 시민후원으로 전개된다.

-‘대동 전통문화 대상’은 많은 상금 액수로 민간단위 수상이라고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대동문화가 소개하던 한옥 장인 등 ‘한 우물’ 파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이들을 직접 격려하는 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2019년에 제가 1천만 원을 내겠다고 하자 당시 3대 김기수 이사장께서도 기꺼이 1천만원을 후원해주는 등 많은 분들의 후원이 이어졌다. 관(시·문체부) 지원은 시류에 따라 중단될 수 있어, 뜻있는 사람들이 기부로 모금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해 모금이 약 6천만 원, 상금은 총 2천500만 원 규모로 시작했다. 지금은 상금이 3천만원이다. 한번 시상식마다 약 7천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그 모든 것을 지역사회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동문화재단이 하는 일들을 설명해달라.

▲재단은 잡지 발간을 넘어 ‘현장 기반 문화사업’을 여러 축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현재 문화재 돌봄센터(국가유산청·문화재청 및 광주시 위탁)와, 충장202센터·사직골문화센터·효천문화센터 등 지자체 위탁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위탁사업은 100%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그밖에 문화재청의 문화재지킴이 사업, 문체부 인문스토리 사업 등 보조사업 들을 수행해오고 있다.

-회장님 개인사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앞서 오지호 선생님과 인연을 말씀하셨는데.

▲오지호 선생은 내 삶의 방향을 정해준 정신적 스승이다. 학문 이전에 문화와 민족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인식, 그리고 지식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분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한문학원 운영도 이채롭다.

▲오지호 선생님께서 운영하던 한문학원 문하생으로 인생을 출발했다. 이후 성장해서 독립학원을 운영한 것이다. 한문학원은 글자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를 배우는 과정이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이 경험이 이후 답사와 해설, 문화 활동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앞으로 꼭 남기고 싶은 일이 있다면

▲특정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가 스스로 숨 쉬는 구조를 남기고 싶다. 누군가의 이름보다 시민의 기억 속에 남는 문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마지막 과제다.

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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