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성장전략’이 안 보인다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성장에도 여러 길이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성장을 통한 민생 회복’도 실현 가능한 길일 수 있다. 실제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권위주의 개발국가가 추진한 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대규모 고용을 동반하면서 불평등을 완화했다. 문제는 2026년 한국에서 그 경로가 재현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모든 성장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성장은 불평등의 확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장은 낙수효과를 동반하기 때문에 좋은 성장이라는 주장은 소위 ‘이론 속의 신자유주의’일 뿐, 실현된 적이 없다. 그래도 소득의 절대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괜찮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나은 삶’은 단순히 빵 한 덩어리를 더 얻었느냐는 절대적 소득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상대적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심한 불평등이 낳은 상대적 박탈감이 정치적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의 존립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초를 지나면서 성장은 불평등을 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과거와 달리 자본집약도와 수입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등 아이티(IT) 산업 중심의 성장은 수출이 늘어도 다른 산업의 성장이나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효과가 크지 않다. 그래서 이런 성장은 그 성과가 고소득층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고소득층은 한계소비성향이 낮아, 이들의 소득 증가가 내수 소비로 이어지는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1월9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선 불평등이 심각해지는 구조적 원인인 경제·산업구조의 전환을 위한 전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대기업, 제조업, 자동화(인공지능), 수출’이라는 기존 성장전략을 확대·재생산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더 큰 쟁점은, 이 성장전략이 세계 질서와 무관하게 국민국가가 독립적으로 성장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에도,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의 수출 주도 성장은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 질서, 패권국인 미국이 적자가 지속되는 것을 용인하면서 만든 글로벌 수요 창출, 개방적인 무역 환경이라는 세계 질서 위에서 작동해왔다. 수출 경쟁력을 높여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전략은 과거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경로의존적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익숙한 전략은 현재 요동치는 국제 질서와 구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2기의 출범으로 더 강화된 보호주의의 제도화, 통상정책의 안보화, 통화와 금융 수단의 전략적 활용이 강화되면서 한국이 성장했던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글로벌 수요가 무한정 열려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수출 주도 성장을 계속 유지·강화할 수 있겠는가? 한가지만 짚어보자. 과거 수출국들은 경상수지 흑자를 미국 국채 등 안전한 금융자산에 재투자하며 미국의 소비를 떠받쳤다. 하지만 (지난 대미 관세 협상에서 보듯) 이제 한국은 관세·통상 압력 속에서 미국 내 현지 생산과 공급망 재편, 투자 확대를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투자가 누적되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감소하고 글로벌 수요도 감소하게 된다. 그러면, 한국처럼 외부 수요에 의존해온 수출 주도 성장은 그 구조적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성장전략이 작동하는 글로벌 환경이 재편되고 있는데도 과거의 전략을 반복한다면, 외부 수요의 변동성이 취약한 복지·내수 기반과 결합해, 한국 경제 전반에 걸쳐 성장의 내생적 불안정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민생 회복을 향한 대통령의 의지와는 별개로, 현재의 성장전략이 ‘모두를 위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 경쟁력 강화를 넘어 튼튼한 내수 기반과 복지 확대를 지렛대 삼아, 변화하는 글로벌 질서에 부합하도록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성장전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성장의 동력은 통제 불가능한 국외 수요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처럼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안전매트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를 만드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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