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언박싱] 맨발의 아베베도 신었다… ‘아식스 원조’ 오니츠카 타이거

김수연 2026. 3. 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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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한 사내가 있었다.

1949년 아식스의 원조 브랜드인 '오니츠카 쇼카이', '오니츠카 타이거'를 창립한 오니츠카 키하치로의 이야기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의 자회사로서 고급 스니커즈 라인을 맡아 오고 있다.

이 공간은 오니츠카 타이거의 브랜드 비전과 일본 장인정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문화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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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츠카 타이거 홈페이지 캡처

<19> 오니츠카 타이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내 양부모를 돌봐주게”라는 상관의 부탁과 함께 미얀마 출병 리스트에서 빠졌고, 제대 후 상관의 양부모를 부양하러 고베로 갔다. 얼마 후 들려 온 상관의 전사 소식에 그는 부부의 양아들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오니츠카’로 성을 바꿨다.

1949년 아식스의 원조 브랜드인 ‘오니츠카 쇼카이’, ‘오니츠카 타이거’를 창립한 오니츠카 키하치로의 이야기다.

키하치로는 농구화를 만들겠다고 꿈꾸던 신발장수였다. 물자가 부족하던 전후, 다들 삼베로 만든 마포신발에 만족하며 살던 시절에 기술과 소재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농구화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차갑던 세간의 시선도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그는 고무공업소에서 기술을 배워 농구화를 만들어 고베고등학교에 들고갔다. 예상대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직접 신발을 신겨가며 고칠 점을 찾았고 개선을 반복한 끝에 농구 선수의 발동작에 꼭 필요한 기능을 갖춘 농구화를 만들어냈다. 1950년 첫 농구화 ‘OK’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1953년에는 첫 마라톤 운동화로 ‘오니츠카 마라톤 TABI’를 출시했다. 1960년에는 오니츠카 타이거를 ‘운동화 명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제품이 나온다. 1960·1964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가 선택한 ‘매직 러너’다. 아베베가 제품 보증서를 써주면서, 오니츠카 타이거는 독보적인 글로벌 스포츠화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다.

1971년 미국 나이키가 탄생하며 오니츠카는 위기를 맞는다. 오니츠카의 미국 시장 독점 유통사였던 ‘블루 리본 스포츠’가 만든 나이키의 성장세에 대응하기 위해 오니츠카 타이거는 덩치를 키웠다. 1977년 스포츠 의류 브랜드와 합병해 종합 스포츠 브랜드로 탈바꿈하면서 간판을 ‘아식스’로 바꿨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의 자회사로서 고급 스니커즈 라인을 맡아 오고 있다. 일본 고유의 전통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제품을 선보여 왔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바닥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며 도전을 지속해 온 창립자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올해 창립자의 출생지인 일본 도토리현에 오니츠카 타이거의 첫 자체 생산 시설 ‘오니츠카 이노베이티브 팩토리’를 연 것. 이 공간은 오니츠카 타이거의 브랜드 비전과 일본 장인정신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문화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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