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던 할매 얼굴 한 번 그것만 됐지 뭘 더 바라 [박수진의 행복한 시골살이]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2026. 3. 8. 15: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비혼 1인 가구의 명절 후일담

직장인이 되고 나서 처음 맞는 명절이다. 솔직히 말하면 2월 초만 해도 큰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매일 달력만 보며 손꼽아 기다렸다. 자영업자로 살아온 8년 동안 내게 명절 연휴란 늘 '바쁨'의 대명사였다. 특히 설 연휴는 더 그랬다. 아직은 저마다 그럴듯한 계획('올해는 책 좀 읽어야지' '새해에는 글을 써봐야지' 같은)을 갖고 있을 연초이니, 책을 찾는 손님들이 유독 많았다. 며칠간 정신없이 혼자 책방을 돌보다 보면 연휴는 순식간에 끝나 있기 일쑤였다. 그러니 직장인의 신분으로 맞는 닷새짜리 연휴는 기대감이 다를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책방을 열어야 했고, 마침 내가 집을 비울 때 고양이를 돌봐주곤 하던 친구도 여행을 떠나 어디를 가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무엇보다 연말과 새해를 넘기며 체력적으로 방전되어 있었다. 직장과 책방을 겸업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몸은 예상보다 피로를 자주 호소했다. 이번 연휴만큼은 휴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책방 일을 도와주는 믿음직한 동료 작가 J 덕분에 나는 한결 마음 편히 연휴를 보낼 수 있었다.
올해도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영상으로 세배를 올렸다. /박수진

◇가족 단위의 설에 혼자인 마음

연휴 첫날은 예상대로 고요했다. 폭풍전야를 맞는 기분으로 서가를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부터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왕복 2차로 좁은 도로를 따라 차들이 졸졸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하하 호호 거리를 거닐었다. 책방에도 모처럼 손님들이 북적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하게 울적한 감정이 스며들기도 했다. 남해에서 줄곧 1인 가구로 살아온 탓일까?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상반된 감정이 찾아온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던 전이나 잡채 같은 명절 음식이 괜히 생각나고, 가족들을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새삼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왠지 나도 대가족의 한 무리에 끼어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나눠야 할 것 같은 기분. 막연한 기대와 의무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쩌면 명절이란, 혼자 사는 사람에게 더없이 정직하게 고독을 드러내는 기간인지도 모른다. 전처럼 대가족이 모여 명절을 지내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풍경 앞에서 고독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1년에 한 번 효도하기

그때 문득 완도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언제 마지막으로 뵈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얼굴을 뵙지 못한지 벌써 삼 년이 흘러 있었다. 서울 본가에 가기는 어렵더라도, 완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서 200㎞ 남짓의 거리.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몰라, 1박 2일로 짧게나마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직장인이 되어 처음으로 받은 월급으로 준비한 용돈도 넉넉하게 챙겼다. 새 봉투에 새 돈을 뽑아 넣는 손길이 제법 설렜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크게 막히지 않아 평소와 비슷하게 완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삼 년 만에 찾아뵌 할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해 계셨다. 허리 통증이 심해져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내신다 했다. 등도 많이 굽어 있었다. 명절이라지만 모인 가족은 장남인 큰 외삼촌네와 나 정도가 전부였다.

나를 어릴 때부터 돌봐주신 할머니이기에 특별한 애착과 애정은 여전하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고 나서는 예전에 미처 보이지 않던 할머니의 여러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삼촌과 며느리에게 잔소리하며 일을 시키는 할머니. 마을 사람 누군가를 흉보는 할머니. 자꾸 말을 바꿔 나를 당황하게 하는 할머니. 마당에 찾아온 길 고양이를 내쫓는 할머니. 해가 지날수록 할머니는 점점 더 입체적인 사람이 된다. 온전히 좋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만큼의 주름과 고집과 상처를 가진 한 사람. 그러나 언제 찾아가도 "어이구 내 새끼~" 하고 두 팔로 보듬어주는 할머니는, 내게는 평생 그냥 좋은 할머니다.

◇사촌 동생들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유년 시절의 기억이 제법 쌓여 있는 D와 E는 내가 이름을 지어줘서 유독 각별하게 느끼는 사촌 동생들이다. 명절 때마다 같이 먹고 놀고 재우며 업어 키워온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덧 수염 자국이 무성한 청년들이 되어 있었다. 첫째인 D는 포스트 닥터(박사후과정) 생활을 앞두고 다음 주 출국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고, 둘째인 E는 아직도 앳된 얼굴을 하고서 내게 진지한 상담 요청을 해왔다. 오랜만에 만난 만큼 둘의 몸과 마음도 부쩍 자랐음을 체감하게 된 순간이었다.

어색함도 잠시, 곧 안부를 나누고 "여자친구는 있느냐며"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화기애애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MZ 세대인 사촌 동생들은 요새 누가 제사를 지내느냐며, 제사를 지내서 여자친구가 없는 거라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넨다.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찔리는 건, 그 말 속에 명절 문화를 둘러싼 세대 간 온도 차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방금 전 애인 이야기, 결혼 이야기를 안부 인사로 꺼냈던 게 떠올라 적잖이 민망했다.

그러는 사이 내 시선은 자꾸 부엌으로 향했다. 여섯 명이 먹을 식사와 차례 음식 대부분을 숙모 혼자서 준비하고 계셨다. 명절 내내 부엌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사람도 숙모였다. 정작 식사 자리에서는 입맛이 없다며 조금씩 드셨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부엌 근처를 서성이면, "애들은 할 것 없다"며 이따 상 차릴 때 부르겠다고 돌려보내셨다.

서른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할머니 댁에만 오면 어린애가 되고 마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 같이 세배를 하고 동생들 틈에 끼어 세뱃돈도 받았다. 할머니께 드리려고 준비한 용돈 봉투는 슬쩍 내밀었다가 단박에 내팽개쳐졌다. 우리 할머니, 아직 쌩쌩하시네. 갈 곳 없어진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숙모 호주머니에 슬며시 넣었다. 한사코 사양하시는 숙모를 설득하느라 한바탕 신경전을 벌였지만, 이렇게라도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전남 완도 할머니댁에서 맞이 한 풍성한 차례상. /박수진

◇명절이란 무엇인가

몇 해 전,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칼럼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명절 연휴에 친척들이 불쑥 건네는 민감한 질문에, 그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 주면 된다는 논지를 펼쳤다. "결혼은 언제 할 거니"에는 "결혼이란 무엇인가"로 받아치는 식. 민감한 질문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 유머러스한 방어 전략이라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통쾌함이 먼저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 안에 다른 결이 보인다. 명절의 질문들은 단지 무례하거나 곤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 얼마나 모르는지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 안부를 묻는 가장 빠른 방식이 사회적 통념에 기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 불편한 질문들도 나름대로 온도가 있다.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는 올해도 세배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 번 더 사회적 통념에 기대어 "올해는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돈도 많이 벌게요~" 야무진 각오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곧이어 엄마의 날카로운 답장이 온다. [작년이랑 똑같은 멘트로만 끝나는 설날 인사… 실행하자.] 먼저 선수를 치는 영혼 없는 대답으로 올해도 무사히 넘겼다 싶어 빙그레 웃음이 났다.

짧은 완도 방문을 마치고 남해로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보았다. 평생을 일하시다 휘어버린 손가락과 자글자글한 주름들을 보며 생각했다. 무엇을 약속한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잘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할머니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일 거라고.

혼자라는 것이 선택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때때로 마음이 서늘해질 때가 있었다. 지금은 명절은 명절대로 느끼고, 고독은 고독대로 껴안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듯하다. 명절이 품은 기대와 의무, 그 모순 속에서도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함께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요즘 명절을 보내는 솔직하고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지금의 방식 또한 나중엔 사라질 과거의 한 장면일 테니 말이다.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열 번째 해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