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간판만 바꿔 달기…행정부의 입법 침탈 멈춰야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역사는 검찰의 수사·기소권 독점으로 인한 권력 남용의 역사였다. 그 뿌리는 1930년대 일제의 전시 총동원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에 집중된 기소권, 강제처분권, 사법경찰 명령권이라는 기형적 권력 구조는 해방 후에도 청산되지 않은 채 이승만 정권을 거쳐 유신과 군부독재의 자양분이 되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81년 부림 사건,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그 패륜적 행태의 이정표들이다. 독일·프랑스의 사인소추권, 미국의 대배심제와 검사장 직선제, 일본의 검찰심사회가 말해주듯, 선진 민주국가 어디에도 이런 구조는 없다.
2026년 오늘, 우리는 그 비정상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 앞에 서 있다. 4년 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검찰 개혁'의 본령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였다. 그러나 지금 이재명 행정부가 내놓은 공소청법 및 중대범죄수사청법안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정상적인 입법 절차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그 알맹이마저 검찰의 입맛대로 뒤바꾼 '누더기 법안'에 불과하다.
국회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절규 "검찰청법을 제목만 바꾼 것인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지난 5일 토해낸 비판은 이번 정부안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추 위원장은 정부가 재입법 예고한 공소청법안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사동일체 원칙을 그대로 담았고, 제왕적 총장의 권한을 존치시켰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에 네 건의 글을 올린다"고 개탄했다.
특히 정부안 7조와 25조 등을 거론하며,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검사를 오히려 처벌할 수 있게 만든 구조를 맹비난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처신…방조인가, 주도인가
이 과정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의 처신은 더욱 뼈아프다. 김 총리는 불과 두 달 전 "수사-기소 분리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과제"라며 기세 좋게 공언했다. 그러나 정작 결과물은 검찰의 직급 구조와 권한을 우회적으로 살려둔 '간판갈이' 수준에 머물렀다.
만약 김 총리가 이 누더기 법안을 주도했다면 그는 개혁의 배신자요, 대통령의 의중에만 충실하며 민의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책임 있는 내각 수반으로서의 직무유기다.
범여권 내에서도 "김 총리가 검찰개혁 법안의 본질 훼손에 대해 분명히 해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행정부 2인자로서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하고 헌정 질서의 균형을 잡아야 할 총리가 오히려 행정부의 입법 침탈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책임
이 모든 사태의 최종 책임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당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정부는 그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지만, 실제 정부안은 국회 법사위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수정 요구를 묵살한 채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상적인 국회 절차를 거쳐 도출된 법안을 행정부가 가져가 입맛대로 뜯어고치는 행위는 트럼프식 전횡과 다를 바 없다.
공수처가 이미 무력함을 드러냈음을 상기하라. 보완수사권 폐지와 검사동일체 원칙 해체가 담기지 않는 누더기 법안은 시대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검찰 권력 고스란히 살리기' 법안이 확정된다면, 이재명 행정부는 일제강점기와 80년 독재가 남긴 괴물을 청산할 천금 같은 기회를 발로 차버린 역사의 배신자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안의 전면 철회와 국회 입안권의 회복을
민주주의의 원칙은 간명하다.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다. 행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의 집행자일 뿐, 그 내용을 사후에 검찰과 공모하여 변질시킬 권한이 없다. 지금이라도 이재명 행정부는 검찰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정부안을 전면 철회해야 한다. 검찰 개혁의 선명한 깃발을 다시 국회 법사위로 돌려주라.
개혁 이후의 실무적 우려는 입법 과정에서 보완하면 될 일이지,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입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다시 아스팔트 위에서 이재명 행정부를 향해 엄중한 심판의 칼날을 겨눌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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