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 겐고의 무대, 돌체앤가바나의 의상… 오페라의 '낯선 동거'

2026. 3. 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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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예술경영 현장을 20년 넘게 지켜 온 서고우니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이 무대와 객석 사이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등을 위해 제작된 돌체앤가바나의 오페라 의상들. 돌체앤가바나 제공

최근 일본 도쿄의 메구로 퍼시몬홀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보았다. 공연 자체의 완성도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창작진의 면면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는 소식은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지휘는 스즈키 마사토, 연주는 바흐 콜레기움 재팬이 맡았다. 고전 오페라와 건축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만날지 궁금했다.

막이 오르기 전 객석에서 바라본 무대는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건축가가 참여한 무대라고 해서 거대한 구조를 떠올렸지만 실제로는 비교적 간결한 구조물 하나가 중앙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구마가 설계한 캐피톨 호텔 도큐의 디자인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구조물은 회전 무대 위에 설치돼 장면에 따라 천천히 방향을 바꾸며 다른 공간을 만들어냈다.

화려한 세트 전환이 이어지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구조로 여러 장면을 풀어가는 방식은 흥미로웠다. 격자 형태의 구조는 조명을 받을 때마다 다른 그림자를 만들며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단순한 장치였지만 인물들의 동선과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는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복잡한 장치를 사용하기보다 구조 자체로 공간을 만들어내는 접근이 오히려 건축가다운 방식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다른 분야의 창작자가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일은 사실 새로운 일만은 아니다. 201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고 패션 브랜드 로다르테가 의상을 제작했다. 파리 오페라에서는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가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무대에 대형 영상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는 패션 브랜드 돌체앤가바나가 오페라 의상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칠리아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은 무대 위 인물들에게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했다. 공연 예술은 이렇게 때때로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을 무대로 불러들이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 왔다.

구마 겐고가 무대 디자인에 참여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도쿄 공연 커튼콜. 필자 제공

빠르게 변하는 취향과 새로운 경험

구마 겐고가 무대 디자인에 참여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도쿄 공연 포스터.

이런 협업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것이 단순한 이벤트일까, 아니면 공연 예술이 계속 시도해 온 여러 실험 가운데 하나일까. 공연을 만드는 입장에서 이 질문은 가볍지 않다. 새로운 협업은 언제나 모험이기 때문이다. 신선한 시도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각적인 장치가 공연의 본질을 흐릴 위험도 있다.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변수도 생긴다.

그럼에도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게 된다. 공연장은 결국 관객이 찾아오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이미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이 다시 오게 만드는 일은 공연장의 중요한 과제다. 최근 들어 관객의 취향과 문화 환경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공연장이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결국 공연 예술의 힘은 현장성에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공유하며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호흡은 공연장에서만 생겨나는 경험이다. 무대 위 배우의 움직임과 음악의 울림이 객석의 공기와 만나면서 공연은 그날만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공연장에서 느끼는 공기의 밀도와 무대와 객석 사이의 미묘한 긴장은 그날의 관객과 연주자, 그리고 공간이 함께 만들어낸다. 같은 작품이라도 공연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그 작은 차이가 관객을 다시 공연장으로 이끈다.

도쿄에서 본 '피가로의 결혼'은 그런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건축가의 시선이 담긴 간결한 구조의 무대는 익숙한 오페라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하나의 실험으로 남을지, 또 다른 시도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공연 예술이 다른 영역과 만날 때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공연은 어디까지 새로운 영역과 만나야 할까. 그리고 그 만남은 관객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게 될까. 공연을 만드는 사람에게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예술의전당 공연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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