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 교육 확장 막는 ‘교사 정치 중립’의 역설

이정원 2026. 3. 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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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의 조건인 새로운 ‘헤게모니’
-제주4.3평화인권교육을 중심으로<1>

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시민 교육'은 교육감과 학교장의 '의지'로 확산될 수 있을까. 제주에서는 시민 사회와 학교 현장의 숱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미가 없던 '제주4.3교육'이 2014년 전교조 출신 진보·민주 성향의 이석문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제주 모든 학교로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권력의 의지만으로 모든 주제의 민주시민 교육이 학교 현장에 확산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일례로 2018년 5월부터 제주에서는 '예멘 난민'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런 현실적 한계를 만든 제도‧문화적 원인은 교사들에 대한 국가의 호명(呼名)인 '정치적 중립성'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 현실에서 이는 국가가 교사들에게 내린 강령, '정치적 중립 의무'로 작용한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성'은 국가가 교사들을 통제하고, 국가의 통치 이념에 복무하게 하는 '헤게모니(hegemony)'가 되었다. 헤게모니는 "시민사회 내부에서 사람들의 믿음을 조절할 수 있는 국가의 지배 계급의 능력"을 의미하며, "지배 집단이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을 말한다. 국가는 시민 사회를 경제 구조에 순응시키기 위하여 지배 기구를 동원하는 데, 대표 기구가 '학교'다.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사안은 헤게모니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을 하는 데 주저한다. 반면 헤게모니 투쟁 끝에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한 정의가 확고하게 이루어지고 사회적 논란 또한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교사들은 그 사안을 갖고 민주시민 교육을 한다. 

대표 사례가 '제주4.3평화인권교육'이다. 4.3평화인권교육이 본격 시작된 2014년은 이석문 교육감 취임 첫 해이기도 하지만,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처음으로 4.3희생자 위령제를 국가기념일로 격상, '국가 추념식'을 치른 첫 번째 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국가가 허락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 외에 다양한 관점의 4.3을 교육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이는 '정치적 중립성'과 함께 또 다른 헤게모니인 '반공주의'가 교사의 삶과 교육 과정에 강력히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반공주의'는 한국 민주시민 교육을 규정하는 이념으로 자리하였다. 물론 이제는 직접적으로 반공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지만, 다른 이름과 내용, 목표의 교육 과정으로 포장, 은폐되어 교육되고 있다. 

한국 민주교육의 전개 과정은 시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며 고유한 전통을 축적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 통치 이념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광복 후 이루어진 교육 개혁은 친미 지배 구조를 구축하고 강화하려는 미군정의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 헤게모니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49년 12월 31일 시행된 <교육법>제5조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기하여 운영 실시되어야 하며 어떠한 정치적, 파당적 기타 개인적 편견의 선전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였다.

이때부터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을 정권에 종속시키는 교사들의 보편적 정체성이 되었다. 이승만 정권부터 이어진 핵심 통치 이념인 '반공주의'를 고착·재생산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들을 효과적으로 통치·관리하는 지배적 수단이 된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은 헤게모니 투쟁의 기회 구조가 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은 '정치적 중립성'에 갇힌 교사들의 정체성을 '노동자'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하지만 강고한 반공주의 헤게모니를 균열하는 데에는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 반공주의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로 은폐되어 전파되었다. 신자유주의는 1997년 IMF체제 이후부터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위상을 갖게 되었다. 김동춘은 "1987년 이전의 반공 자유주의는 정치적 민주화를 통제하는 수단의 역할을 했는데, 1990년대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주의 논리와 결합해 국가 주도의 시장 주의, 국가의 친기업과 반노동 정책, 사학, 언론 등 공공적 성격을 갖는 기관의 재산권을 강화하는 논리로 변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근거로 할 때 한국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세 가지의 공통된 조건을 공유, 확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①이념적 분단주의 ②전체주의 ③국가 주도의 발전주의다. 

'이념적 분단주의'에서는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토론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이적 행위'로 규정된다. 보수 정권 시절,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을 '좌파 교육', '종북 교육' 프레임(frame)으로 왜곡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체주의' 주요 사례는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의 개정 및 시행, 박근혜 정부가 시도하고자 했던 '역사 교과서 국정화'다.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입시 체제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신자유주의적 입시 체제는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수월성 교육'을 명분으로 하여 학교·교사·학생 경쟁·서열화를 본격 추진한다. 당연히 공교육에서 민주 시민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루어지더라도 입시 경향에 맞춘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에 편중되었다.

민주시민 교육 헤게모니 투쟁의 일대 전환점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였다. 참사를 생방송으로 지켜본 시민들은 한국의 주입·지시 교육을 상징하는 명제, '가만히 있으라'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며 교육의 폭력적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2016년 세월호 전시.사진제공=제주도교육청

이는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진보·민주 성향의 교육감들을 대거 당선시킨 참여의 동력이 되었다. 이후 당선된 교육감들은 이전 교육감들이 지표로 삼았던 경쟁·효율·수월성·성과 등의 신자유주의적 교육 이념 대신 배려·협력·행복·모든 아이 등의 민주 지향적인 지표를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민주시민 교육의 지형도 이전과는 다른 확장성이 나타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시도에서 <민주시민교육 조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교육 과정에 있어서 '정치적 중립성'이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주시민 교육 과정 마다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면서 민주시민 교육에 대한 사유·실천의 범위를 제한시켰다. 시민 사회와 연대 없는 관료 중심의 민주시민 교육 정책이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의 장벽이 된 것이다.

참고문헌

논문

고성만, '제주4‧3 담론의 형성과 정치적 작용',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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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춘, '한국형 신자유주의 기원으로서 반공자유주의', 경제와사회, 2018.
김종엽, '교육에서의 87년 체제: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경제와사회, 2009.
박해경, '이승만 정권기 반공 이념 교육과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서영표, '갑작스러운 타자의 출현: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 진보평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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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이상훈 역, 거름, 1986.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2: 철학‧역사‧문화', 이상훈 역, 거름, 1993.
필립 스미스, '문화이론: 사회학적 접근', 한국문화사회학회 역, 이학사, 2008.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61호(2019)에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의 조건인 새로운 '헤게모니' -제주4⋅ 3평화인권교육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정원

제주대학교 강사(사회학 박사)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를 졸업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지역언론의 담론 및 생산구조 분석: 제주지역 신문의 '제주해군기지' 관련 사설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한국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3년에는 저서 '회색교실-교사는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한그루)를 출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4.3 트라우마 재현이라는 역사 교과서 저항 방식에 대한 성찰적 고찰: 한국사 교과서 4.3기술 근거 삭제 논란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구: 제주특별자치도 아라동 <아라신문>의 사례를 중심으로', 'AI 앵커 도입에 대한 내부종사자 인식: 제주지역 민영방송 JIBS를 중심으로', '지역 언론인의 솔루션 저널리즘 실천 조건 탐색: 2024년 장마 보도한 JIBS제주방송 기자 내러티브 분석', '4.3 서사의 행위자, 음식: 영화 <지슬>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