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화폐 이야기] 41. 지역화폐가 만드는 순환 경제의 혁신과 미래
인천·부여·강진, 소상공인 매출 늘린 ‘지역화폐’ 효과
![한 지역화폐 이용 고객이 한국조폐공사의 지역화폐 결제 플랫폼 ‘착(chak)’앱으로 결제하고 있다. [조폐공사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8/dt/20260308100327998tqom.jpg)
고금리와 물가 상승,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지역 경제가 전례 없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화폐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지역 경제 자립과 내수 활성화를 이끄는 핵심 정책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역화폐의 뿌리는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과 영국 등에서는 지역 상점과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마을 화폐’를 통해 공동체 경제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확산됐고, 이것이 오늘날 지역화폐의 모태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의 체계적 설계와 행정적 신뢰를 바탕으로, 소비 촉진과 소상공인 매출 증대라는 실질적 경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소비자는 할인 혜택을 얻고, 소상공인은 안정적 매출 기반을 확보하며, 지역 내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 선순환 구조다.
지역화폐의 가장 근본적인 순기능은 지역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는 ‘댐’ 역할이다. 경제학적으로 돈이 지역 내부에서 한 바퀴 더 돌 때마다 수요가 추가로 창출되는 ‘승수 효과’가 발생한다. 인천광역시의 ‘인천e음’은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10%의 높은 캐시백과 자치구별 독자 정책을 허용하는 중층 구조를 통해 도입 1년 만에 누적 결제액 1조 원을 돌파했으며, 재정 투입 승수 효과는 2.9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수천억 원 규모의 역외 소비 유출을 방지하고 중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에 직접 기여했다.
충남 부여군의 ‘굿뜨래페이’는 순환 구조의 혁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가맹점이 받은 매출을 법정화폐로 환전하지 않고 다른 가맹점에서 즉시 재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일반 지역화폐 대비 약 10% 이상의 추가 순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경제 주체들이 서로를 돕는 공존의 토양이 지역화폐를 통해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전남 강진군의 ‘반값여행’ 사례는 지역화폐와 관광 정책의 결합이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강진군은 관광객이 쓴 여행 경비의 절반(개인 최대 10만 원)을 지역화폐로 환급해 주는 실험을 단행했다.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관광 소비를 지역 농축산물 생산자, 소상공인, 숙박업자에게 다시 연결하는 정교한 순환형 경제 설계였다. 그 결과 예산 22억 원을 투입해 생산 유발 효과 240억 원, 부가가치 100억 원을 달성했다. 특히 농특산물 쇼핑몰 ‘초록믿음강진’의 매출이 1억 원에서 28억 원으로 급등한 것은 지역화폐가 1차 산업의 소득 증대로까지 직결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강진 모델은 현재 정부의 ‘지역사랑 휴가지원제’로 확장되어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지역화폐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소비자 설문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인센티브 혜택(71.1%) 외에도 ‘지역 경제 활성화 목적에 공감(36.5%)’하거나 ‘영세 상인을 돕기 위해(35.1%)’ 지역화폐를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역화폐가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시민 의식을 결집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뜻한다. 서울 노원구의 ‘노원(NW)’은 자원봉사나 기부 같은 사회적 기여를 화폐 가치로 환산해 지급하고, 시흥시의 건강 걷기 앱 연계나 성남시의 재활용 쓰레기 보상 제도는 환경보호와 건강 증진이라는 비화폐적 가치를 지역화폐로 실현하는 진화한 모습이다.
![강진군의 ‘반값 여행’ 이용 방법을 소개한 온라인 웹사이트 화면 [조폐공사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8/dt/20260308100329353zsda.jpg)
이처럼 지역화폐의 가능성을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인프라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가 운영하는 지역화폐 통합 플랫폼 ‘chak(착)’은 국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신뢰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국 다수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유통·정산을 하나의 체계 아래 통합 지원한다.
chak은 모바일 앱 기반의 간편 결제는 물론, 지류형·카드형 등 다양한 발행 방식을 지원해 스마트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도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 또한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역별 소비 흐름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어, 지자체가 보조금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부정 유통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화폐 발행의 공공적 사명을 수십 년간 이어온 한국조폐공사가 지역화폐 플랫폼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민간 사업자 의존으로 인한 보안 리스크와 운영 불안정 문제를 줄이고 지역화폐 생태계 전반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의 심장으로 온전히 작동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 자립 모델 구축이 첫 번째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ESG 경영의 일환으로 캐시백 예산을 지원한 사례처럼 민간 기업과 지역 금융기관의 협업을 확대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정보 제공과 고령층을 위한 접근성 개선도 시급하다. 아울러 불법 환전 등 유통 질서 교란을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 지역화폐는 외부로 유출되던 자본을 지역 내부로 되돌려 경제라는 혈액이 구석구석 순환하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다. 강진, 부여, 인천의 사례가 증명하듯,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를 넘어 공동체를 하나로 묶고 지속 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토양이다. 인구 감소와 내수 침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기 위한 경제적 자결권의 실천이자, 시민과 소상공인이 함께 만드는 순환경제의 모델이다. 행정의 신뢰와 시민의 공감이 생활 현장에서 맞닿을 때, 지역화폐는 지역 소멸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강력한 혁신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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