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시대 세계무역, 다자주의서 다극화된 지역 블록 중심으로

한겨레 2026. 3. 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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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2026년 2월10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로즈 먼데이’ 카니발 행사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형이 전시돼 있다. 트럼프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은 미래에 대한 계획 수립을 가로막는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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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2일 ‘해방의 날’이 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대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보편관세를 도입하며 평균 2.4% 수준이던 관세율을 이날 14.8~16.9%로 대폭 올렸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상대국이 미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만큼 미국도 똑같이 부과한다는 원칙을 적용해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전개는 혼란스러웠다. 관세 부과 이후 미국은 약 19개 무역 상대국과 협상을 진행해 일부 품목에 대한 예외나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관세율 자체가 2024년 수준으로 돌아간 예는 없다.

트럼프 2기는 격변의 시대를 상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화 시대에 거의 잊혔던 ‘관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세계무역 흐름도 요동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적어도 2025년 10월까지 세계무역 재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2026년 2월2일 “트럼프 무역전쟁은 지난해 무역 패턴에 큰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과 교역하는 19개 주요 국가 간 양방향 무역 비중은 거의 변동이 없었다. 과연 이런 흐름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세계무역은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무풍지대로 남을 수 있을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보고서

이 보고서는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관세정책이 시행된 첫해의 글로벌 무역 데이터를 분석해 예상보다 무역 패턴의 변화가 크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1. 19개 주요 무역 상대국 중 9개국은 미국과의 무역 비중 변화가 1%포인트 미만이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캄보디아, 에콰도르, 유럽연합,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영국이다. 특히 브라질은 40% 관세폭탄을 맞았는데도 0.2%포인트 감소에 그쳤다. 한국 역시 큰 타격이 예상됐지만 0.3%포인트 정도 감소로 그쳤다.

2. 관세 부과에도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늘어난 국가도 있었다. 인도, 인도네시아, 스위스, 타이, 베트남 등 6개국은 외려 1%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에 비교적 높은 관세가 부과됐는데도 대미 무역 비중이 늘었다. 이는 중국산 수입품이 이들 국가로 우회하거나 대체된 수입처의 전환 효과 때문으로 보인다.

3. 대미 무역 비중이 1% 이상 감소한 국가는 총 4개국이었다. 캐나다, 엘살바도르, 멕시코, 중국이다. 캐나다는 3.5%포인트 줄어 그 폭이 가장 컸다.

무역 패턴이 급변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개로 요약할 수 있다.

1. ‘해방의 날’ 이후 트럼프 팀은 최소 19개국과 빠르게 개별 협상을 완료해 극단적인 충격을 완화했다. 특히 관세 부과를 예상한 많은 국가의 기업들은 2025년 초 몇 달 동안 미국으로의 수출량을 대폭 늘렸다. ‘해방의 날’ 관세율은 20~25%에 달했지만 한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협상을 통해 15% 수준으로 낮췄고, 항공기나 의약품 등 일부 품목의 관세는 면제됐다.

2.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국민과 기업의 불만, 항의에 직면하자, 협상 또는 발표된 관세에 대한 예외를 허용했다. 브라질산 일부 농산물에 대한 면제가 대표적이다. 법정 관세율과 실효 관세율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 이유다. 법정 관세율은 대폭 올랐지만, 기업들은 수입선 변경을 통해 혹은 각종 면제 조치를 이용해 실효 관세율을 낮췄다. 2026년 2월 현재, 법정 관세율은 약 13.5%에서 18.5%로 추정된다. 하지만 실효 관세율은 약 9.9%에서 14.4%다. 의류와 잡화가 대표적이다. 수입선 다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 실제 부담액은 점차 완화되는 추세다.

3. 기업이 거래선을 바꾸는 건 모험이자 비용이다. 이미 투자한 막대한 돈과 노력을 고려할 때 새로 거래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소비재·중간재·자본재 거래는 구매자와 판매자 간 긴밀한 관계를 수반한다. 수년간 지속된 거래 관계를 일시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무역 패턴이 유지된 이유 중 하나다.

4. 중국을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도 미국 수출품에 강력한 보복 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과의 무역 관행을 유지하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2025년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글로벌 무역을 완전히 재편할 정도의 대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외려 미국과 19개 상대국 간의 양방향 무역액은 1618억달러(약 235조원)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물론 이는 세계무역 성장률 6.3%를 밑돌기는 한다. 그럼에도 파국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지다. 19개 상대국의 교역량 증가율은 분명 세계 교역량 증가율에 미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 양방향 교역량 증가율 5.4%보다 낮다. 이는 세계 주요국들이 미국 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공급망 재편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 미국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시장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26년 들어서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질서 흔들기는 그 필요성을 높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스러움은 유난하다. 관세율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이는 주요국들이 미국으로 인한 위험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을 증폭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갈등 사이에서 특정 국가를 선택하는 대신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역내 교역을 강화하고 있다. 2026년 1월29일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외무장관 회의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2026년은 미국에 대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분산) 전략이 본격화하는 첫해가 될 수 있다. 전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위험을 관리하고 미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을 보인다. 디리스킹이 과거엔 주로 서방국가들이 중국의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뜻했다면,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관세정책과 미국 우선주의 및 민족주의에 대응해 미국 외의 대안을 찾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동맹국들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아마 미국이 가장 아파해야 할 지점이 될 수 있다.

캐나다는 비미국권 수출을 2035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 및 인도와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며 아랍에미리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과 무역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캐나다는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던 100% 관세를 6.1%로 대폭 내리고 연간 4만9천 대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인도와도 중단했던 무역협상을 2026년 2월 재개하며 경제적 밀착을 가속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2026년 1월27일 19년 동안 질질 끌던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마무리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협정을 최종 타결했다. 이번 협정은 세계 인구 4분의 1,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의 통합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산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새로운 에너지 안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알제리, 노르웨이, 카타르 등으로 공급처를 다각화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흐름도 비슷하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갈등 사이에서 특정 국가를 선택하는 대신,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역내 교역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공급망 중복성 전략을 취하고 있다. 공급망 중복성이란 예상치 못한 중단 사태가 발생해도 공급망 운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 내에 의도적으로 여분의 자원이나 대체 경로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의 경우, 탈중국에 일차적 목적이 있지만 미국 시장을 대체할 대안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인구가 많고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시아를 차세대 소비시장과 생산기지로 육성해 미국 정책 및 경기 변동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려는 것이다.

디리스킹이 발생하는 이유

미국에서 멀어지려는 디리스킹이 발생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다. 트럼프란 개인의 재량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은 피로감을 증폭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 수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미국 시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돌발 변수에 의한 비용이 막대하다면 그 중요성은 감소한다. 관세로 인한 직접적 타격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의 가격경쟁력은 하락하고, 수입 원가 상승으로 미국 내 생산 거점의 매력은 떨어진다. 트럼프의 관세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는 멀어지는 게 최선이다.

미국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을 통한 구매력이 무기다. 따라서 미국과 관계를 완전히 끊는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미국만이 유일한 시장은 아니다. 대안은 있다. 세계는 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25년 미국과의 교역이 감소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보는 것은 어리석다. 무역의 근간은 쌍방 간 신뢰다.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신뢰를 잃어가는 국가가 세계무역 질서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세계는 이미 미국 중심의 다자주의에서 다극화된 지역 블록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미국을 뺀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 사이 다자간 협력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려 한다. 이 움직임은 2026년부터 본격화할 수 있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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