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동역학이 주장하는 ‘이럴 때 국가가 무너진다’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중국 명나라 말의 화가 서위는 천재라 일컬어진다. 그의 그림 ‘유실도’에서 과감하고 단순한 붓질로 그려진 나뭇가지를 보면 역동적인 느낌을 넘어 쾌감마저 느껴진다. ‘황갑도’에서는 먹의 미묘한 농담으로 연잎과 게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서위 그림의 특징은 즉흥적인 필선과 미묘한 농담뿐 아니라 과감한 생략이다. 그래서 동양화로 구현된 추상화 같다는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서위의 그림은 이전의 그림들과 달랐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그의 불행한 가정사가 들어 있다.
서위는 서총이라는 관리와 그 아내의 시종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당시의 신분사회에서 천대받는 지위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서총은 세상을 떠나 가세가 기울었다. 서위는 과거에 응시하여 여덟 번이나 낙방하는데, 왜구가 창궐하는 난리통에 저장성 총독 호종헌의 눈에 띄어 막객(무관 벼슬)으로 일하게 된다. 과거에 합격한 관리가 정규직 직원이라면 막객은 계약직이라고 보면 된다. 호종헌이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서 옥사하자 서위는 자살을 시도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말다툼 중에 아내를 살해하는 중죄를 저질러 7년 옥살이를 하게 된다. 서위의 작품은 대부분 감옥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그린 것이다. 그의 새로운 화풍은 감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명나라는 ‘정화의 원정(1405~1433년)’을 끝으로 외부에 문을 걸어 잠갔다. 청년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명나라 초기에는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이 아주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기로 갈수록 관리 자릿수는 그대로인데 지원자 수가 점점 늘어갔다. 최종적으로 진사가 되기 위해서 시험을 여러 번 통과해야 했으며 경쟁률이 수천 대 일에 달하기도 했다. 과거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는 것은 정치적 출세에만 그치지 않았다. 법적으로 면책특권이 있었으며 태형과 같은 체벌을 받지 않았고, 집안 전체가 조세와 각종 부역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과거에 몇 번 낙방하더라도 될 때까지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나라 말의 화가 문징명도 26세부터 47세까지 3년마다 치르는 과거에 부친상이 있던 때만 제외하고 매번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54세에 고위 관리의 추천을 받아 심사를 통해 가까스로 9품의 말단 관리가 되었지만, 그림으로 유명한 그가 하급 관리로 있으니 조직 내에서 질투와 시기로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결국 3년 후 문징명은 어렵사리 얻은 관직을 스스로 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처럼 과거에 낙방한 문인들이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산에 들어가 은거하며 그림을 그리는 가운데, 수묵 문인화라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장르가 꽃을 피우게 된다.
태평천국의 난 불러온 엘리트 간 경쟁

과거제도의 이런 문제는 청나라 말에 되풀이된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홍수전은 정식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아 1단계 과거시험은 무난히 통과한다. 하지만 다음 단계의 과거에 네 차례 도전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세 번째 낙방 후 신경쇠약으로 앓아누웠는데, 이때 기독교와 관련한 종교적 환상을 보았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홍수전은 자신이 교주가 되어 새 종교를 창시한다. 홍수전처럼 희망 없이 과거에 매달리던 좌절한 엘리트 두 명이 첫 개종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수천만 명의 죽음을 초래하는 19세기 중국 최대의 비극인 태평천국의 난이 시작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200~300년 주기로 나라가 교체되는데, 이때 어떤 패턴 같은 것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가 망하며 위진남북조의 혼란기가 오고, 당나라가 망하며 오대십국의 혼란기가 오고, 몽골에 의해 송나라가 망하며 원나라가 되고, 명나라, 뒤이어 청나라가 망하는 과정이 그러하다. 대개 건국 초기에는 큰 위기가 오지 않고 번영을 누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때 주로 외부의 침략 같은 위기가 온다면 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망한다.
피터 터친의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국가가 무너지는 데에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의 과잉생산이 주된 이유다. 대중이 궁핍해지면 당연히 국가가 불안정해진다. 하지만 조직되지 않은 대중은 국가권력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대중을 조직하려면 리더, 즉 엘리트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엘리트가 불만에 찬 대중을 조직하여 권력과 싸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엘리트는 권력에 편입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져서 실패하고 좌절한 엘리트가 늘어나면 이들 가운데 분노한 대중을 조직할 사람이 나타난다.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국가는 무너진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킨 홍수전은 전형적인 좌절 엘리트였다. 1853년 태평천국군은 난징을 점령했고, 10년 가까이 30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지배했다. 태평천국군을 이끈 지휘자의 절반 이상이 과거시험에 낙방한 사람이었다.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 외국의 침략에 시달리던 청나라는 결국 이런 내부 갈등과 함께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역사를 이렇게 일반법칙으로 설명해도 괜찮은 걸까? 이런 시도를 하는 분야를 ‘역사 동역학’이라 한다. 이 분야에서는 마치 물리학자가 복잡계를 다루듯, 역사를 데이터로 환원하여 분석하고 예측한다. 역사적 사건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러 기법이 있다. 전쟁이라면 인구, 군대의 규모, 무기의 질, 병사들의 숙련도, 병참, 사기 등을 수치화하고 알려진 방정식에 넣어 결과를 예상해본다. 데이터를 직접 얻지 못하는 경우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간접적으로 데이터를 구한다. 예를 들어, 유골을 통해 평균 신장을 추론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잘 먹었는지 정량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뼈의 일부만 나와도 신장을 추정할 수 있다. 유골에 남은 흔적을 통해 죽음의 이유를 추론할 수 있고, 폭력이 얼마나 빈번했는지 알 수 있다. 자, 이제 역사 동역학이 주장하는 국가가 무너지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건국 초에는 새로운 엘리트가 기존 엘리트를 모두 제거하여 권력에 빈자리가 많이 생긴다. 따라서 새 국가의 엘리트에게는 기회가 많다. 조금만 열심히 해도 성공할 수 있으니 국가에 활기가 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엘리트 수가 늘어난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엘리트는 자손을 더 많이 낳을 가능성이 높고, 결혼 등을 통해 다른 가문을 새로운 엘리트로 만들기도 한다. 엘리트는 자기 자녀 역시 엘리트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엘리트 수가 늘어나며 부가 집중되어 빈부격차가 커지고 대중은 빈곤해진다. 엘리트들 사이의 경쟁도 심화되어 좌절 엘리트가 많아진다. 빈곤한 대중과 좌절 엘리트가 결합하면 국가는 위기에 처한다.
격동의 시기, 역사 동역학의 설명은?
엘리트의 수가 늘어나는 속도는 자녀 수와 관련이 있다. 일부일처제 사회의 경우 대략 200~300년을 주기로 국가가 망한다고 한다. 일부다처제의 경우 엘리트 수가 빠르게 늘어나므로 더 빨리 위기가 찾아오는데, 100년 혹은 그 이하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계의 경우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약 4세대, 즉 100년 정도 유지되다가 붕괴했다. 중국의 역사에서도 100여 년 만에 붕괴한 왕조는 일부다처제인 몽골이 세운 원나라였다. 물론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도 법적 부인 이외의 정부나 첩을 통해 자식을 낳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런 자식은 대개 엘리트 지위를 가지기 힘들었다. 이슬람이나 몽골은 합법적으로 부인을 여러 명 둘 수 있었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미국은 1776년 건국 후 200여 년이 지난 1980년대를 지나며 부가 엘리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최상위 부자(상위 1%)와 최고 학위 소유자(상위 10%)의 연합이다. 현재 대기업과 백만장자에게 매겨지는 유효세금은 1920년대 이래 최저 수준이며 엘리트들은 성공을 위해 극심한 경쟁을 벌인다.

역사 동역학적 분석에 따르면, 심각한 빈부격차에 따른 대중의 빈곤과 좌절 엘리트의 수로 볼 때 현재 미국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 지배 엘리트의 일부인 민주당은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언어, 행동을 지양하자는 사회적 운동)’ 지형의 문제에서만 주로 싸우려 한다. 이들도 세금을 더 많이 내거나 자기 자식이 엘리트 사회 진입에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의 공화당은 상류층의 당에서 우파 포퓰리즘의 당으로 ‘진화’하며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종의 ‘혁명’을 진행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더구나 고학력 젊은이들이 과잉 배출돼 좋은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는 중이다. 역사 동역학의 예측이 얼마나 옳을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사적으로 새로운 격동의 시기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빈부격차 해소와 청년 일자리 문제는 복지의 차원을 넘어 국가 존망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 아닐까.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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