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콧노래, 비밀은 머릿속 ‘자동 재생 버튼’

퇴근길 지하철, 어디선가 들려오는 짧은 선율에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가사를 다 아는 것도 아닌데, 뇌는 기다렸다는 듯 다음 음표를 정확히 인출한다. 소리를 연구하는 필자는 인간의 뇌가 세상 그 어떤 정교한 재생장치보다 훌륭한 음악 저장소라는 사실에 매번 감탄한다.
멜로디가 우리 뇌에 저장되는 과정은 거대한 미로에 길을 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면 측두엽의 청각 피질은 음 높낮이와 간격을 분절해 분석한다. 이때 재미있는 점은 뇌가 개별 음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시간 흐름 패턴으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뇌는 개별 음의 절대적인 진동수를 하나하나 저장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노래의 음높이만 바뀌어도 우리는 그 노래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대신 우리 뇌는 음과 음 사이의 상대적 간격과 리듬의 패턴을 자료화한다.
우리가 옛 노래 한 소절에 울컥하는 이유는 그 멜로디가 당시의 공기, 감정과 함께 묶여 저장되기 때문이다. 우리 뇌에서는 멜로디 정보가 기억의 관문인 해마로 전달될 때, 바로 옆에 붙은 ‘감정의 사령탑’ 편도체가 강력히 개입하는 일이 일어난다.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기쁨, 슬픔, 평온함 같은 감정이 멜로디라는 뼈대에 살을 붙인다. 뇌과학적으로 감정이 실린 정보는 일반적인 정보보다 훨씬 더 우선해 처리되고, 해마는 감정이라는 강렬한 색칠이 입혀진 멜로디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정보로 간주해 장기 기억으로 넘긴다.
이제 핵심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멜로디를 즉각적으로 흥얼거리게 될까. 그 비밀은 ‘청각-운동 루프’라는 뇌 속 고속도로에 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익숙한 음악을 들을 때 인간의 뇌는 소리를 처리하는 청각 부위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운동 피질과 소뇌를 동시에 활성화한다. 놀랍게도 실제로 노래를 부르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할 때도, 뇌 안에서는 이미 그 선율을 따라 부르기 위해 목 근육과 입술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뇌는 예측하는 기계다. 앞 소절이 들리면 전전두엽은 통계적 확률에 기반해 다음에 다가올 음을 즉각적으로 추론한다. 예상한 멜로디가 실제와 맞아떨어질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우리에게 쾌감을 주며, 이 즐거움이 동력이 돼 멜로디를 멈추지 않고 흥얼거리게 만든다.
필자가 가장 감동하는 지점은 음악 기억의 강인함이다. 치매로 인해 가족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환자들이 젊은 시절 즐겨 듣던 노래를 접하면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흥얼거리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음악 기억이 뇌의 한 지점이 아니라 청각, 운동, 감정, 언어 영역 등 뇌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산 저장되기 때문이다. 다른 인지 기능이 무너져 내려도 뇌 구석구석 뿌리내린 멜로디의 시간 흐름 패턴은 끝까지 살아남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정체성을 지탱해 준다.
소리는 공기의 떨림이지만, 멜로디는 영혼의 떨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흥얼거리는 그 짧은 선율 속에는 뇌의 치열한 연산과 뜨거운 감정, 그리고 살아온 시간이 모두 농축돼 있다.
길을 걷다 어떤 멜로디가 입술 끝에 맺힌다면, 그것은 단순히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다. 당신의 뇌가 가장 소중한 기억의 상자에서 정성껏 꺼내준 선물이고, 당신의 몸이 흘러가는 세상과 공명하고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다. 어느 날 퇴근길, 당신의 뇌가 즉각 기억해 내는 감동적인 멜로디에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나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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