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사남’ 어디까지 진실일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면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영화 후엔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 기록은 단종과 그 주변 인물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단종은 영월에 유배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육신을 만나는 꿈을 꾸고 울음을 터트렸다.
장순왕후는 16세에 요절하고 그 아들 인성대군도 2세에 사망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죄인도 마을 활보한 조선 유배지
영화 속 청령포, 동강지류 세트장
천수 누린 한명회, 무덤 파헤쳐져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나면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영화 후엔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 기록은 단종과 그 주변 인물을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 질의응답 방식으로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를 짚어본다.
- 엄흥도는 영월 산골 마을의 촌장이었나.
▶엄흥도는 촌장이 아닌 영월의 호장(향리의 우두머리)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등장할 뿐, 유배지의 단종을 곁에서 모셨다는 내용은 없다. 다만 고종 때 엄흥도의 후손 엄주호는 단종과 엄흥도의 첫 만남을 상소문에 썼다. 단종은 영월에 유배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육신을 만나는 꿈을 꾸고 울음을 터트렸다. 산에 있던 엄흥도가 그 소리를 따라가다가 단종과 처음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공을 인정받아 숙종 때 공조참의로, 순조 때 공조판서로 추증됐다.
- 조선시대 유배지엔 정말로 혜택이 있었는가.
▶그렇다. 죄인을 집 안에 가두는 ‘위리안치(圍籬安置)’는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해당했다. 유배를 간 관료는 대부분 마을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들은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예술 활동을 했다.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제자를 키워내고 실학을 집대성했다.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국보 ‘세한도’를 남겼다. 유배지로 문안을 오는 가족과 유림 덕에 마을로 서적·약재가 들어왔고 주막이나 숙박시설이 활기를 띠기도 했다.
- 영화는 실제 청령포에서 찍었나.
▶영화 속 청령포는 실제 청령포가 아니다. 이미 관광지로 자리 잡은 청령포를 촬영지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제작진은 실제 청령포와 멀지 않은 동강 지류에 세트장을 조성했다. 사람이 서 있기조차 힘든 지형에 토목공사를 해 길을 내고 집을 지었다. 장항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강이 땅을 둥글게 돌아 빠져나가는 지형은 영월에서만 나올 수 있는 풍경”이라며 세트장을 영월에 제작한 이유를 밝혔다. 촬영이 끝난 뒤에는 법적 문제와 관리의 어려움을 이유로 세트장을 철거했다.
- 조선시대 희대의 권력가 한명회의 최후는 어떻게 되나.
▶영화에선 수양대군(세조)은 등장하지 않고 대신 한명회가 악역을 도맡는다. 한명회는 셋째딸을 예종의 왕비 장순왕후로, 넷째 딸을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로 책봉시키며 외척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무고한 자를 살생한 아버지의 과오 때문이었을까. 장순왕후는 16세에 요절하고 그 아들 인성대군도 2세에 사망한다. 공혜왕후 역시 17세에 세상을 떠난다. 한명회(73세 사망)는 천수를 누리는데 망자임에도 사후 17년이 지나 연산군이 주도한 갑자사화에 연루된다. 그는 무덤이 파헤쳐져 해골이 부서진 채 길거리에 내걸리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