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의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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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북 청주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수장고(收藏庫)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골퍼에게도 자신만의 수장고가 있지 않을까.
골퍼의 수장고에도 골퍼 나름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골퍼의 진짜 과제는 더 멀리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장고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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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한국] 최근 충북 청주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수장고(收藏庫)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 전시실에서 보던 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수장고에는 빛을 기다리는 수많은 작품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벽에 걸린 작품은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작품은 창고 속에서 다음 전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장고를 둘러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골퍼에게도 자신만의 수장고가 있지 않을까. 골퍼의 수장고에도 골퍼 나름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부드러운 리듬을 갖고 있고, 어떤 이는 강한 하체와 안정된 균형을 갖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코스를 읽는 직관, 위기에서 웃는 여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를, 나락에 떨어졌어도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달관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모른 채 라운드를 한다. 마치 미술관 창고에 걸작이 가득하지만 세상은 몇 점의 전시작만 보는 것처럼, 골퍼도 자신 안에 있는 수많은 능력을 꺼내 보지 못한 채 몇 가지 기술만 반복하는 것은 아닐까.
미술관은 전시회를 열 때 전국의 수장고에서 작품을 고른다. 어떤 작품을 벽에 걸 것인지,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지, 어떤 조명을 비출 것인지, 큐레이터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생각해 보면 골퍼의 라운드도 하나의 전시와 너무 닮았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는 순간 골퍼는 큐레이터가 된다. 오늘은 힘이 아니라 리듬이라는 작품을 꺼낼 것인가, 아니면 정확한 아이언이라는 작품을 전시할 것인가, 또는 차분한 마음이라는 작품을 내세울 것인가. 자신의 수장고에서 꺼낸 작품을 18홀이 펼쳐진 필드라는 갤러리에 걸어보는 과정이 바로 라운드가 아니겠는가.
수장고의 진짜 가치는 얼마나 많은 작품이 있느냐에 있지 않다. 큐레이터가 전시 기획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얼마나 적절하게 찾아낼 수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골프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부드러운 템포가 나타나기도 하고, 위기의 벙커에서 예상치 못한 침착함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 이런 작품이 내 안에 있었구나."
골프가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라운드는 점수의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수장고를 탐험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골프는 참 묘하고도 묘한 예술이다. 스윙은 붓질 같고, 볼의 궤적은 한 줄의 선묘이며, 라운드는 하나의 전시회와 다름없어 보인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세상에 걸리지 않은 작품들이 수없이 잠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골퍼의 진짜 과제는 더 멀리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장고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라운드마다 우리는 하나의 전시를 연다. 라운드 약속을 한 뒤 가슴이 뛰고 설레는 것은 다가올 라운드에는 어떤 작품을 꺼내 푸른 페어웨이 위에 펼쳐 놓을 것인가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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