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20번의 전율, OTT 드라마보다 재밌다”…후암동 미술관, ‘위험한 그림들’ 출간
명화와 세계사의 영리한 만남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촘촘’
타임머신타듯 ‘목격하고 체험’
![위험한 그림들 [교보문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8/ned/20260308072008240zvih.jpg)
[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1581년, 11월의 어느 날. 루스 차르국(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며느리 옐레나 쉐레메테바를 폭행했다.
어떻게 국가 행사에 그렇게 야한 옷을 입고 올 수 있느냐며 지팡이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그러나 이는 오해였다. 당시 옐레나는 임신 중이었다. 몸에 열이 많아졌기에, 어쩔 수 없이 얇은 복장으로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광기의 군주에게 그런 사정은 중요치 않았다. 단지 모든 것을 본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할 뿐이었다. 옐레나는 이 일로 인해 끝내 유산을 겪었다.
이반 4세의 만행에 분노한 황태자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제발, 그만 제멋대로 살라고 고함쳤다. 이반 4세는 또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곤… 며느리에 이어 이번에는 자기 아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러다 숨통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이 또한 감히 한 나라의 군주에게, 하늘 같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 아버지….”
황태자 이반의 마지막 신음 앞에서, 이반 4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안개처럼 짙었던 광기가 잠시나마 걷히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그가 감당해야 할 것? 아들과 뱃속 손주의 죽음, 완전히 풍비박산 난 집안,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이반 4세에게 잠겨 죽을 듯 밀려오는 건, 공포의 감정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이 역사가 백 퍼센트 사실이 맞는지를 놓곤 아직도 논쟁이 있긴 하다. 다만 러시아의 상당수 국민은 자국 내 가장 충격적인 역사의 한순간을 꼽을 때, 이 장면을 빼놓지 않는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이반 4세와 그의 아들>.
그림 속 이반 4세의 눈을 보라. 핏줄 선 눈동자가 직시하는 건 악령 같은 공포다. 죽어가는 황태자를 뒤늦게 끌어안지만, 이제 와 되돌릴 수 있는 건 무엇도 없다. 주름살과 힘줄, 머리와 코에서 쏟아지는 피는 각기 다른 높낮이의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앞서 글로 읽은 이야기는 더욱 깊은 몰입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듯, 거기서 어떤 비린내를 맡고 돌아온 듯 여운이 남는다. 괜히 숨이 가빠지고, 목이 따가워지기도 한다. 하릴없이 그때 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작품. 이러니 ‘위험한 그림’일 수밖에 없다.


‘후암동 미술관’을 쓰는 이원율 헤럴드경제 기자가 쓴 이 책 <위험한 그림들>은 명화를 앞세워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보는 이를 순식간에 끌어당길 수 있는 예술의 힘을 빌려 몰입도를 최대치로 높인다. 단순히 세계사를 ‘읽고 외우는’ 방식 아닌,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게 이끈다. 그렇게 지적 교양을 높이는 한편, 명화를 통해 예술적 안목을 키우는 법 또한 빼놓지 않고 알린다. 여러모로 영리한 구성이다.
책은 선사시대 벽화부터 고대와 중세, 근대와 현대 등 인류사의 가장 결정적인 20가지 장면을 조명한다. 빠질 수 없는 전쟁과 정복 여정은 물론 철학과 문학, 종교와 과학 등 단 한 권으로 다채로운 분야의 맥을 짚는다. “20개의 이야기로 20번의 전율을 안겨드리는 것. 그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더 깊은 감정을 마주하는 것.” 저자는 이런 마음으로 집필을 했다고 한다.
▷스파르타쿠스와 함께 들판에 서고 ▷소크라테스의 끝없는 질문에 답해본 후 ▷잔 다르크의 기적을 목도한 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색 용병을 구경하고 ▷제1·2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참상을 겪어보는 등 독자는 명화와 함께 ‘타임머신’ 타듯 시공간을 오갈 수 있다.
저자가 준비한 ‘위험한 그림들’은 이 과정에서 우리를 울리고, 때로는 감동을 줄 것이다. 그림 속 주인공, 아울러 함께 그려진 조연, 손짓과 표정, 날씨와 소품 등에 화가가 숨겨둔 복선은 생각할 거리도 안길 것이다. 비로소 역사를 제대로 경험했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난 2022년부터 헤럴드경제에서 문화예술 칼럼 <후암동 미술관>을 연재하고 있다.
구독자 수는 7만9000여명(네이버 기준). 꼼꼼한 자료 조사와 개성 있는 구성,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매주 새로운 글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헤럴드경제 <후암동 미술관>의 이름으로 국가보훈부 ‘모두의 보훈드림’에 150만원을 기부하는 등 선한 영향력도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가 생생한 전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 경험이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연대기의 강박에서 벗어나 한 인간, 한 시대가 극한의 선택 앞에 섰던 순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 각 에피소드를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처럼, 또는 집요하게 파고드는 다큐멘터리처럼 즐겨주면 좋겠습니다. 설렘과 벅참을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이는 저자가 덧붙이는 책의 목적과 쓸모다.
![위험한 그림들 [교보문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8/ned/20260308072009216qhwj.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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