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얼굴에 ‘빛’을 돌려주는 사람 [.txt]

한겨레 2026. 3. 8.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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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초상 l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사 도한나씨
14년째 이주노동자 곁을 지키는 상담국장
임금 체불·산재 상담부터 의료·금융 교육까지
정보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며 경청·공감 실천
상담받은 이들의 얼굴 빛날 때 가장 큰 보람
사단법인 노동인권회관에서 외국인노동자에게 각종 상담을 해주는 상담국장 도한나씨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도씨는 하루에 한번은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운 공지나 보도 자료가 있는지 검색한다. 이서수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몇해 전 동대문 중앙아시아거리에 가본 적이 있다. 어느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 찾아가 짙은 풍미의 음식을 먹었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거닐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구경하다 자연스레 그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만일 내가 외국으로 이주한다면 한인 타운을 부지런히 드나들 게 틀림없을 정도로 나는 한식을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그 거리에서 몽골 타운을 처음 보았을 때, 나처럼 타국에 머무를 때마다 고국 음식을 무척 그리워하는 누군가의 얼굴이 저절로 떠올랐다.

“요즘엔 고향 음식을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먹어야 되더라고요.”

중앙아시아거리를 함께 걸으며 도한나씨가 내게 말했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몽골 타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너비가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배송 업체, 휴대폰 판매점, 식료품점, 몽골 음식점, 네일숍. 빼곡하게 들어찬 상점을 가리키며 그가 덧붙인 설명을 들었다. 오랜 기간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사로 일해 온 그의 역사가 그 거리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상담 일은 2012년부터 했어요.”

도한나씨는 노동인권회관에서 상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내가 회관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전화기를 붙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중이었다.

“여긴 외국인 노동자 위주로 상담해주는 곳이고, 무료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법률적 도움이 필요하면 노무사와 연결도 해드리고요. 코로나 이전엔 산재(산업재해) 예방 교육도 진행했었어요.”

산재예방교육을 진행하며 사용했던 물품들. 이서수 제공

그의 말대로 선반 위엔 안전모와 작업화 같은 각종 보호장비가 놓여 있었다.

“제 업무는 임금 체불, 산재, 퇴직금 관련 상담과 의료 및 커뮤니티 지원이고, 현재 진행 중인 이주 배경 청년/노동자의 자산 형성 지원 사업도 맡고 있어요.”

임금 체불, 산재 관련 상담은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케이스마다 다른 것 같아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증빙 자료가 남아 있어서 해결 가능한 케이스도 있는 반면에 시간이 오래 지나 증빙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럴 땐 해결이 힘들죠. 노동부에서 지급하라고 명령해도 고용주가 돈이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고요. 왜 자기 말은 안 듣고 외국인 말만 들어주냐고 저에게 따지기도 해요. 결국 노동자가 돈을 덜 받고 합의하는 경우가 가장 안타깝더라고요.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인데, 고용주가 20만~30만원을 덜 주면서 당장 줄 수 있다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럴 땐 어떤 방법으로 악덕 고용주를 설득했을까.

“저는 이렇게 말해요. 노동자가 덜 받은 돈이 그 사람의 고국에선 한달치 생활비입니다. 그걸 깎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그런데 증빙 자료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면 고용주의 태도가 달라져요. 미등록 노동자의 경우는 특히 어려움이 많고요. 현금으로 받았으면 급여 명세서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증빙 자료가 없어서 혹은 비자 문제로 포기할 때가 참 안타까워요.”

상담국장으로서 그가 맡고 있는 업무들 가운데 어렵지 않은 일은 한가지도 없을 것 같았다. 의료 지원 역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병세가 크게 악화되거나 목숨이 위중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돕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상담사도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 지원은 안타까울 때가 정말 많아요. 사실 아프기 전에 와야 하는데, 돈 버는 게 우선이고 본국의 가족을 도와야 하는 게 우선이다 보니 자기 몸을 마지막에 돌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병이 악화된 상태로 오는 거죠. 그리고 몸을 써야 하는 힘든 일을 했을 경우, 젊은 나이인데도 인공 관절 수술까지 해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요. 나이가 50도 안 됐는데 말이죠. 의사가 그런 일은 되도록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무통 주사나 약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럴 땐 정말 마음이 아파요. 아직 젊은 사람인데, 관절이 다 닳을 때까지 일했다는 거잖아요.”

우리는 한동안 다른 얘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현재 진행 중인 지원 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진 질문에 그의 표정이 다부지게 바뀌었다.

“이주 배경 청년/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산 형성 지원 사업이에요. 대상자가 적금을 들면 우리가 6개월에 한번씩 적금액의 20%를 지원하는 사업이죠. 응원한다는 의미로요. 처음엔 외국인들이 안 믿었어요. 은행 가서 적금을 들면 순수하게 응원의 의미로 돈을 준다는 걸 믿기 어려워한 거죠. 이 사업은 적금이 중요한 이유를 알리고, 금융기관을 이용하게끔 권유하고, 작은 돈도 모으면 큰돈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해주려는 목적이에요. 금융 교육도 진행하는데 주로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을 해요. 피해자가 됐을 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요. 그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 뭘 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알려주죠. 다행히 2차 연도 사업은 응원 매칭금을 받은 대상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어요. 200명을 뽑는데, 이번엔 1차 접수 때 한번에 200명이 꽉 찼죠.”

응원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좋은 길로 이끌어주려는 강한 책임감도 느껴졌다.

“취업 면접비 지원, 취업 촉진 지원, 한국어능력시험 응시료 지원 사업도 있어요. 면접비 지원은 7만원씩 세번, 최대 21만원이 지급돼요. 지금보다 근로 환경이 더 좋고, 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취업 촉진 지원은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받으면 30만원을 지원해 주는 거예요. 이력서에 한줄이라도 더 추가할 수 있게 응원 차원에서요. 한국어능력시험 응시료 지원은 시험에 떨어져도 줍니다.”

합격하지 못해도 지원금을 준다는 말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응시자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주려는 마음이 느껴져서였다. 성과만이 아니라 과정과 노력도 중요하다는 걸 말이다.

“본인을 위해 시간 내서 공부했기 때문에 응원을 해주는 거죠. 당신이 자기계발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으니, 우리가 당신을 지지할게요, 응원할게요, 이런 의미예요. 이 네가지를 연계해서 이주 배경 청년/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업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인터뷰 일정을 잡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바쁜 그의 일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도한나씨가 상담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 이서수 제공

“주말에도 출근해야죠. 노동자들은 주말에 쉬니까요.”

실제로 중앙아시아거리에 있는 은행은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출근하면 저를 기다리고 있는 상담이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돼요. 저는 아직도 제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출입국 관련해서 비자 파일도 다양해지고, 연장과 변경 부분에 있어서도 바뀌는 경우가 있어요. 새로운 게 나오면 상담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하고, 하나라도 더 알아야 도울 수 있죠. 그래서 최저임금부터 잔업수당, 퇴직금 지급 관련해서 계속 정보를 업그레이드시켜야 하고요. 하루에 한번은 관련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새로운 공지나 보도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요. 끊임없이 배워야만 이 일을 잘할 수 있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는 모르는 게 많기 때문에 늘 공부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정말로 모르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기본자세가 그런 것 같았다.

“상담할 땐 그분들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기 위해 노력해요. 제가 아는 상황이라고 섣불리 결론부터 내기보다는 상대방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요. 그 사람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해도 그 안에서 모르는 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게 제 원칙이에요. 끝까지 경청하자. 그다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파악하고 도움을 주자.”

현재 진행 중인 지원사업 안내문. 이서수 제공

한국어가 서툰 사람이라면 어떻게 상담을 진행하는지 문득 궁금했다.

“항상 노트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해요. 어떤 상황인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알려주죠. 그런데 상담받으려면 어느 정도는 한국어가 되어야 해요. 몽골 사람이면 제가 몽골어로 할 수 있는데, 다른 국가면 한국어를 약간은 할 줄 알아야 하고, 그게 안 되면 통역을 이용합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이주해 온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점은 없을까. 나라마다 가치관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 말이다.

“그건 설득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저도 아직 노력 중이에요. 음식, 언어, 문화가 다 다르니까요. 종교적으로 편견을 가지면 절대로 안 되고요. 서로 간에 실례가 될 만한 말은 하지 말아야죠.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안 먹는 나라이면, 저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추천해달라고 먼저 물어요.”

첫 출근 날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당연히 기억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1년은 많이 헤맸어요. 내가 여기 와 있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도 했고요. 아는 게 없으면 도울 수가 없으니까 늘 공부했어요. 상담 하나를 해결했을 때는 통쾌감이 있죠. 오랜 기간 고민했는데 그 사람이 드디어 월급을 받았다고 하면 저도 무척 기뻐요. 처음엔 상담하면서 눈물을 많이 삼켰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적어도 따라 울지는 않아요. 그게 달라졌어요. 그 대신 깊게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죠. 공감이 가장 중요해요. 저도 힘든 일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는 몰라도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몇년 전에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삶이 그때보다 나아지면서 그분들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걸 볼 때, 그분들의 삶이 한층 나아진 걸 봤을 때 가장 큰 뿌듯함을 느껴요. 그러곤 다시 일하러 가죠.”

도씨의 일은 타인에게 빛을 찾아준다. 진정한 경청과 공감이 필요한 그의 일은 밝은 자리에 머물며 타인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려주는 게 아니다. 어두운 자리에 머물며 타인을 밝은 곳으로 밀어올려주되, 자신은 따라 올라가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서서 다음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소설가 이서수

소설가 이서수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몸과 고백들’,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등을 썼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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