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판이 바뀐다…60조 사업, 수주해도 문제? [노란봉투법 시행 D-2]

김현일 2026. 3. 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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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기업들 하청 노조와도 교섭 테이블 앉아야
대형 로펌들과 사내 교육 및 대응방안 마련 총력
원청 기업, 하청 노동자 임금·근태 관리 여부 쟁점
건건마다 노동위 판단 기다려야…대혼란 불가피
본사이전·구조조정도 단협 대상…쟁의 확대 우려
이달 10일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각 기업들은 개정 노조법에 대한 사내 교육을 실시하고 대형 법무법인들과 함께 쟁점별로 대응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사진은 한 자동차 업체 노동조합의 쟁의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김현일·권제인 기자]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6개월의 유예기간을 끝내고 오는 10일 전면 시행된다.

노사 양측 모두 이번 개정안이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 대변혁을 몰고 올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사관계는 물론 노노관계에 이르기까지 근로환경 전반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각 기업들은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작년 하반기부터 개정 노조법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사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 법무법인들과 함께 쟁점별로 대응방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8월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각종 우려가 쏟아지자 시행령을 개정하고 해석지침과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까지 제시하며 적극 해소에 나섰으나 시행 초기 혼란은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용자 인정’ 건건마다 노동위 판단 기다려야…대혼란 불가피

이번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 대기업은 직접 고용하지 않은 하청 노동자 단체와의 교섭 테이블에도 마주 앉아야 하는 점이 큰 변화로 꼽힌다.

개정 노조법 2조는 노조의 교섭 파트너인 사용자(사업주)에 대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원청 기업이 1, 2, 3차 등 여러 단계에 걸쳐 수백 곳의 하청업체를 두고 있는 국내 제조업 특성상 노사 교섭에 대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원청 기업의 교섭 대상이 되는 하청 노조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지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는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근로시간·작업속도·성과급·휴게시설 등 각각의 근로조건 결정에 얼마나 구체적·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를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결국 이를 놓고 노사 간 또 다른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의 해석지침은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생산계획, 작업일정, 근로시간, 휴게시간 등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하는 경우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명시했다. 반면, 원청 기업이 출입절차만 통제하고 근로시간은 하청업체의 고용주가 편성하는 경우 원청 기업을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구체적으로 결정했다는 근거가 있다면 사용자로 인정되겠지만 하청업체 고용주가 자율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엔 인정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영계와 노동계는 원청 기업의 ‘실질적·구체적’ 개입 정도를 명확히 가리려면 결국 개별 사건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6일 국회도서관에 열린 ‘민간부문 초기업 교섭의 제도화 과제와 실행 전략 토론회’에서 “조선업계 몇 군데 사용자들을 만나보니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라는 판단이 나오면 응하겠다는 곳이 꽤 많았다”며 “생각보다 아주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교섭 의제를 둘러싸고 생각이 다르다. HD현대중공업은 (하청 노조와의) 교섭에는 응하겠지만 임금 교섭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며 “임금에 대해선 실질적이고 객관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이런 점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사이전·구조조정도 단협 대상?…쟁의 확대 우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민간부문 초기업 교섭의 제도화 과제와 실행 전략 토론회’ 모습. 김현일 기자

단체교섭 대상을 놓고 해석의 여지가 넓어진 점도 변수로 꼽힌다. 개정 노조법은 임금·근로시간 외에 ‘근로자 지위에 실질적·구체적으로 변동을 초래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도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고 명시해 해석에 따라 쟁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본사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HMM이나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석유화학 업계가 특히 긴장하고 있다.

노조 측은 본사 이전이나 구조조정은 단순 사업 경영상 판단을 넘어 노동자의 지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노조가 이를 단체교섭 사안으로 주장하며 쟁의를 제기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SK인천석유화학과 GS에너지 등도 최근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개정 노조법이 석유화학 업계의 사업 재편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주요 위험요소로 명시하기도 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불황에 시달리는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물론 신사업 진출 역시 신속한 경영판단을 요구한다”며 “이를 두고 쟁의가 확대될 경우 경영상 결정도 지연돼 경쟁력만 뒤처질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강조했다.

“로봇 도입도 막힐 것…경쟁력 뒷걸음질”

이런 가운데 이번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각 기업들이 앞다퉈 진행하는 공장 자동화 작업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이 노동 생산성 강화를 위해 생산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하거나, 인공지능(AI) 전환을 확대할 경우 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파업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조는 개발·제조 계열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 도입 계획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 추진할 수 없다며 반발한 바 있다.

문제는 글로벌 제조업 경쟁이 로봇과 AI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전 세계 로봇 출하량의 약 87%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로봇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 생산성과 제조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노사 갈등에 발목이 잡힐 경우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최악의 경우 향후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 등과 같은 초대형 사업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노란봉투법에 따른 쟁위에 휘말려 납기 준수를 위한 정상적인 생산 활동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 업체들과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타이어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트럭·버스용 타이어(TBR)와 소형 트럭 타이어(LTR) 등 상용차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상용차는 바퀴 수가 많고 장거리 운행 비중이 높아 가격 민감도가 크다는 점을 노린 전략이다.

업계는 중국 내수경기 침체로 승용차용 타이어(PCR)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하청 노조와의 교섭 부담이 커질 경우 국내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중국산 전기차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했듯, 승용차 타이어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침투가 이어지고 있다”며 “복수 교섭단체와 협상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늘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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