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자산은 지갑 안에 있지 않다
[오문성 경희대 경영대학원 세무관리학과 객원교수 / 강남대 세무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암호자산 시장이 확대되면서 “코인은 어디에 보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암호자산을 은행 계좌의 돈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거래소 계정에 잔고가 표시되면 그 자산이 어떤 ‘계좌’나 ‘지갑’ 안에 들어 있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록체인의 세계에서 자산의 보관 구조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금융 시스템과 상당히 다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갑(wallet)’과 ‘니모닉(mnemonic)’이라는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암호자산에서 말하는 지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현금을 보관하고 있는 지갑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암호자산은 지갑 안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온체인) 위에 기록된 상태로 존재한다.
지갑은 그 자산 자체를 보관하는 공간이 아니라 해당 자산을 움직일 수 있는 개인키(private key)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도구다. 블록체인에는 특정 주소가 얼마의 암호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기록만 존재하고, 지갑은 그 주소를 통제할 수 있는 개인키를 관리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갑은 크게 핫월렛(hot wallet)과 콜드월렛(cold wallet)으로 나뉜다. 핫월렛은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지갑으로 스마트폰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형태로, 편리하지만 보안 위험이 존재한다. 반면 콜드월렛은 인터넷과 분리된 상태에서 개인키를 보관하는 전용 하드웨어 장치 형태로, 보안성이 높아 장기 보관에 적합하다.

12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니모닉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apple river stone camera yellow silver forest candle ocean window tiger paper
이 니모닉은 지갑의 시드(seed)를 복원하고 그로부터 개인키를 다시 생성할 수 있게 해주는 ‘마스터 키’ 역할을 한다. 니모닉은 지갑을 생성할 때마다 그 지갑에 종속돼 생성된다. 따라서 보안을 위해 인터넷에 연결된 핫월렛에서 콜드월렛으로 자산을 이전한다면, 자산은 이제 기존 니모닉이 아닌 새로운 콜드월렛이 발생시킨 니모닉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법적·실무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은행 계좌에서는 비밀번호를 통해 예금에 접근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계좌 명의자가 권리의 주체가 된다. 반면 블록체인 프로토콜 자체에는 명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키를 가진 사람이 기술적으로 자산을 이동시킬 수 있다. 물론 불법 취득 시 법적 책임은 별개여서 기술적 통제권과 법적 권리관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콜드월렛이나 니모닉 기록지가 압류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암호자산은 물리적 장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단순히 콜드월렛이나 니모닉이 적혀 있는 기록지를 확보했다고 해서 자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압류기관이 해당 자산을 다른 지갑으로 실제 이전하기 전까지는 피압류자나 니모닉을 알고 있는 제3자가 기존 니모닉을 통해 여전히 자산에 접근하고 이동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점은 암호자산 압류가 부동산이나 자동차 등 전통적인 재산 압류와 크게 다른 이유다. 전통적 재산은 물리적인 점유를 확보하면 통제가 가능하지만, 암호자산은 개인키라는 디지털 열쇠를 통해서만 통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지갑과 니모닉 기록지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자산 자체를 압류기관이 통제하는 새로운 지갑 주소로 즉시 이전해야 비로소 실질적인 통제가 이뤄진다.
결국 암호자산의 세계에서는 코인을 어디에 보관하느냐보다 누가 그 코인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통 금융에서는 계좌와 명의가 자산 관리의 중심이었지만, 블록체인에서는 개인키와 니모닉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자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수록 이러한 기술적·법적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지키고 관리하는 필수적인 금융 역량이 될 것이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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