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D 품은 파라마운트, 포기한 넷플릭스...누가 진정한 승자 될까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파라마운트가 제시한 주당31달러 총 기업가치 약 1,110억 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WBD 이사회가 승인하면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넷플릭스와의 기존 계약 파기에 따른 해약금 28억 달러를 파라마운트가 대납하는 조건을 포함해 WBD 이사회가 요구한 핵심 조건을 폭넓게 반영한 결과다. 앞서 넷플릭스의 827억 달러 제안을 받아들였던 WBD 이사회의 결정을 번복시키기에 충분한 자금과 조건이라는 평가다.
이번 합병이 성사되면 넷플릭스, 디즈니와 함께 글로벌 미디어 3강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WBD의 '해리 포터', 'DC 유니버스' 등 유명 영화는 물론이고 '왕좌의 게임', '프렌즈', '빅뱅 이론', '가십걸'과 같은 인기 드라마 시리즈 지식재산권(IP)이 파라마운트에 포트폴리오에 포함될 전망이다. 여기에 CNN 채널까지 인수 대상이다. 다만 CNN은 규제 당국의 요구에 따라 매각 조건이 붙을 수 있다. 현재 파라마운트는 '타이타닉', '탑건', '대부', '스펀지밥', '닌자거북이' ,'미션 임파서블' 등에 대한 IP와 CBS 등을 갖고 있다.

첫 비공개 입찰 가격은 WBD 주당 약 19 달러 였다. 파라마운트는 여섯 번에 걸쳐 인수제안가를 주당 30 달러까지 올리고 세부 조건도 수정했지만 WBD는 이를 거절했다. 12월 5일 WBD가 넷플릭스와 주당 27.75 달러에 핵심 사업부만 넘기기로 계약했다고 밝힐 때까지만 해도, 파라마운트의 인수 계획은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파라마운트는 더 공격적으로 나섰다. 인수가를 주당 30 달러로 올려 주주에게 직접 제안하고,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proxy fight)도 불사하겠다며 WBD 이사회를 압박했다.
결국 넷플릭스가 7일간의 협상 창구를 허용하면서, WBD는 지난달 17일 파라마운트에 '최종 및 결정적(best and final) 제안'을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을 다시 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4일 WBD 이사회는 파라마운트의 주당 31달러 제안이 넷플릭스 계약보다 우월한 제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비 판단을 내렸다. 이후 이틀 뒤인 26일, 넷플릭스가 끝내 가격 맞추기를 포기하자 WBD 이사회는 수차례의 거절 끝에 파라마운트를 최종 인수자로 확정했다.

파라마운트의 승부수는 '현금 동원력'이었다. 세부 조건으로는 △WBD의 보통주 전량을 주당 31 달러 현금 인수(약 1,110억 달러) △ 거래기한인 9월 30일 넘길 시 분기당 1주에 0.25 달러의 '정기 지연 수수료(ticking fee) 지급 △70억 달러 규제 해약금 (regulatory termination fee) 보장 △넷플릭스와 맺었던 '우선 협상권 및 독점 실사 계약' 파기 수수료 28억달러 대납 △엘리슨 가문·레드버드 캐피털의 470억 달러 자기자본 출자 △주요 은행의 540억 달러 부채 조달 등을 제시했다.

이번 거래에서 인수 자금의 핵심은 엘리슨 트러스트(Ellison Trust)가 확약한 457억 달러의 자기자본이다. 래리 엘리슨은 이 약정액 전액에 대해 '취소 불가능한 개인 보증(Irrevocable Personal Guarantee)' 제공을 약속했다. 대출 은행이 요구하는 지급 능력 증빙을 위해 필요한 경우 추가 자금 투입 의무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여기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 시티, 아폴로가 540억 달러 규모의 부채 조달을 확약하며 WBD 이사회가 우려하던 자본조달의 퍼즐을 완성했다.
정치 변수도 거래 전면에 등장했다. 래리 엘리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액 기부자이자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인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워싱턴 정가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로비활동도 광범위하게 펼쳤다고 민주당 의원들과 일부 현지 언론들은 지적했다. 파라마운트가 WBD 주주, 규제당국, 그리고 백악관을 설득하기 위해 전방위적 로비력을 발휘해 넷플릭스에 우호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키웠고, 할리우드 관계자들이 넷플릭스 인수에 우려를 표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파라마운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법무부 반독점국 차관보를 지낸 마칸 델라힘을 파라마운트의 최고법률책임자(CLO)로 영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그의 역할은 공화당 의원들과 정부 관료들이 넷플릭스의 입찰에 의문을 갖도록 로비 캠페인을 지휘하는 일이었다.
CNN은 파라마운트의 이 같은 노력이 넷플릭스에 대해 여야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우려가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실제 미 상원 사법위원회반독점소위는 넷플릭스의 WBD 인수가 미국 내 일자리와 할리우드의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공화당 의원 일부는 넷플릭스의 콘텐츠 편향성을 문제 삼아 법무부에 거래 저지를 촉구한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엘리슨-트럼프 유착과 언론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파라마운트-WBD 딜에 반대했다. 양측의 정치적 공세 속에서 WBD 주주들 사이에선 넷플릭스와의 거래가 장기간 규제 검토에 막힐 것을 우려해 파라마운트와의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독점금지법 조사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원칙론을 밝히면서도, 종종 넷플릭스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지난달 22일 트루스소셜에서 넷플릭스 이사회가 오바마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인 수잔 라이스 이사를 해임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기업 경영에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지난해 12월 1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넷플릭스는 이미 매우 큰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고,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하면 그 점유율은 더 커질 것이다"며 "나는 이 결정에 관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또 "CNN은 반드시 매각되어야 한다"라고 언급하며 파라마운트의 인수안을 선호한다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듯 데이비드 엘리슨은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내가 WBD를 인수하면 CNN을 대대적으로 개혁할 것"이라 약속했다고 WSJ가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22일(현지 시간)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에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엘리슨의 부친인 억만장자 래리 엘리슨의 지원을 보장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사진은 지난 17일 촬영한 로스앤젤레스(LA) 소재 파라마운트 픽쳐스 스튜디오 입구. 2025.12.23. /사진=권성근](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8/moneytoday/20260308060214696zksp.jpg)
규제 리스크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하트-스콧-로디노(HSR) 반독점 증진법'에 따른 대기 기간은 만료됐지만, 이것이 합병에 대한 공식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HSR은 법무부(DOJ)나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사전 신고하고 일정 기간 동안 합병을 중단(대기)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정부가 반독점 요소를 조사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하면, 기업은 제출한 뒤 대기 기간을 갖는데 이때 합병금지 가처분 신청 등의 공식 제동 없이 기한이 만료되면 사실상 긍정적인 신호로 여겨진다는 취지다. 다만 연방정부는 승인 검토 단계에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로 유나이티드헬스의 아메디시스 인수 사례처럼, HSR 절차가 진행된 이후에도 정부가 거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이밖에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독점 조사를 예고했고, 유럽 차원의 합병승인 절차도 남아있다. WBD의 일부 사업장이 유럽에 있는 만큼 영국 경쟁시장청(CMA)과 유럽위원회(EC)의 심사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동 국부펀드의 자금 유입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파라마운트가 지난해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공개매수 설명서'에는 외부 자금조달 파트너(Outside Investors)로 사우디공공투자기금(PIF), 아부다비 리마드 홀딩, 카타르 투자청(QIA), 그리고 재러드 쿠슈너의 사모펀드 어피니티 파트너스 등이 명시됐다. 투자 분석 기관 '프리 플로트(Free Float LLC)'는 중동의 3개 국부펀드 각각 80억 달러씩, 총 240억 달러를 투입하여 이번 인수전에 컨소시엄 파트너로 참여했다고 분석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CEO는 딜이 무산된 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로 "우리가 지불할 의향이 있는 범위가 매우 좁았고, 그 제안을 처음 합의할 때부터 거기서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며 "진입 지점도 만족스럽고, 퇴장 지점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또 그는 "투자자들의 반대 흐름은 '서사'의 리스크가 될 순 있어도 비즈니스 리스크는 아니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도하게 베팅 금액을 따라가지 않은 점에 대해 '주주 자본에 대한 규율 있는 관리자임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했다.
대신 넷플릭스는 파라마운트가 WBD를 대신해 넷플릭스에 지급한 해약금 28억 달러를 챙기게 되었다. 넷플릭스측은 이 자금을 신규 콘텐츠 제작과 자사주 매입에 쓸 계획이다. 또 넷플릭스는 WBD를 인수했다면 수년간 이어질 수도 있던 법적 싸움과 새로운 통합법인 정비의 시행착오를 피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라마운트가 당분간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패권에 쉽게 도전하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부채를 안긴 점은 숨겨진 전리품으로 여겨진다. 합병 법인이 WBD의 인기 콘텐츠를 넷플릭스에서 회수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부채 상환이 시급한 상황에서 '캐시카우(Cash Cow)'인 넷플릭스와의 거래를 즉각 중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넷플릭스는 인수 없이도 경쟁사의 콘텐츠를 공급받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넷플릭스에 남겨진 과제는 꾸준한 성장 동력이다. 넷플릭스 경영진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철수였지만, IP 자산 확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과제는 남는다. 당연히 장기 성장 목표를 달성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WBD의 스포츠 IP 확보가 무산됨에 따라 올해 콘텐츠 예산을 200억 달러로 상향 조정하는 한편 스포츠 및 실시간 스트리밍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하늬 기자 hone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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