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죄도 서사가 되는 여의도

서다빈 2026. 3. 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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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1년차, 경제부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다.

재판정에 선 기업 오너들을 지켜보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더팩트> 에 "사면이나 보석이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을 더 큰 정치인이 되는 서사처럼 이용하는 것 같다. 조금은 자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결국 범죄 이력이 정치 서사로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법을 지킨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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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수감도 '투쟁 서사'로 소비되는 정치권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 35% 전과 기록 보유
여의도에선 법을 지키면 바보인가

정치권에서는 재판과 처벌, 수감까지도 '정치 탄압'과 '투쟁의 서사'로 소비된다. 제22대 국회의원들이 2일 국회 개회식이 끝난 뒤 국회 본청 앞에서 단체기념사진촬영을 하며 손을 잡고있다./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ㅣ국회=서다빈 기자] 기자 생활 1년차, 경제부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다. 재판정에 선 기업 오너들을 지켜보며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왜 횡령 사건은 이렇게 잦고, 빼돌린 돈의 규모는 왜 늘 천문학적일까. 법정에 선 오너들의 표정은 대개 담담했다. 때로는 사과했고, 때로는 침묵했다. 적어도 법정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치부로 자리를 옮기고 1년쯤 지났을 무렵, 문득 정치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백한 범죄 혐의가 있어 수사를 받으면서도 그들은 정치적 탄압과 과도한 기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어느새 피의자는 '정치 검찰의 피해자'가 된다.

이 장면을 바라보며 떠오른 질문은 단순했다. 과연 정치권에서 재판과 처벌은 어떤 의미일까. 여의도 밖에서 전과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자 주홍글씨다. 반면 여의도에서는 전과의 무게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 기묘한 상식은 실제 정치권의 풍경과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재보궐선거 출마설의 중심에 섰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지난해 광복절 사면 이후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 대표 역시 이번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은 일부 정치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선관위 공공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모두의 선거'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 가운데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는 1193명으로, 전체의 35.2%에 달한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15일 오전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출소하고 있는 조 대표. /이새롬 기자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더팩트>에 "사면이나 보석이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면서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을 더 큰 정치인이 되는 서사처럼 이용하는 것 같다. 조금은 자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이 상식적인 의문은 왜 정치권에서는 소수 의견이 되는 걸까.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의 말은 더 직설적이었다. "결국 범죄 이력이 정치 서사로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법을 지킨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자조였다.

정치권에서는 재판과 처벌, 심지어 수감까지도 종종 '투쟁의 서사'로 포장된다. 지지자들은 이를 탄압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정치인은 그 서사를 정치적 자산으로 축적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경남지사 후보로 공천된 김경수 전 지방시대위원장이 도민들에게 먼저 사과의 뜻을 밝힌 장면이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말이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경남지사직을 상실했던 그가 도민들에게 "어떤 이유로든 끝까지 완수하지 못한 것은 대단히 죄송스럽고 송구하다"고 말하는 모습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정치는 서사가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그 서사의 출발점이 반드시 법정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여의도에서 가장 강력한 스펙이 재판 기록이 되는 순간, 법을 지켜왔던 사람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왜 여의도에서는 범죄까지 서사가 되는 걸까. 법을 지킨 사람이 바보가 되는 정치가 과연 정상일까.

bongous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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