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며 생기는 조형미…참 단정하다, 백제 문양[김미경의 문화유산, 뮷즈가 되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2026. 3. 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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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익산박물관 ‘금동제 사리외호’
금동제 사리외호 문양을 패턴화해 만든 스카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제공

핀란드 헬싱키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공간은 마리메코(Marimekko)의 플래그십 스토어였다. 마리메코는 1951년 설립된 핀란드 패션·섬유 브랜드로, 대표적인 ‘우니코(Unikko)’ 패턴은 양귀비꽃을 단순화해 반복 구조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를 모듈화하고 이를 다양한 제품군에 확장해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패턴은 홈웨어와 생활 디자인 전반으로 확장되며, 그 철학은 도시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돌아오는 길에 핀에어를 탔을 때 기내 냅킨에서도 같은 패턴을 만났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본 문양을 비행기 안에서 다시 보는 순간, 헬싱키라는 도시의 기억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 여행 당시에는 우리 유물을 패턴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다만 한국 문화에 대한 정체성은 분명히 있으면서도, 미적 경쟁력까지 갖춘 ‘시그니처 패턴’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생겼다. 유물의 형상 전체가 아니라 표면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그것을 반복 가능한 단위로 해체하고 재배열해 현대적 패턴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여러 번 시도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완성이라기보다 방향에 가깝다.

그 방향의 한 장면이 익산에서 시작되었다. 2020년 국립익산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우리 팀은 익산 지역 유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상품화하는 작업을 맡았다. 팔찌와 장신구, 여러 상품이 기획되었다. 그중 비교적 새로운 시도로 접근한 것이 패브릭 상품이었다. 출발점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붕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콘크리트를 덧발라 형태를 겨우 유지한 채 남아 있었다. 이후 전면 해체·보수 과정을 거치며 본래의 구조를 되찾는 긴 시간이 이어졌다. 해체 과정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고, 그중 하나가 금동제 사리외호(사진)다.

금동제 사리외호. 국립익산박물관 소장

금동제 사리외호는 백제 시대의 정교한 금속공예 기술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단순한 봉안 용기를 넘어 종교적 상징과 장인 기술이 결합된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표면을 빈틈없이 채운 문양의 구성은 장식 이상의 구조적 질서를 보여준다. 사리외호는 사리를 봉안하는 그릇이다. 뚜껑과 몸체가 정교하게 맞물리고, 표면에는 연꽃잎무늬와 인동당초무늬, 연꽃당초무늬가 촘촘히 새겨져 있다. 여백은 물고기알무늬와 구슬무늬로 채워져 있다. 장식이자 상징이며, 동시에 정교한 반복 구조를 지닌 조형 언어다.

우리 팀 디자이너는 그 표면을 하나의 패턴 원형으로 읽었다. 문양 일부를 추출해 모듈화하고 반복 간격과 밀도를 조정했다. 유물의 위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일상적 사용에 어울리는 리듬으로 낮추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패턴을 손수건과 천가방 등 패브릭 상품에 적용해 보았다. 화면 위에서 보던 문양이 실제 천 위에 펼쳐지자 예상보다 훨씬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이었다. 금속공예를 기반으로 한 문양이라 그런지 선의 긴장감과 곡선의 균형이 또렷했다. 반복될수록 리듬이 살아났다. 팀 안에서는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헤리티지 패턴을 하나씩 떠올리며 “이 정도면 우리도…” 하고 웃었던 기억도 있다.

처음 기획한 아이템은 손수건이었다. 다만 손수건은 일상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품목은 아니다. 그래서 사이즈를 조금 더 넉넉하게 조정해 미니 스카프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후 같은 패턴을 정식 스카프 라인으로 확장했고,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특정 전시나 시즌에 기대지 않고 패턴 자체의 매력으로 선택받는 상품이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실험이자 질문이었다. 한국 문화유산의 문양은 단지 과거의 장식이 아니라 현대 디자인의 원천 소스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 때 하나의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는가. 미륵사지 석탑이 해체를 통해 본래의 구조를 회복했듯, 그 안에서 나온 문양 역시 또 다른 맥락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복원은 유물이 지닌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다. 문양은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난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문화유산에 오늘의 감성을 더하는 브랜드 뮷즈(MU:DS)의 총괄 기획을 맡고 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등 국립중앙박물관을 ‘굿즈 맛집’으로 이끌었다.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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