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인권 조례 깨운 수원시… 전국 첫 ‘실무 가이드라인’의 의미
“조례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원시가 인권 행정 기준을 만든 이유
정치 현수막 혐오 표현 막는다
담당자 재량에서 ‘공통 기준’으로
수원시가 쏘아 올린 인권 행정 표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리 곳곳에 정치 현수막이 걸리고 각종 위원회나 시민참여단 공모도 이어지고 있다. 공적 표현물 게시와 위촉 절차가 동시에 늘어나는 시기지만 이 과정에서 차별적 표현이나 부적절한 질문을 사전에 규제할 기준을 마련한 지자체는 드물다. 경기도 내 다수 시·군들이 해당 문제를 다루는 ‘인권 기본 조례’를 두고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원시는 전국 기초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시민 위촉 면접 가이드라인’과 ‘현수막 인권침해 판단 매뉴얼’을 잇따라 마련했다. 인권 조례에 담긴 차별금지 원칙을 구체화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7일 조경만 수원시 인권담당관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절차나 표현물은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차별이나 혐오로 해석될 수 있는 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수원시 인권센터에 들어오는 진정 사례 중에도 차별 표현이나 절차 과정의 인권 민원이 꾸준히 제기돼 온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도입한 현수막 매뉴얼은 혐오·차별 표현 여부를 단계적으로 검토하도록 설계됐고, 이달 초 제작한 면접 가이드라인은 직무와 무관한 질문을 제한하는 기준을 담았다. 두 지침은 그동안 담당자 재량에 맡겨졌던 판단을 공통 기준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와 헌법재판소 판례 등 다양한 문헌을 참고 기준으로 삼았다.

조 담당관은 “그동안 시민 위촉 면접은 공통된 세부 기준이 없어 면접 방식이나 질문 내용이 담당 부서나 면접위원의 재량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특정 사례에 대응하기보다 시민 참여 행정이 확대되는 흐름에 맞춰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한 취지”라고 말했다.
현재 도내 대부분 지자체는 이런 판단 기준을 별도로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경기여성연대의 ‘경기도 인권 정책 운용 및 지원 근거 조례 모니터링’(2025) 보고서에 따르면 31개 시·군의 인권 관련 조례는 431개에 이르지만, 이는 활용이 아닌 상위법령 변화에 따른 용어 정비에 집중돼 있었다. 차별 금지나 권리 구제 등 핵심 내용을 손본 경우는 드물었다.
인권 기본 조례 제정 이후 예산과 조직 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유명무실해진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게 국가인권위원회의 2024년 실태조사 결과이기도 하다. 조 담당관은 “수원시는 경기도 최우수 인권 자치단체에 3회 연속 선정되는 등 그동안 인권 행정 경험을 축적해 왔다”며 “기초 지자체 차원에서 이런 실무 기준을 마련한 것은 처음인 만큼 다른 지자체에서도 인권 조례가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준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