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를 노래로 건너온 60년의 시간》

여성문학 60년의 자리에서, 김선영을 만나다
지난 2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사단법인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최균희)가 주최한 제1회 한국여성문학인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문학인회가 처음 제정한 '한국여성문학인상'은 단순한 문학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여성문학이 지나온 시간의 결을 다시 읽고, 그 창작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호명하는 일종의 문학적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운문 부문 수상자인 김선영 시인을 현장에서 직접 만났다.
제1회 수상자, 한말숙 · 김선영 선정
이날 시상식에서는 산문 부문에 소설가 한말숙(95), 운문 부문에 시인 김선영(88)이 각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두 수상자의 이름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넘어 한국 현대 여성문학의 흐름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평생을 문학의 언어로 살아온 시간이 이제 하나의 기념비적 이름으로 다시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공무도하가」에서 시작된 시의 질문
운문 부문 수상자인 김선영 시인은 수상소감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로 알려진 「공무도하가」를 언급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강을 건너다 익사한 남편을 바라보며 통곡 속에서도 악기를 켜고 노래를 불렀다는 설화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 비극 속에서도 통곡에 그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여인에게서 어떻게 노래가 나왔을까요."

절규를 서정으로 바꾸어 온 여성 시문학의 맥
김 시인은 이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시구를 통해 절망의 감정을 서정으로 바꾸어 온 우리 여성 시문학의 흐름을 짚었다.
옛부여의 「정읍사」와 고려가요 「동동」에 숨어 있는 무명의 여성 작자들에서부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후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 고전 시가의 여성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름 없이 시작된 여성 시의 전통은 근대의 모윤숙, 노천명, 나혜석, 김원주 등으로 이어지며 오늘날 수많은 여성 시인들의 창작으로 확장되어 왔다.
"진정한 상은 완성된 시를 쓰는 일"
김 시인은 수상소감 말미에서 "진정한 상은 제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완성된 시를 창작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외부의 인정보다 창작의 완성도를 향한 내적 질문이 시인의 삶을 지탱해 왔음을 고백했다.
또한 이번 수상의 영광을 이름 없는 무명 여성 시인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며 한국여성문학인회와 추천위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현장에서 이어진 존경의 목소리
현장에서는 김선영 시인을 향한 동료 문인들의 존경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박정민 시인은 "김선영 선생님은 인격적으로나 시 정신에 있어서 큰 스승 같은 분"이라며 "문학 이전에 삶의 태도에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평가했다.

여성 시정신, 다음 세대를 향하여
한국여성문학인회가 60년간 이어온 활동은 단순한 조직의 역사를 넘어 여성 문학인의 창작 환경을 지켜온 공동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날 김선영 시인의 수상은 개인의 문학적 성취를 넘어 우리 문학사 속에서 여성 시정신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절규를 노래로 바꾸어 온 오래된 시의 태도는 이제 또 다른 세대의 언어로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날 단상 위에서 울려 퍼진 시인의 목소리는 여성문학 60년의 시간을 넘어 앞으로 이어질 또 다른 시의 시간을 조용히 예고하고 있었다.
김왕식 기자 wangsik5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