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의 오빠들, 절 너무 싫어해요”…결국 목숨 잃은 남자, 국민적 사랑받는 이유는 [슬기로운 미술여행]
[슬기로운 미술여행 - 57]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드디어 저의 유럽 여행기가 끝납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려니, 1년 동안 쓴 보고서에 ‘최종’이라 제목을 붙이는 심정이네요.
제가 더블린에서 만난 마지막 미술관은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입니다. 현대미술관을 연이어 만난 북유럽 여행에서 모처럼 고전 미술관을 찾으니, 할 이야기가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읽고 그 사연을 만나보시길.


유럽의 여느 미술관처럼 이 곳도 우연한 시작이 있었습니다. 1852년 6월, 아일랜드 ‘철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다간은 왕립 더블린 협회(RDS)에 더블린의 레인스터 잔디밭에서 성대한 전시회를 개최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1815년부터 RDS의 본거지였던 이곳에서 그는 전년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시회에 못지않은 전시를 열고 싶었죠.
불과 11개월 후인 5월 12일, 놀라운 전시관이 개관했고, 건축가 존 벤슨은 이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열광적인 관람객들의 반응은 예술에 대한 높은 관심과 더불어 다간의 관대한 기부에 대한 합당한 헌사가 될 영구적인 공공 미술관 설립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전시회의 성공에 힘입어 특별 다간 위원회와 아일랜드 협회라는 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더블린에 국립 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이들은 박차를 가했습니다. 1853년 11월, 아일랜드 협회는 지금의 미술관 위치인 렌스터 잔디밭 인근을 포함하여 미술관 부지로 네 곳을 검토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10년간 새로운 미술관 건물의 건립 자금 마련을 위한 활발한 캠페인이 벌어졌죠.
프랜시스 포크가 설계한 미술관 건축물은 외관 디자인이 인접한 자연사 박물관과 동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탓에 지금의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완성이 됐습니다. 1864년 1월 30일 토요일, 칼라일 백작은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을 공식적으로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소장품은 단 112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었는데요. 그중 39점은 1856년 로마에서 구입한 것이었고, 나머지 30점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에서 대여한 것이었죠. 독립이전 더블린은 대영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전시실을 흡사하게 구성했고, 많은 작품이 실제로 대여가 이뤄졌습니다. 이 곳에서 내셔널 갤러리의 향수를 느낀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렌스터 잔디밭은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의 비극을 뒤로하고 아일랜드 자유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마이클 콜린스와 아서 그리피스를 기리는 케노타프(Cenotaph, 텅 빈 무덤) 기념비가 세워진 곳입니다. 나란히 마주한 아름다운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관은 더블린의 상징처럼 자리 잡게 됐죠.
현재 이 곳은 약 1만여 점의 유럽 및 아일랜드 회화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작은 미술관이지만 거장들의 걸작을 한두점씩 성실하게 모아놓았더군요. 대표작으로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 베르메르의 <하녀와 편지를 쓰는 여인>, 프레데릭 윌리엄 버튼의 <헬레릴과 힐데브란트, 포탑 계단에서의 만남> 등이 유명하고요. 아일랜드 거장 잭 버틀러 예이츠의 작품들도 핵심 소장품입니다.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체포]는 멀리서 볼수록 더 놀랍다. ©김슬기](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08130cxsk.png)
이 그림은 기록에는 남아있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춘 미스터리한 작품이었습니다. 1802년 소유자가 그림을 팔아버린 후 카라바조의 네덜란드 추종자였던 게리트 반 혼토르스트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은 원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재개했는데, 이는 오데사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이 1626년 마테이 가문의 다른 구성원을 위해 제작된 모사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93년 더블린의 한 예수회 신학교에서 우연히 발견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분실되거나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 작품의 놀라운 귀환이었습니다. 큰 관심 속에 아일랜드의 국보급 작품이 된 이 그림은 예수회로부터 영구 대여되어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는 1602년 로마의 후작 시리아코 마테이를 위해 이 특별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유다는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를 붙잡으려고 다가오자 입맞춤으로 예수를 알려줍니다. 왼쪽에 어리둥절하게 도망치는 제자는 사도 요한이죠. 달빛만이 군상을 고요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맨 오른쪽 등불을 든 남자의 얼굴을 통해 카라바조는 31세의 자신을 사건의 관찰자로 묘사했죠.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처럼요.
유작인 <우르술라의 유작>에서도 무언가를 말하려는 카라바조의 모습이 동일한 위치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책에서도 길게 썼던 기억이 있는데요. 다시 봐도 그림의 구도와 드라마적인 연출에 있어서, 그의 최고작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과 그녀의 하녀], 1670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09483qmqj.png)
![디에고 벨라스케스 [엠마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하녀], 1617-1618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0802iyon.png)
이 그림은 베르메르 말년 작품 중에서도 독창적인 구성을 자랑합니다. 하녀가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주인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림 앞쪽 바닥에는 붉은색 인장, 밀랍, 그리고 당시 개인 서신에 흔히 사용되었던 편지 쓰기 안내서로 추정되는 물건이 놓여 있습니다. 1987년, 알프레드 베이트 경과 베이트 부인이 기증한 ‘베이트 컬렉션’으로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엠마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하녀>의 주인공은 무어인 소녀입니다. 1617~1618년작인 초기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초기작의 왼쪽 배경에는 엠마오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그리스도가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전경에는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가 보이는데요.
예수를 조연으로 만든 기법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마르타와 마리아>와 동일한 기법입니다. 종교적인 주제와 세속적인 주제의 위계를 흔드는 기법은 피터 아에르첸을 비롯한 플랑드르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미술관은 설명합니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왕자의 초상화], 1560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2133soja.png)
이 작품은 파르마 공작의 아들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를 15세 때 모습으로 그렸는데요. 이 초상화는 의도치 않게 미술관이 소장한 최초의 여성 화가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1864년 구입 당시에 미술관은 앙귀솔라와 동시대 인물인 알론소 산체스 코엘로의 작품으로 여겼는데요. 이후에 연구를 통해 작가가 정체가 밝혀진 겁니다.
렘브란트의 <이집트로 향하는 여행 중 휴식과 함께한 풍경>, 프란시스코 고야의 <도냐 안토니아 자라테>, 베르트 모리소의 <르 코르사주 누아르>, 클로드 모네의 <아르장퇴유 분지에 있는 돛단배 한 척>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단한 거장들의 작품을 딱 한두점씩만 소장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더군요. 유명세를 얻은 작품 대부분은 베이트 컬렉션으로 기증된 작품들이었습니다.
![잭 버틀러 예이츠 [리피강의 수영], 1923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3482qbma.png)
![윌리엄 존 리치 [브르타뉴의 수도원 정원], 1913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4859pfei.png)
1923년작 <리피강의 수영>은 1920년부터 더블린의 연례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은 수영 경기의 분위기와 흥분을 포착했죠. 이 그림은 예이츠가 표현주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유려한 붓놀림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미술관은 기증된 그림을 비롯해 예이츠 가족의 아카이브도 방대하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인상파 화가 윌리엄 존 리치의 <브르타뉴의 수도원 정원>은 20세기 컬렉션의 간판입니다. 그림 속 리치의 첫 번째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생에스프리 수녀회 수련 수녀 복장을 하고 기도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뒤에서 수녀회 수녀들은 의식을 치르고 있죠. 이 그림은 리치가 브르타뉴를 방문하는 많은 예술가들과 공유했던 브르타뉴 공동체의 종교적 헌신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햇살에 대한 애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앨리스 닐 [도시 풍경], 1934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6307fztc.png)
1932년 앨리스 닐은 아편 중독에 시달리던 상선 선원 케네스 둘리틀과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1934년 12월, 둘리틀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녀의 회화 60점과 200점이 넘는 드로잉 및 수채화를 불태워버렸는데요. 이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방화 사건 이후 웨스트 42번가의 한 호텔에서 지내며 그녀는 이 눈 덮인 도시 풍경을 그렸죠.
“저는 그곳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창문에서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을 그렸는데, 전경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42번가를 올려다보면 사람들이 다 눈에 들어옵니다.” 닐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겨울 풍경과 이름 모를 사람들을 묘사한 이 그림은 닐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시련은 위대한 예술가를 담금질합니다.
이 미술관은 보면 볼수록 ‘미니어처 내셔널 갤러리’ 같으면서도, 아일랜드만의 개성도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더블리너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도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프레데릭 윌리엄 버튼 [헬레릴과 힐데브란트, 포탑 계단에서의 만남], 1864 ©National Gallery of Ireland](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07/mk/20260307081817768pzya.png)
이 그림은 2012년 아일랜드 공영 방송 RTÉ가 선정한 아일랜드가 사랑하는 그림 투표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2위는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였죠. 빛에 민감한 수채화의 보존을 위해 이 작품은 일주일에 단 2시간 동안(목요일 오전 11시30분~오후 12시30분, 일요일 오후 2시~3시)만 20번 방에서 공개됩니다. 월~수 사흘 일정을 잡았던 저는 만날 수 없었죠.(대성통곡)
이 작품의 주제는 버튼의 친구인 켈트학자 휘틀리 스토크스가 1855년에 번역한 중세 덴마크 정형시 발라드(Ballad)에서 가져왔습니다. 헬레릴이 자신의 호위병인 잉글랜드의 왕자 힐데브란트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헬레릴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해 그녀의 일곱 오빠들에게 젊은 왕자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버튼은 비극적인 결말 직전, 두 연인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낭만적인 순간을 상상해 이 아름답고 섬세한 수채화를 그려냈습니다.
헬레릴의 발치에 떨어진 흰 장미와 짓밟힌 꽃잎에 담긴 의미가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에 흰 장미는 순결, 무구함, 영원한 충성의 보편적인 상징이었죠. 떨어진 장미는 순결의 상실이나 헬레릴이 겪게 될 가혹한 운명, 연인의 미래가 파괴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이 흩뿌려진 꽃잎들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짧고 파멸적일 것인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은유죠.
기법적으로 이 그림은 수채물감과 구아슈를 레이어링한 작품인데요. 수채의 투명함은 세밀한 표현에 깊이감을 만들어냅니다. 버튼은 냄새에 대한 신체적 거부감으로 평생 유화를 그린 적은 없지만, 색채의 강렬함은 유화와도 흡사하게 보입니다. 수채화의 정교한 겹겹이 쌓는 기법은 그가 초기에 세밀화가로 훈련받았음을 알려주죠.
그림에 영감을 준 휘틀리 스토크스의 누이 마거릿은 1898년 이 수채화를 구입해 소장했고 1900년 세상을 떠나며 이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해 시민들의 품에 있게 됐습니다. 학자들은 마거릿과 버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데요. 수채화를 구입한 건 수십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의 곁에 머물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걸작을 발표한 지 10년 후인 1874년, 버튼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관장으로 임명됩니다. 어릴적 사고로 오른손을 못쓰는 ‘왼손잡이 수채화가’로 알려졌던 화가가 갑작스레 미술 정책의 수장이 된 셈이죠. 그의 임명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으나, 그의 높은 감식안과 학술적 전문 지식은 그를 전설의 관장으로 기억되게 만들었죠. 미술관 운영에 전념하려 그는 붓을 꺾었지만 1894년까지 20년간 그는 이 곳을 세계 최고 미술관으로 이끌었습니다.
버튼의 화가로서의 안목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을 포함한 500점 이상의 작품을 인수했는데요. 유명한 기를란다요 <소녀의 초상>의 복원을 감독해 되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그대로 간판 작품의 기틀은 이때 다져졌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암굴의 성모>, 한스 홀바인 <대사들>, 라파엘로 <안시데이 마돈나>가 그가 수집한 걸작들입니다.
1900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더블린에서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아일랜드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하기도 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의 명성을 만들어낸 위대한 화가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저는 미술관을 떠났습니다. 유럽에서의 120번째 미술관은 언젠가는 다시 오지 않을까하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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