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호르무즈, ‘트럼프 풋’은 다시 작동할까 [미국vs이란 전쟁]
[커버스토리]

호르무즈해협 폐쇄라는 직격탄에 이틀 만에 1200포인트가 증발했던 코스피가 다시 숨을 고르며 반등을 꾀하고 있다. 3월 5, 6일 양일 기준으로 시장은 공포를 뒤로하고 빠르게 ‘트럼프 풋(Trump Put)’에 베팅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촉발한 위기가 경제 파국으로 치닫기 전 결국 통제력을 발휘해 수습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른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겁먹는다)’ 트레이드가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주가가 10~15% 수준의 급락세를 보이며 경기침체 신호를 보내면 트럼프가 결국 발을 뺄 것이라는 시장의 학습 효과다. 실제로 유가가 폭등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즉각 호르무즈해협 유조선 호송과 보험 보증을 언급하며 진화에 나선 것은 이러한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낙관은 이르다. 이번 전쟁이 트럼프의 계산대로 흘러갈 ‘통제 가능한 변수’인지가 관건이다. 밥 엘리엇 언리미티드 CIO는 “전쟁은 시작되는 순간 자체적인 동력을 갖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정책 결정 때처럼 모든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기존의 저점 매수 공식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제 투자자들은 ‘TACO’의 유효성과 ‘장기전의 늪’ 사이에서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을 맞이했다.
1. 한국 주식: 밀리면 의심하지 말고 사라?

최근 우리 증시를 뒷받침했던 기록적인 상승폭은 조정 국면에서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급락을 ‘패닉 셀링’의 이유가 아닌 ‘비중 확대’의 기회로 권고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의 물리적 충돌이 증시의 단기 방향성을 결정하겠지만 펀더멘털의 훼손보다는 심리와 수급 요인에 의한 과도한 쏠림이라는 진단이 우세하다.
실제로 국내 증시의 핵심 동력인 반도체 이익 모멘텀은 여전히 견조하다. 조아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쟁 양상의 불확실성으로 당분간 변동성 장세는 불가피하겠으나 이익 체력을 고려할 때 현재의 하락은 과도한 수준”이라며 “현 구간에서 매도의 실익은 크지 않으며 오히려 밸류에이션 부담이 완화된 만큼 주도주 중심의 비중 확대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4주 이내 종료’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현재 시장에 투영된 공포는 지나치게 앞서 나간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이번 조정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란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2분기(3~5월)는 계절적으로 조정에 취약한 시기였고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며 “과거 3저 호황이나 닷컴버블 당시 급등 후 조정폭이 -15%에서 -23%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코스피 4850~5400선 부근이 하방 지지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동 리스크나 Fed의 긴축 우려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투자를 중단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시장의 눈은 ‘출구’를 향해 있다. 김두언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충격은 초반에 공포가 과도하게 가격에 반영되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순식간에 제거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장세를 대응하는 핵심 키워드로 ‘밀의사’(밀리면 의심하지 말고 사자)를 제시했다. 공포가 극에 달해 주가가 밀려날 때가 오히려 주식을 사 모아야 할 적기라는 뜻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낙관보다 ‘분할 대응’과 ‘체크포인트 확인’을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만약 코스피가 다시 급락해 심리적 마지노선인 4850선마저 내어주거나 유가가 트럼프의 호송 발표에도 불구하고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해 안착한다면 이는 단기 조정이 아닌 침체의 신호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빅 이벤트도 남았다. 3월 말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다. 이 전후의 유가 향방이 자산시장을 결정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펀더멘털을 믿고 주도주를 담으라는 조언이 우세하지만 동시에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현금 비중 유지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주도주는 단연 반도체다. AI 투자가 이 사태로 중단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핵심이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의 업종별 분석에 따르면 반도체 업종은 단기적인 매크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AI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세라는 강력한 펀더멘털을 보유하고 있다. 김선우 애널리스트는 “D램 업황은 중간점(Mid Cycle)에도 미치치 못한 상태”라며 “현재 발생하고 있는 DRAM 공급부족 현상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우며 빨라도 2027년 중반에나 수급 균형이 맞춰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천주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다.
반도체 소부장, 전기전자 업종 역시 이번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김동관 애널리스트는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나 AI 인프라 투자 확대 기조 속 반도체 소재·장비의 쇼티지 완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방산과 조선은 이번 위기의 가장 확실한 ‘도피처’이자 수혜주로 꼽힌다. 전 세계적인 안보 긴장 고조는 K방산의 수출 동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호르무즈해협의 불안은 오히려 해상 물류 경로의 재편과 신규 선박 발주 수요를 자극해 조선업의 업황 개선을 앞당기고 있다. 배기연 애널리스트는 “미국 외 전 세계적인 해군력 확대 수요가 이란 전쟁으로 인해 더욱 자극받은 상황”이라며 주목해야 하는 핵심 이벤트로 트럼프 대통령의 ‘FY2027 예산안’ 제출을 꼽았다. 그는 “황금함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발표와 K-조선이 협력할 수 있는 시장 규모가 확정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유가 급등과 물류비용 상승의 직격탄을 맞는 항공, 해운, 정유 업종은 당분간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 유가 상승이 원가 부담으로 직결되는 산업군에서는 이익 전망치의 하향 조정이 뒤따를 수 있어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2. 금 : 안전자산의 배신인가 기회인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해야 할 금은 이번에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전쟁 발발 초기 금값은 오히려 하락하며 안전자산 투자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는 달러 강세와 국채금리 급등이 금의 매력도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옥지회 삼성선물 애널리스트는 “현재 시장은 위험 회피보다 통화정책과 달러 가치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지금의 금은 ‘전통적 안전자산’보다는 ‘달러 대안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진 만큼 환율이 안정을 찾는 것을 확인한 뒤 진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이다.
중장기적인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전략가들은 금값이 온스당 5700달러까지 치솟으며 뒤늦은 랠리를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중동의 ‘오일머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지역 정부의 재정이 넉넉해지면 중동 중앙은행들이 금괴 매입을 늘려 가격 하단을 탄탄하게 지지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전 세계 순매입량 400톤 중 약 90톤을 중동 국가들이 사들였던 전례가 있다.
무역 흐름 역시 금값의 변수다. 전 세계 금 흐름의 약 20%가 두바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중동의 물류 환경 변화는 금 수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은행의 외환 전략가들은 단기적으로 통화 변동성에 따른 양방향 위험이 존재하지만 달러 강세가 진정되는 시점이 금의 진정한 반격이 시작되는 타이밍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험자산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비트코인은 이번 위기에서 놀라운 회복력을 증명했다. 공습 직후 9700만원대까지 밀리며 패닉을 유도하는 듯했으나 이내 반등에 성공하며 심리적 저항선인 1억원 선을 굳건히 방어했다.
전망은 밝다. 전쟁 조기 종료 기대감이 시장에 퍼지자마자 비트코인은과 이더리움은 주요 자산군 중 가장 빠른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이는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이 지정학적 위기나 통화정책 변화에 흔들릴수록 중앙화된 권력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금’으로서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3. 유가와 환율: 변동성의 상한선을 주시하라
투자자들이 자산 포트폴리오의 생존을 위해 점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표, 결국 해답은 유가와 환율이다. 주식시장 자체에 답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수급의 키를 쥐고 있는 외환시장과 실물경제의 급소인 에너지가 향후 장세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한투자증권 노동길 애널리스트는 “외환시장과 미국 채권시장이 불안할 경우 외국인은 가격과 무관하게 포지션을 줄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1480원대에 안착한 원·달러 환율이 고착화될 것인지, 아니면 완만하게 하락할 것인지에 따라 외국인 선·현물 수급이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지금은 주식판의 호재보다 환율의 ‘안착’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할 때다.


중동 리스크가 금융 시장에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경로는 단연 국제유가다. 삼성증권 허진욱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연초 이후 상승한 유가 중 약 20% 내외가 이란 관련 리스크 프리미엄이다. 그는 “유가 상승이 1~2개월 내에 20~30% 수준의 단기적 상승에 그친다면 글로벌 경제 궤적을 수정할 정도의 충격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선물에 따르면 향후 시나리오별 유가 전망은 저강도 긴장이 지속되는 경우, 호르무즈 봉쇄가 강화되는 경우, 전면전 혹은 정권 붕괴다. 저강도 긴장이 지속되는 경우엔 미국은 제한적 공습을 유지하고 이란은 대리 세력을 활용한 ‘약속대련’ 식의 보복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전면전이 부담스러운 양국 이해관계가 맞물려 유가는 현 수준의 프리미엄을 유지하며 횡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이 해상 수송 교란 카드를 보다 더 본격화할 경우엔 유가는 9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 단기 원유 물동량이 축소되며 글로벌 공급망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구간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면전 혹은 정권 붕괴다. 핵시설 대규모 파괴나 이란 내부의 권력 구조 급변 시 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되고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이 불가피해지는 국면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분석 또한 이러한 시나리오별 유가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블룸버그는 사태가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심화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8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상당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하고 경제성장에 타격이 불가피해져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긴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분석이다.
반면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이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는 ‘중간 정도의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80달러 선에서 관리될 것으로 보았다. 이때는 인플레이션 상승폭이 완만하고 경제성장에 미치는 타격도 제한적이어서 중앙은행들 또한 부분적인 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조기에 휴전이 성사되거나 이란 내부의 정권 붕괴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유가는 65달러 수준까지 떨어지며 경제적 영향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유가 상승이 미국과 미국 외 지역(Non-US)에 미치는 ‘비대칭적 영향’이다. 에너지 순수출국인 미국은 유가가 오르면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 쇼크’를 겪지만 한국을 포함한 에너지 순수입국들은 물가보다 성장이 꺾이는 ‘성장 쇼크’를 더 크게 받는다. 실제로 유가가 10% 상승해 장기화될 경우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 주요국은 인플레이션이 0.1~0.2%포인트 오르는 사이 성장률은 0.2~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적인 한국, 대만, 태국이 유가 변동에 가장 취약하다고 지목했다.
결국 관건은 트럼프의 ‘TACO’ 회로가 작동하느냐다. 허진욱 애널리스트는 “중간선거를 8개월 앞둔 시점에서 미 증시가 5~10% 하락하면 트럼프가 유화적으로 변하는 ‘피드백 루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짚었다.
반면, BCA 리서치의 아서 부다건 수석 전략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시장 변동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낙관론이 위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풋’이라 불리는 시장 하방 지지력이 항상 작동할 수는 없으며, 정책적 개입이 실패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글로벌 위험 자산의 취약성이 여전한 만큼, 정부의 정책 전환이 매번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에 기댄 투자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대외적인 지정학적 목표와 국내 경제 안정이라는 상충하는 과제 사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이란 정권 교체라는 강경한 외교 노선이 미국의 경제 성장과 증시 강세, 저유가 유지라는 국내 의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분쟁은 과거보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 석유 공급망 혼란이 금융 시장에 지속적인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BCA 리서치는 현 상황이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와 유사한 에너지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유가는 단 몇 달 만에 170% 폭등한 반면 S&P 500 지수는 20% 급락했으며, 주식 시장은 유가가 정점을 찍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투자자들은 유가 90달러, 환율 1500원이라는 상한선을 머리에 두고 트럼프의 입과 호르무즈의 물길을 동시에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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