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자 가족 만나 '장기기증' 권유하는 이들의 제1원칙은 "절대로 설득하지 않는다"

박지윤 2026. 3. 7.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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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의 노동]
<24>장기 구득 코디네이터 박수정
편집자주
전문적이지 않은 직업이 있을까요? 평범하고도 특별한 우리 주변의 직장·일·노동. 그에 담긴 가치, 기쁨과 슬픔을 전합니다.
4일 서울 서대문구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14년 차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 박수정(43)씨를 만났다. 2006년 인하대병원 응급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그는 서울대병원 소아과 병동을 거쳐 2013년부터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는 60여 명이다. 박시몬 기자

새벽 3시 20분, 밤의 적막을 가르고 장기 구득(求得) 코디네이터 박수정(43)씨의 휴대폰이 매섭게 울린다. 휴대폰 벨소리는 언제나 최대 볼륨에 맞춰져 있다. 깊이 잠든 상태에서 전화가 와도 3초를 넘기지 않고 받기 위해서다. 뇌사 추정자가 발생했다는 호출이 오면 그곳이 제주도든 강원도든 짐 쌀 겨를도 없이 곧장 병원으로 향한다. '일단 출동'이다.

병원 문을 여는 순간부터 감정의 스위치는 잠시 내려둔다. 뇌사 추정자의 장기가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여자라서 안 때린 줄 알라"며 분노를 쏟아내고, 또 어떤 이는 "당신도 나처럼 남편을 잃어봤냐"며 힐난을 퍼붓기도 한다. 모진 말이 쏟아져도 그저 묵묵히 듣는다. "그것도 다 제 소임이거든요." 가눌 길 없는 슬픔 속에서 어찌해볼 도리 없이 터져 나오는 말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무력할 때, 닿을 수 있는 건 차라리 행동이다. 자식, 부모, 배우자를 잃고 무너진 가족의 어깨가 한기로 떨릴 때마다, 박씨는 말없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준다. "며칠 전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신 어머니께 외투를 빌려드렸어요. 조직 기증 절차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어머니께 외투를 돌려받으니, 소매에 허연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더라고요. 순간 그 옷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그는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되뇐다.

"눈물에도 무게가 있다면, 내 일이 마주하는 눈물만큼 무거운 눈물은 없을 거다, 잊지 말자."


불문율의 대원칙, "절대로 설득하지 않는다"

'무겁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으로 버텨온 시간이 벌써 14년째다. 박씨가 2013년부터 몸담고 있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은 보건복지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뇌사자의 장기 구득을 전담한다. 국내의 모든 병원은 장기이식법에 따라 뇌사 추정 환자가 발생하면 반드시 KODA에 통보해야 한다. 이 연락을 받고 뇌사자와 그의 가족을 찾아가 장기 기능이 가능한 상태임을 안내하는 것이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의 주요 업무다.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깊은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어떻게 설득하냐'고. 이에 대한 박씨의 답변은 예상을 벗어난다. '설득하려 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결정을 하시든, 절대로 가족들의 마음에 후회가 남아서는 안 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운명을 내 손으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장기 기증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뇌사 추정자의 가족들을 섣불리 회유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수혜자를 언급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 역시 금물입니다. 뇌사자 가족들이 분위기나 상황에 떠밀려서 뭔가를 결정했다는 느낌을 가져선 안 되니까요."

박씨가 업무 중에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 노력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설명에 감정이 실리면, 가족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결정이 끝나고 나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족들을 살핀다. 장례식을 앞둔 이들에게 "하루에 수백 번씩 절을 하다보면 꼭 무릎이 상하더라"며 파스를 챙겨주고, 발인 날이 밝으면 그날의 일기예보를 확인해 미리 여벌 옷이나 우산을 준비하라고 귀띔하는 식이다.

"제게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신 분들은 오히려 걱정이 덜 됩니다. 정말 걱정되는 건 모든 상황 앞에서 너무 차분한 분들이에요. 화를 낼 기력조차 없는 분들이거든요." 이런 경우라면, 박씨는 기증 절차가 마무리된 다음에도 꾸준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별 얘긴 안 해요. '지금 뭐하세요' 여쭙고. 술 드시고 계신다 하면 '안주는 챙겨 드셔야 한다'고 당부드리고. 끊을 때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전화하겠다고 꼭 말씀드리죠."

내일 밤에 걸려 올 전화라도 있다면, 다음 날 하루 정도는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까 싶어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종류의 임종 과정에 동행하는 일'이라고도 여긴다.

장기 기증에 동의한 뒤에도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끝까지 되묻는 가족들이 적지 않다. 박씨는 그들 곁을 지키며, 후회 없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윤기훈 인턴기자

사실상 전문 의료인... "베테랑 간호사에게만 지원 자격 부여"

가족으로부터 동의를 얻는 과정이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절차이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기증이 결정되고 나면, 뇌사 판정을 위한 행정 절차를 진행하는 동시에 수혜자 측 병원과 수술 시간을 조율하는 등 장기를 적출하는 과정 전체를 조율해야 한다. 허혈 시간이 제각기 다른 심장, 폐, 신장 등의 장기들이 최상의 상태로 수혜자에게 갈 수 있도록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것 역시 이들의 책임이다. 때문에 장기 구득 코디네이터는 최소 3년 이상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간호사만 지원할 수 있다. 박씨 역시 과거 상급 종합병원 응급실을 거쳐 소아과 신장 투석실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베테랑 간호사였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경찰·검찰을 찾아가 '한 번 더 숙고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예삿일이다. 장기 상태 확인을 위해 급히 CT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땐, 같은 병원 다른 층에서 막 아이를 출산하고 몸을 추스르고 있던 영상의학과 교수를 찾아가 "제발 잠깐만 와서 봐 달라"고 읍소까지 해봤다.

"한 번은 보라매공원에 응급 헬기를 착륙시켜야 하는데, 현장에 가보니 차량 진입용 말뚝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거예요. 구급차를 들이겠다고 그걸 다 뽑아본 적도 있다니까요." 보라매병원에서 적출한 심장을 최상의 상태로 이송하기 위해 1분이라도 빨리 의료진이 헬기에 타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업력 14년... 그럼에도 여전히 사무치게 힘든 순간은 있다

매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을 누비며 가슴에 굳은살이 박인 그에게도 여전히 유독 힘든 현장은 있다. 뇌사 추정자가 어린아이일 때다.

지난해 가을,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에서 "여덟 살 뇌사 추정자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는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조용히 빌었다. "차라리 보호자가 나와의 만남을 거부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 역시 아직 어린 자매를 키우는 어머니였기에, 참혹한 광경을 견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중환자실 문 앞에 서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어떡하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고요. 그 자그마한 아이의 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붕대로 감싸져 있었어요. 온몸에 화상을 입은 거예요." 아이를 뇌사 판정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구급차에 태우며 그는 한참 눈물을 쏟았다.

아이는 간과 두 개의 신장으로 세 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박씨는 아직도 한강성심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장기이식센터 벽 한쪽에 마련된 아이의 이름 앞에서 묵념을 올린다.

최근 9년간 국내 장기 기증 추이. 뇌사자의 장기 기증 수는 2023년 잠깐 반등한 이후 다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평범한 이들의 선량함을 믿기에"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의 숭고한 선택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한번은 오랜 시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냈던 70대 뇌사자의 배우자가 기증 동의서에 사인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간 우리가 나라의 도움을 받아왔던 만큼, 이 사람 역시 가면서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떠났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가 받은 것들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 같아서요." 박씨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흙이 딱 한 줌만 있어도,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구나 싶더라고요. 충분히 가지지 못한 분들이 기꺼이 타인을 위한 선량한 선택을 하실 때, 세상이 정말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박씨는 몇 년 전부터 떠난 자들의 선량함을 기리기 위한 작은 의식을 만들었다. 장기 기증 수술이 끝난 수술실에 남아 기증자의 몸을 정성껏 닦아드리며, 살아생전 그가 사랑했던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다. 고인을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으로 모시기 전까지, 십 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기리며 애도하는 과정이다.

"나훈아를 특히 좋아하셨던 고인에겐 그분이 즐겨 들으셨다는 '홍시'를, 신실한 기독교 신자셨던 고인에겐 찬송가를 틀어드렸어요. 지난가을 보내준 여덟 살 아이의 머리맡엔 아이가 생전에 가장 좋아한 간식인 킨더조이 초콜릿을 놨던 기억이 나네요.

법적으로는 뇌사 판정 시점을 사망 시점으로 보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짜 임종은 장기 이식 수술이 끝나고 고인을 정리해드리는 이 순간이에요. 어떤 삶을 살았든, 마지막이 어땠건,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키는 마지막 예의라고 그는 믿는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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