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그 한의원장이 1000만 러너들에게

김홍준 2026. 3. 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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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미국 록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노래 제목처럼(가사 내용은 다소 비관적이지만), 인간은 ‘달리기 위한 운명(Born to run)’일까. 봄. 스멀스멀 아지랑이 피는 박자에 맞춰 슬슬 몸을 푸는 1000만 명. 우리나라 러닝 인구란다. 지난해 250여 개의 마라톤 대회에 100만 명 넘는 이들이 질주했다. 러닝화 시장 규모가 4조원에 이르고 해외 마라톤·트레일러닝 대회 패키지 상품도 뜬다. 코로나19 당시 ‘혼자 운동(혼운)’의 하나로 달궈진 바람이었다. 방송인 기안84도 뛰면서 그 바람이 지금 광풍 수준이다. 그 맞바람도 거세다. 부상의 바람이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인 1월 1일 오전 11시 11분 11초,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서 이색 새해맞이 맨몸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이날 한겨울 동장군의 날씨를 잊고 맨몸의 뜨거운 열정으로 전국에서 모인 2026명의 남녀노소 참가자들이 힘찬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 봄바람에 기록에만 연연 말고
차근차근 마일리지 쌓듯 뛰자

서울 올림픽공원의 아침도 러너 100여 명으로 들썩였다. 러너들은 그냥 달리지 않는다. 최민용(34)씨처럼 기록 욕심을 내는 이들이 많다. 최씨가 “오늘 기록을 줄였으니 몸을 더 바짝 올려야겠다”고 했다. 조상호(42)씨는 “그렇게 잘 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며 말렸다.

예일대 의대 연구진은 러너의 50%가 한 해 한 차례 이상의 부상을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 피로 누적보다 한 번에 훈련 거리를 크게 늘렸을 때 부상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연구(덴마크 오르후스대)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날이 풀리는 3월의 운동 부상은 2월보다 15% 증가한다. 스포츠 손상 환자의 30%는 러너다.
조상호 달리기한의원장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러닝 전 몸을 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조씨는 “초급 러너들은 무릎, 중급은 발목과 장경인대, 상급자는 허리를 주로 다친다”고 자세히 말했다. 조씨는 한의사다. 그가 꾸리는 한의원 이름을 들어보면 좀 색다르다. ‘달리기한의원’이다.

조 원장은 운동을 못 했다. 어머니께 ‘제게 운동 유전자가 없는 거냐’고 하소연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운동을 안 했다. 학교 체육 시간은 지옥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때 서서히 몸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살아야겠다”며 팬데믹에 폐쇄된 헬스장 대신 산스장(산속 헬스장)으로 향했다. 동네 뒷산인 경기도 광명의 도덕산(200m)을 기진맥진하며 올랐다. 그러더니 산행 시간이 늘고 속도도 빨라졌다. 산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25㎏이 빠졌다.

Q : 그래서 한의원 이름이 ‘달리기’이군요.
A : “러너 1000만 명 중에 한의사가 한두 명이겠습니까. 전 러닝, 아니 운동 자체를 ‘밑바닥’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러닝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알려주고도 싶고요.”

Q : 러너들의 어려움이라면요.
A : “러너들은 뛰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만, 대부분 기록 욕심을 냅니다. 게다가 스트레칭 없이 뛰는 분들이 많아요. 부상이 따를 수밖에요. 그런데 러너들은 부상을 입어 뛰지 못하면 우울증까지도 겪어요. 이렇게 말해줍니다. 어쩌면 부상은 러너에게 수준 향상을 위한 ‘시련 퀘스트’라고요. 잠시 멈추고 근력을 보강해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에,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부상도 잘 이용해야 하는 거죠. 그 전에 안 다치는 게 최선이겠지만요.”

Q : 정작 본인은 부상이 없었나요.
A : “운동감이 없다 보니 부지기수로 다쳤죠. 제 몸에 임상시험을 한 거죠.”(웃음)
운동에 전혀 소질이 없던 조상호 달리기한의원장은 러닝 입문 4년 여 만인 2024년 9월 울트라트레일드몽블랑(UTMB) 170km를 39시간46분3초 만에 완주했다. 김홍준 기자

그는 2024년에 트레일 러너 꿈의 무대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 170㎞를 완주했다. 39시간46분3초. 상승 고도만 1만m가 넘는다. UTMB는 다른 대회에서 일정 포인트(스톤)를 쌓아야 출전권을 얻기에, '트레일 러닝 대회의 파이널'로 부르기도 한다. “운동 문외한이 아니라면 러닝 입문 3년이면 될 걸, 저는 5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오늘처럼 그냥 천천히 뛰는 게 비법 아닌 비법이에요. 그렇게 차근차근 마일리지가 쌓이면 UTMB가 보일 겁니다.”

조 원장은 "휴식도 운동이고 운동은 회복의 과정"이라고 했다. "수면의 질이 회복의 첫 걸음"이라면서 아침에 인공의 빛 대신 햇빛을 먼저 보고, 밤에는 스마트폰 빛을 보지 말기를 권했다. 그는 햄스트링과 대둔근 스트레칭을 특히 강조했다. 2004년 ‘네이처’는 ‘지구력 달리기와 호모의 진화’라는 논문을 통해 아킬레스건과 햄스트링 등 탄성 좋은 힘줄과 착지 때 충격을 흡수할 엉덩이 근육(대둔근)은 인간이 ‘본 투 런’을 위해 진화된 산물이라고 꼽았다.

봄, 이 ‘호모 러너스’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번 주말에만 11개의 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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