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은 공장으로 출근합니다” 안성 두원정공에 숨 불어넣는 사람들

목은수 2026. 3. 6. 17: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6일 파산했지만 29일 재가동
150여명 “남은 물량이라도 납품할 수 있게”
회사 정리하러 온 관재인에 근로계약서 부탁
창고서 찾은 노즐더미 올해까지 쓸 부품 돼

농기계·탱크 등 기계식 펌프 꾸준한 수요
지부장 “남은 노동자 지키는 것 노조 역할”
귓가에 울리는 소음 들으며 오늘도 근무중

1972년 안성시 대덕면에 설립된 자동차 부품공장 두원정공 전경.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파란불이 딱 들어와요.”

지난달 27일 오전 10시 안성시 자동차 부품공장 두원정공. 디젤 차량에 연료를 고압으로 분사하는 기계식 펌프 생산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각종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공장 위쪽에는 ‘소음지역, 귀마개 사용’이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고,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은 모두 귀마개를 착용한 채 납품 물량을 맞추기 위해 각자 라인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유군상(61)씨는 기계 속 수치를 가리키며 자부심 섞인 목소리로 설명했다. “차의 액셀을 밟는 정도에 따라 엔진에 들어가는 기름 양을 조절하는 기계예요. 자동차와 똑같은 조건에서 펌프 상태를 테스트하는 겁니다.”

두원정공이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은 후에도 돌아가고 있는 모습.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한때 수천억원을 벌어다주는 효자 제품이었던 두원정공의 디젤기관용 기계식 펌프는, 환경규제와 자동차 산업 구조 변화를 거치며 그 가치가 급전직하했다. 아웃소싱과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공장에 사람이 설 자리는 줄었고, 결국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튿 날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아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공장은 돌아갔다. 법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법원이 지정한 파산관재인에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했고, 납품업체와의 거래도 이어졌다. 남아 있는 노동자 150여명은 지난 1월분 임금도 무사히 받았다.

지금 두원정공은 남은 노동자들이 직접 공장을 가동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환경규제, 노사분규, 아웃소싱, 자동화라는 거친 파고 속에서도 수십년 근속한 일자리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완전 자동화된 공장 안의 AI로봇이 작업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시대. 귓가에 울리는 소음을 듣고 땀 흘리며 공장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은 로봇이 절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장을 움직이고 있다. 지하창고의 오래된 자재를 찾아 공장을 돌리고, 해외에서 유통망을 찾는 인간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두원정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두원정공 유군상(61)씨가 부품 상태를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환경규제 강화로 디젤차량 퇴출… 이어진 구조조정

1974년 안성시 대덕면에 설립된 두원정공은 현대자동차·현대위아·모비스 등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며 성장했다. 1990년대에는 자동차 디젤기관용 기계식 펌프를 독점 생산하며 연매출 2천억 원을 달성했고, 노동자 1천200명이 일하는 안성지역 최대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두원정공을 모기업으로 두원공조, 두원전자, 두원중공업, 두원공고, 두원공과대 등 계열사도 생겼다.

그러나 환경규제가 들이닥쳤다. 자동차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디젤 차량의 ‘기계식 펌프’가 ‘전자식 펌프’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IMF 외환위기가 겹치면서 회사는 전자식 펌프 개발을 위해 채용했던 연구직 수백명을 일순간에 해고했다. 두원공고를 통한 신규 채용도 1996년 이후 중단됐고, 구조조정이 이어지며 인원은 600여명까지 줄었다.

사측의 노조 탄압 역시 경영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4년 사측은 인원 감축으로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핵심 기술을 일본으로 아웃소싱했지만, 노조는 버텼고 기술은 다시 회수하지 못했다. 결국 작은 업체에 매각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고, 2018년 처음으로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결국 두원정공은 지난해 말 수원회생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지난 2023년 7월 회사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년여 만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임금을 동결하며 회사가 정상 매각될 수 있도록 기다렸지만, 일부 노동자들이 미지급 임금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노조 역시 파산에 동의했다.

두원정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경영자 없이 노동자들이 돌리는 두원정공 공장

그러나 노동자들은 파산을 시키더라도 남은 물량 납품을 위해 공장을 가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도 이를 승인했다. 회생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노동자들에게 대면 보고를 받아 온 담당 판사는 파산 선고로 15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 순간에 거리로 나앉게 되는 현실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26일 파산된 이후 29일 월요일부터 공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례가 없다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장 근로계약서부터 문제였다. 파산 상태에선 경영자(책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들은 법원에서 매각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정한 ‘파산관재인’에게 계약서를 부탁했다. “회사를 정리하러 온 것이지 운영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며 거부하던 담당 파산관재인은, 결국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월급제 사장에게도 납품업체와의 신뢰를 위해 조금 더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주가 빠져나간 뒤에도 시스템은 유지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두원정공 소속 노동자가 담당 파산관재인과 맺은 근로계약서.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나타났다. 실제 회사가 파산을 하고나니 노동자들에게 ‘주인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엔 지하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있던 ‘노즐더미’를 찾아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일하는 틈틈히 공장 한쪽에 모여 노즐 속 부품들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권영국(59)씨는“회사가 잘 나갈 때 처분하는 것보다 새로 생산하는 것이 더 쉬워 쌓아둔 물량이었는데, 점검해 보니 문제가 없어 스프링·캔노트·일노트 등 품목별로 일일이 분해해 정리했다”며 “부품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도 컸는데, 갯수를 세어보니 5천대 분량에 달해 올해까지는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두원정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다만 공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파산 상태이므로 납품업체가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받을 것이라고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품 공급업체 역시 단가를 올리거나, 현금으로 정산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차도 인도에 기술 개발을 맡기는 등 대체시장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로 눈을 돌리니 보이는 ‘출구’

현재 기계식 펌프는 두원정공과 인도에 설립된 보쉬합작회사에서만 생산이 가능한 실정이다. 두원정공이 문을 닫을 경우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전량 해외 의존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두원정공 연매출이 400억원 이상인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아울러 전망이 밝은 부분도 있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수요가 일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기만 금속노조 두원정공 지회장. 2026.2.27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이기만 전국금속노조 두원정공 지회장은 “산업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계식 펌프가 사라졌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여전히 우리 부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농기계나 탱크 등 방산 분야에서도 일부 사용된다”며 “세계 경제가 호황을 유지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쟁이 발생하면서 재건 수요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우리 부품에 대한 수요도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틈새시장을 잘 공략한다면 폭발적인 성장은 아니더라도 공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수요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남아 있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것도 노조의 중요한 목표라고 이 지회장은 강조한다. 두원정공은 숙련의 기술직 일자리인데, 환경 규제로 자동차 산업 전환이 진행되면서 대량 해고가 발생했다. 이후 자동화라는 또 다른 산업 전환이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은 동일한 직종으로의 전환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는 “회사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아파트 경비나 자격증을 활용한 시설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다”며 “회사 설비는 30여년 전 독일과 스위스에서 들여온 고급 장비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데, 자동차 제조 공장은 이미 자동화가 진행돼 더 이상 채용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일자리는 단순하고 저임금·고강도 노동에 집중돼 있고 괜찮은 일자리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며 “150명 규모의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3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이 삶을 지킬 수 있도록 버티는 것이 노조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목은수 기자 wood@kyeongin.com

Copyright © 경인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