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달군 K뮤지컬…이젠 런던 사로잡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고시원 B103호. 그 방 안에서 터져 나오는 한 사람의 고독한 절규가 곧 영국 런던 무대에 울려 퍼진다. 한국 창작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이 오는 5월 8일부터 6월 6일까지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엘리펀트(Southwark Playhouse Elephant)에서 초연 무대를 올린다.
'더 라스트 맨'은 좀비 아포칼립스가 발생한 서울 신림동 고시원으로 대피한 한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생존자는 좀비 사태를 미리 예견했다며 넉넉한 비축 식량을 자랑하는 등 자신만만하게 대피 생활을 시작하지만, 길어지는 고립 속에서 점차 광기와 고독 사이를 오가며 서서히 피폐해져 간다.
작품은 1인극 형식을 통해 '고독'이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생존자는 휴대전화에 영상 일기를 남기며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100여 분 동안 무대를 이끈다. 좁은 공간에서 이어지는 독백과 노래는 인물의 심리를 더욱 밀도 있게 전달한다.
2021년 초연된 이 작품은 당시 2~3인극 위주였던 소극장 뮤지컬 시장에서 드문 1인극 형식임에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록 음악을 통해 생존자의 희망과 좌절, 용기와 불안을 섬세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전염병과 재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과 맞물리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배우마다 주인공 '생존자'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점 역시 N차 관람을 부추겼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1인 록 뮤지컬로 풀어낸 독특한 형식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작품은 뉴욕과 도쿄에서 리딩 공연을 진행했고 상하이 무대에도 진출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는 5월 런던에서 초연을 한다.

이번 공연에는 영국 연출가 겸 작가 제스로 콤프턴이 드라마터그(극작·각색 담당)로 참여한다. 그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통해 2025년 올리비에 어워즈 최우수 뮤지컬상을 받은 인물로 '벙커 트릴로지' '카포네 트릴로지' 등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한국 공연계와 인연을 이어오며 이번 초연의 가교 역할을 했다.
콤프턴은 지난 2월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적 배경과 사회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영미 관객과 연결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전형적인 미국식 뮤지컬 사운드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실험하고 화려한 쇼가 놓치기 쉬운 심리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가족의 기대와 사회적 압박 속에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충은 런던과 서울, 뉴욕 어디서나 통하는 이야기"라며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개인적일수록 오히려 더 보편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장면은 현지 관객의 정서에 맞게 다듬어진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설정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넓히고, 배우의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줄이는 방향으로 각색이 진행된다.
콤프턴은 "감정을 직접적인 대사로 표현하는 한국 관객과 달리 영국 관객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에서 감정을 유추할 때 더 크게 공감한다"며 "캐릭터가 울지 않아야 관객이 비로소 운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 작품이 한국적이라는 점 자체가 영국 무대에서 가장 큰 차별점"이라며 서울 신림동이라는 배경과 작품 속 한국적 요소들은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각색해 토니 어워즈를 받은 '메이비 해피엔딩' 역시 서울이라는 배경은 유지하면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넘버의 비중을 줄이는 방식으로 현지화를 진행했다. '더 라스트 맨'이 그 뒤를 잇는 K뮤지컬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이번 공연은 정식 개막에 앞서 작품을 시험하는 트라이아웃 공연이다. 일부 관객에게 먼저 작품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 반응을 확인한 뒤 본 공연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이다.
이현재 네오프로덕션 프로듀서는 지난 2월 인터뷰에서 "트라이아웃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라 공연 직전까지 투자를 병행하는 방식"이라며 "최근 런던에서는 캐릭터의 정서가 깊고 드라마가 강렬한 작품이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고, 전통적으로 연극 중심이던 소극장 시장에서도 뮤지컬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런던에서는 다른 한국 창작 뮤지컬의 진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시조가 금지된 가상의 조선을 배경으로 백성이 시조와 춤을 통해 자유와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9월 8일 예술경영지원센터 'K뮤지컬 영미권 중기 개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런던 웨스트엔드 질리언 린 시어터에서 콘서트형 쇼케이스 '스웨그 에이지 인 콘서트'로 무대에 올랐다. 본 공연보다 50분가량 축약한 100여 분의 러닝타임으로 진행됐다.
질리언 린 시어터는 1300석 규모의 웨스트엔드 공연장으로, 세계적인 뮤지컬 '캣츠'가 초연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제작진은 향후 170여 분의 전막 공연을 목표로 영국 투어를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 배우와 주요 스태프가 참여하는 오리지널 프로덕션 형태의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이현재 프로듀서는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는 실험적인 신작을 발굴하는 극장으로 유명하다"며 "최근 3년 동안 이곳에서 개발된 작품 가운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로 확장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더 라스트 맨'은 런던 공연에 앞서 한국에서도 세 번째 시즌을 선보인다. 오는 24일부터 대학로 링크더스페이스 1관에서 공연되며 김지온, 홍승안에 더해 김이후, 김찬종이 새로운 '생존자'로 무대에 오른다.
제작사 네오 측은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작품성을 다시 한번 증명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3월 한국 공연의 열기를 5월 영국까지 이어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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