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운의 히코노미] 경쟁자 궤멸시킨 석유 황제 … 세상에는 5억弗 돌려줬다

'학살자.'
그는 제 밥그릇에 손을 대는 자에게 결코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경쟁자를 자근자근 밟아서 시장에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만들었다. 시장은 모두 그의 것이어야 했고, 그 외의 자가 군침을 흘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경쟁자를 죽일 궁리에 밤낮이 없어서 온몸에 털이 다 빠져나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탐욕이 무궁하여서 그는 터럭을 모두 잃었으나 그 대가로 석유시장을 완전히 지배했다. 그는 석유의 황제였다. 미국의 모든 돈이 그의 주머니로 향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사업에서 주린 들짐승 같았던 사내는, 일터에서 돌아온 후에는 '신의 아들'이었다. 성경을 펼치고 신의 말씀을 다시 새겼다. 억만금의 돈은 모두 신의 것이라면서 신의 어린양들에게 다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번 것만큼이나 내놓는 금액도 천문학적이어서 그는 지상에 천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경제사에 길이 남는 회사 '스탠더드오일'로 미국 제국을 기름칠했고, 전례 없는 기부로 미국에 윤을 낸 사나이. 홀로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를 차지한 남자, 존 D 록펠러의 이야기다.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인물로 빠짐없이 거론되는 사나이였다.
작은 점으로 시작한 록펠러
모든 존재는 아주 '작은 점'의 폭발에서 기원한다. 빅뱅이었다. 록펠러를 설명할 때 '빅뱅이론'을 갖다 붙이는 것만큼 적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그의 씨앗은 작고 가난하여서 그만큼 가여운 것이었으니까.
방탕한 파락호와 정숙한 요조숙녀의 씨앗에서 록펠러가 발아했다. 1839년 미국 뉴욕에서였다. 아버지 윌리엄은 허풍으로 뉴욕을 주름잡는 인사였고, 가족에게도 허세를 부리는 걸 멈추지 않아서 큰돈을 벌어오겠다며 몇 달 동안 집을 나서서 돌아오지 않기 일쑤였다. 약조한 돈은 만무하고, 윌리엄은 빈털터리였다.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면서 사생아를 여럿 낳아 자손이 많았으므로 완전한 빈손은 아니었다. 윌리엄은 그렇게 가족을 떠나 버렸다. '떠났다'보다는 '버렸다'에 방점이 찍히는 행보였다.
품행이 바른 어머니 일라이자는 이 고통 속에도 신의 뜻이 있을 것이라면서 남편의 호색 행위를 반면교사로 자신의 행실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았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를 것을 훈육했다. "일하고, 저축하고, 베풀라"는 목사의 말씀을 뼈에 새겼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서 록펠러는 그녀를 본보기로 하느님의 양으로 살기를 맹세했다. 무료 공립학교에 들어가 회계를 공부하고, 밤에는 집안일을 거드는 든든한 아들이 록펠러였다. 일라이자는 신의 저주와 같은 남편으로부터 신의 축복인 록펠러가 태어난 신묘함에 탄복했다. 록펠러는 어머니의 어깨를 짓누르는 가난이 싫었다. 고작 열여섯 살 때부터 일터에 나갔다. 클리블랜드 농산물 위탁 회사 휴잇 앤드 터틀(Hewitt & Tuttle)이었다. 일개 회계 보조원이었으나, 그의 업무 능력은 남달랐다. 농산물 운송료 협상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서였다. 회사의 군살을 줄여서 조직의 움직임이 재빨라졌고, 규모도 그만큼 커졌다. 록펠러의 월급은 매해 올라갔다. 농산물이 수확되고 유통되고 시장에서 팔리는 경로를 모두 꿰뚫었으므로 동업자와 어엿한 자기만의 회사를 차렸다. '클라크&록펠러'였다. 농산물 위탁판매를 업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의 나이 고작 스무 살이었다.
전쟁, 록펠러에겐 축복이었다
신은 그의 사업을 축복하는 듯이 록펠러에게 선물을 안겼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져서였다. 전쟁은 총만큼이나 밥이 중요한 것이어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북군은 농산물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클라크&록펠러'의 수익이 급증했다. 록펠러의 정신은 언제나 또렷해 성공에 취하지 않았다. 이번 성공이 '업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단발성 행운'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농산물 위탁업 대신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렸다. '석유 산업'이었다.
1860년 이전까지 세계를 밝히는 건 고래였다. 향유고래기름은 기계 속에서, 부잣집 램프에서 타올랐다. 포경선은 매일같이 대해(大海)를 누비며 집채만 한 고래에 작살을 던졌다. 고래를 구한 건 '검은 물', 석유였다. 땅속에서 길어 올린 원유(Crude Oil)를 불에 가열하면 등유가 뽑아져 나왔고 고래기름만큼이나 활활 타올랐다. 그만큼 훌륭한 에너지원이라는 의미. 점점 더 많은 사업가가 고래의 바다에서, 석유의 미국 들판으로 눈을 돌렸다.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서는 거대한 포경선, 고래의 꽁무니를 쫓을 수 있는 감, 배짱이 두둑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다. 석유 채굴은 그저 삽과 곡괭이면 충분했다. 석유로 큰 부를 이루겠다는 뜨내기들이 너도나도 삽질을 해댔다.
허풍선과 다름없는 이 치들은 막 파낸 검은 물이 "진짜 고품질 등유"라면서 마구잡이로 팔아댔고, 순진한 사람들은 고래기름보다 저렴한 가격에 눈이 돌아서 "나도 부자놈들처럼 램프 한번 써보자"면서 덜컥 사들였는데 램프에 검은 물을 담아 성냥불을 붙이자 기다렸다는 듯 폭발해버렸다. '정제(Refining)'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폭발 사고는 하루가 멀다고 벌어졌다. 사람들은 검은 물에서 악마를 봤다. 석유는 '악마의 불'이었다.
록펠러는 뜨내기들이 만든 무질서를 혐오했다. 석유 산업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겠다는 소명 의식이 움텄다. '악마의 불'을 '신의 불'로 만들겠다고 그는 굳게 마음먹었다. 그가 만든 석유 회사가 '스탠더드오일'인 이유였다. 석유의 기준을 만들겠다는 록펠러의 의지.
록펠러는 독일 출신 천재 화학자 헤르만 프라슈와 손을 잡았다. 아주 정교한 정제를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등유는 맑고 고왔다. 안전하게 은은하게, 폭발하지 않고 타오르는 등유가 경이로워서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었다.

경쟁을 혐오한 록펠러
석유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으나 스탠더드오일의 경쟁자는 여전히 여럿이었다. 록펠러는 이 경쟁에 경기를 일으켜서 스탠더드오일만이 독점하는 세계를 새로 그리기 시작했다. 석유시장은 신이 약속한 록펠러의 땅이었고, 이단자들이 존재해선 안 되는 땅이었다.
록펠러는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했다. 등유의 가격을 후려침으로써 선전포고에 나섰다. 경쟁자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제품을 앞세웠다. 1860년 갤런당 58센트던 등유 가격을 1870년 26센트로 떨어뜨렸다. 철도 업자들에게 막대한 배송을 약속하면서 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텅 빈 기차가 두려운 업자들은 스탠더드오일로 가득찬 기차가 기껍고 반가워서 록펠러에게 경쟁사의 배송 현황까지 갖다 바쳤다.
공포에 떨던 경쟁자들 앞에 록펠러가 나타났다. 인수·합병을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록펠러의 표정은 단호했다. "회사를 넘기든가, 파산하든가." 1872년 단 3개월 사이 클리블랜드에 있던 26개의 정유사 중 22개가 록펠러의 손으로 넘어갔다. '클리블랜드의 대학살'이었다. 경쟁의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치어서 그의 털들이 송이째 흩날렸다. 전신탈모증으로 온몸의 털이 다 빠진 것이었다. 세상은 록펠러를 '학살자'라고 불렀지만, 록펠러는 자신을 '정원사'로 여겼다. 스탠더드오일이라는 장미가 돋보이기 위해서 잔가지는 잘려야 하는 법이었다. 록펠러가 만든 에덴동산의 붉은빛이 장밋빛인지, 핏빛인지 사람들은 헷갈렸다.

석유의 왕이 되다
1870년만 해도 점유율이 4%에 불과했던 스탠더드오일은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시장의 90%를 먹어 치운 공룡으로 변해 있었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어서 독점이 완성된 주(State)에서 스탠더드오일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느닷없이 올라가는 기름 가격에 미국 소비자는 악 소리를 냈다.
미국 의회는 이 신음에 놀라 날뛰는 스탠더드오일에 재갈을 물리는 반독점법을 통과시켰다.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이었다(셔먼은 상원의원 이름). 신문쟁이들은 이를 '반(反)록펠러 법'이라고 읽었다.
록펠러는 정치 위에 있는 기업인이었다. 뉴저지에 스탠더드오일 지사를 새로 세워 전국 지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구조를 창조해냈다. 뉴저지에서는 독점에 관한 규정이 느슨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반독점법은 독하고 날카로웠으나 록펠러의 성은 그보다 견고했다. 법은 록펠러 앞에서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법 위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분하고 복받친 사내가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테디 베어의 모델일 정도로 둥글둥글하고 곰살맞은 인물이지만, 그의 속은 야생 곰에 가까웠다. 루스벨트는 매일같이 되뇌었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몽둥이를 지니고 다녀라(Speak softly and carry a big stick)."
루스벨트는 몽둥이를 스탠더드오일에 겨눴다. 1910년 3월 미국 정부는 스탠더드오일을 셔먼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역사적인 법정 다툼인 '스탠더드오일 뉴저지 vs 미합중국' 케이스였다. 1년의 치열한 법정 공방, 그 끝에 나온 연방대법원의 결론은 극적이었다. "스탠더드오일의 행위는 명백히 비합리적이고 약탈적이다. 스탠더드오일은 34개의 기업으로 해체하라." 승리의 여신은 미합중국에 미소를 지었다.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독점 기업의 해체였다.

신의 아들로 돌아가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누가복음 6장 38절)
록펠러는 정치적으로는 패배했으나 경제적으로는 크게 이겼다. 분열된 회사들이 각자 경쟁 체제로 들어가면서 실적이 크게 뛰어서였다. 대주주인 록펠러의 재산도 덩달아 불어났다는 의미였다. 스탠더드오일 뉴저지는 엑손으로, 스탠더드오일 뉴욕은 모빌로, 스탠더드오일 인디애나는 아모코로, 스탠더드 오일 캘리포니아는 셰브론으로 다시 훨훨 날았다. 해체 전 록펠러의 재산은 3억달러였으나, '분할당한' 후 9억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미국의 첫 억만장자라는 왕좌에 앉은 사람은 록펠러였다.
셈할 수 없는 재산으로 그는 신의 뜻을 잇기로 했다. 야수 같은 정신으로 빨아들인 수익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3500만달러로 시카고대를 세운 뒤에는 주로 의료기관에 돈을 댔다. 1901년 설립된 록펠러 의학연구소가 대표적이었다. 1935년 5월, 그가 97세로 눈을 감을 때 그의 총기부금액은 5억4000만달러였다. 수중에 재산은 겨우(?) 2500만달러. 전성기의 5% 미만이었다. 일로써 인류를 석유의 세계로 이끌었고, 기부로써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사나이, 존 D 록펠러. 한때 세계의 모든 걸 가졌던 사나이는 맨몸으로 신에게 돌아갔으나, 인류의 삶은 록펠러 전과 후로 달라져 있었다. 경제 혁신은 물론, 독점에 대한 교훈까지도.

히코노미는 경제라는 어려운 식재료를 역사라는 맛있는 양념으로 요리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경제 근육을 키워드리겠습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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