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정만조의 기록, 진도음악의 심연을 열다

전남일보 2026. 3. 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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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 아속청탁완촉애유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진도장악청 후예들이 연행한 1980년대 진도씻김굿. 김희태 제공

진도 유배인 무정 정만조는 '은파유필(恩波濡筆)'이라는 저술에서 예인 박덕인에게 헌시를 바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歌者年七十餘, 凡歌曲雅俗淸濁緩促哀愉, 無不極善, 廢之二十年餘, 爲余始發云, 又能舞, 尤工於伽倻琴及吹簫笛 (노래하는 이는 일흔이 넘었지만, 노래의 아정함과 속됨, 맑음과 탁함, 느림과 빠름, 슬픔과 즐거움을 두루 갖춰 모두 지극히 뛰어났다. 20여 년간 그만두었다가 나를 위해 처음 다시 노래를 불렀다. 춤도 잘 추고, 특히 가야금과 퉁소·젓대 연주에도 능했다)."

단지 남도 음악을 평한 문학적 찬사가 아니다. 나는 이 구절을 여덟 항(雅·俗·淸·濁·緩·促·哀·愉)의 음악 인식 체계로 보고 있다. 특히 '선(善)'에 도달했다고 선언하는 측면을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단계로 끌어올려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궁중음악과 토속음악의 부단한 교섭이 자리하고 있는데 오늘은 이를 전환구조의 생성 음악이라는 이론으로 풀어본다. 아속과 청탁은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우리 음악의 율려(律呂)를 논할 때 거론했던 사례이기도 하다. 기회를 보아 연암과 무정의 음악 논의를 비교하여 소개하겠다.

정만조는 을미사변에 연루돼 1896년에 진도 금갑도로 유배되었다가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된 후에 사면되어 여러 고위직을 거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 사람이다.

목포시사를 건립하고 중흥하는 일, 해남 등 서남해 일대에서 문학적 활동을 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의 친일행적은 엄중히 비판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가장 천한 계급이었던 당골 박덕인에게 10여 편의 시를 써서 헌사 했다는 점, 그 내용이 당시 진도의 음악을 톺아보는 데 긴요하다는 점이다.

헌사는 단순한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음악을 범주적 좌표계 속에서 이해하는 방식이다. 특히 '무불극선(無不極善)'이라는 결론은 질서의 완결(善) 즉, 음악적 상태가 균형의 극점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어떻게 하나의 음악이 아정함(雅, 아악)과 속됨(俗, 속악)을 동시에, 맑음(淸)과 탁함(濁)을 동시에, 느림(緩)과 촉급(促)을 동시에, 슬픔(哀)과 쾌활(愉)을 동시에 극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 내 관심의 출발점이었다. 기존 음악사 연구로 거슬러 올라 분석의 단초를 잡는다.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을 대칭적 범주로 구분해 온 것이 그간의 형태였다. 궁중은 아청완(雅·淸·緩)의 질서를, 민속은 속탁촉(俗·濁·促)의 생동성을 대표한다고 이해된다.

이 구도 속에서 진도음악은 대체로 '민속적' 범주에 배치된다. 그러나 정만조는 탁(濁)과 촉(促)과 유(愉)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아(雅)와 청(淸)과 완(緩)을 포괄하는 총체로 본다. 이를 풀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다.

내가 제시하는 가설은, 진도 음악이 궁중과 민속의 병치가 아니라 양 범주의 상호 이동을 통해 형성된 구조라는 점에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전환구조(轉換構造)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대립 항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상대 항을 내포한 채 단계적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 동적 형식 원리 즉, 생성형 음악이라는 뜻이다. 전환구조는 맥락에 따라 기업의 사업전환이나 구조개선, 마케팅 전환율 최적화 등 다방면의 핵심적인 변형 과정을 의미하는 용어인데 음악적 변용의 의미로 차용한다.

30여 년 전 권오성 교수가 제안했던 생성 개념을 다시 차용하고, AI의 생성구조론까지 탑재하는 맥락이다. 정만조의 기록은 이 전환구조를 압축한 밀도 높은 개념적 증거에 해당한다.

전환구조론(轉換構造論)의 제창-한국 음악 형성의 생성 원리
나는 위 문장을 출발점 삼아서 궁중 장악청의 제도적 미학, 진도 신청(장악청)의 판 구조, 산조의 형식, 그리고 박덕인에서 박종기 및 박동준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심화를 분석해나간다.

특히 재인청, 무부청 등 신청의 이름이 지역적으로 분화된 풍경 속에서 진도만 특별히 장악청이라는 이름을 썼던 내력에 주목한다. 궁중음악 문법에 만중삭(慢中數)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통적으로 이를 삼기형식(三機形式)이라고 하는데, 19세기 말 산조라는 형식이 구성되면서 이를 차용하거나 적어도 인용한다.

박동준과 박석기 이전에 이미 김창조 등이 산조형식을 고안했던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진도는 유배자들의 격조 높은 음악 미학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지역이다. 구체적인 단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는 무정 정만조가 당골 박덕인에게 헌사했던 8개 낱말 속에 그 내력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진도 신청(장악청)의 판은 궁중음악의 문법을 인용 혹은 인유(引喩)해 실천한 단체였다. 음악만으로 말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겠으나 무정보다 1세기 전에 유배 왔던 유와 김이익 등이 진도의 풍속 전반을 뜯어고치려 했던 내력들을 참고하면 내 주장이 어떤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만조가 열거한 '아속청탁완촉애유'는 단순한 형용사가 아니다. 그것은 음악을 구성하는 네 층위-가치, 음색, 시간, 감정-를 가로지르는 좌표계이다. 그는 박덕인의 음악이 그 어느 항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든 항을 극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극선(極善)'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이동을 완결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동을 통해 생성한 균형이다. 박덕인에서 아들 박종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 감각이 역사 속에서 심화되고 정밀해진 과정이다. 이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조화'라기보다 '통과'이다. 항들은 중간값으로 절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극점을 향해 이동한 뒤 다시 재배치된다. 이 이동의 반복 속에서 형식은 심화된다. 전환구조론은 진도 음악만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 문화 형성의 생성 원리를 포괄한다. 예컨대 판소리의 느린 대목과 빠른 대목의 교차, 굿의 애도와 신명의 이동, 강강술래의 응축과 확산, 민화의 질서와 파격 등 모두 대립 항의 고정이 아니라 이동을 통해 형성되는 생성형임을 알 수 있다.

이 이론은 장차 음양 철학을 재해석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전환은 음양의 교대가 아니라 음양의 내적 침투이다. 김지하가 말한 여율(呂律)도 전복이 아닌 전환의 생성으로 보는 것이 맞다. 정만조의 기록은 이 운동을 개념적으로 포착한 문헌적 증언이다. 그는 진도에서 들은 음악을 궁중의 언어로 번역하되 그 언어를 민속언어로 확장하였다. 그가 병렬한 여덟 항은 대립을 넘어서 이동을 포착했다.

그가 붙인 '무불극선(無不極善)'은 이동의 완결을 의미한다. 나는 이를 통해 진도 장악청 전통과 박덕인·박종기·박동준의 심연이 단순한 지역 예술의 탁월성을 넘어섬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세운 전환구조론은 이러한 원리를 개념화한 이름이다.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불리는 박종기-이진원의 박종기평전 표지사진

남도인문학팁

진도문화원 인문강좌, 박덕인에서 박종기·박동준으로-전환구조 역사적 응축과 심화

2026년 3월 27일 진도문화원(원장 오판주) 인문학 강좌를 오픈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가 첫 문을 연다. 정만조의 기록 속 박덕인은 이미 완성된 음악가로 등장한다.

그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다시 노래를 시작하였고 노래뿐 아니라 춤과 가야금, 퉁소와 젓대에 능했다고 기록되었다. 이 다기성(多技性)은 단순한 재능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전환을 수행하는 신체의 총체성을 가리킨다.

본 지면에서는 맛보기만 나열하고 약하였지만, 진도 장악청(신청)의 맥락이 박덕인에게 어떻게 펼쳐졌는지, 이것이 아들 박종기에게 산조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상속되고 재편됐는지, 또한 거의 드러나 있지 않지만 박동준이 장악청이라는 단체를 매개로 어떻게 박덕인의 문법을 상속받았을지 등을 한국 음악 전환구조론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박덕인의 전환은 판(신청)의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형태였다. 정만조가 이를 여덟 항의 범주로 포착했다. 아들 박종기의 시대에 이르러 전환은 독주 형식의 내부 논리로 고착된다. 진도 음악의 탁월성은 특정 지역적 색채에 있지 않다.

그것은 대립 항을 통과하며 균형을 재구성하는 능력이 세대에 걸쳐 심화된 데 있다. 유배와 토속의 상호 전환이다. 정만조가 '무불극선(無不極善)'이라 한 이유는 바로 이 역사적 축적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 올 한해 다양한 분야의 특강이 이어지니 관심 있는 분들은 진도문화원으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