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서 주식 안 했다고? 그래서 더 해야 하는 5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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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있던 2013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을 내놓으면서 정리한 공식이다. 지난 몇백년간 세계 주요국의 역사를 되돌이켜보니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크다'는 간단한 공식으로 요약된다는 것이다.
기존 자산소유자들의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자산수익률이 높은 사람에게 더 유리한 여러 조건들이 형성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보유자는 더 부유해지고 아닌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경향이 지속되고, 그로 인한 불평등 확대와 사회적 갈등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혁명이나 전쟁이 터지더란 얘기다. 쉽게 말해 땀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피를 보더라는 '땀과 돈과 피의 세계'다.

피를 보지 않기 위한 피케티의 해법은 자본수익률을 억제하라는 것이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을 어렵게 하거나, 그렇게 번 수입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수준의 누진세 도입 등을 통해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을 사회로 환수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여기엔 땀이 버는 돈이 진짜 가치있는 돈이다,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다, 라는 도덕적 단죄까지 포함되어 있다.
'21세기 자본'은 전세계적으로 50만 부 이상, 한국에서만도 1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면서 화제도 모았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주장이 관철된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피케티'와 '21세기 자본'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어졌다.
자본수익률,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책이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광수네 복덕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광수 대표는 이 책에서 피케티식 해법을 두고 "너무 전통적인 방식이고 저항이 거세다"라고 평가한다.
이 대표의 대안은 무엇인가. 발상의 전환이다. "차라리 모두가 자본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자본수익률이 높은 건 안 좋으니까 억제하고 줄이자고 얘기할 게 아니라, 그 좋다는 자본수익률을 모두가 다 함께 누려보자고 접근하는 게 더 현실적이란 주장이다.
그간의 통념으로 진보는 돈을 버는 건 정직한 땀이어야 하고, 그렇기에 주식투자란 실물 경제와 무관한 돈 놀이에 불과하고, 한낱 클릭질 몇 번이나 하는 투기와 불로소득의 온상이라고 여겨왔다. 이 생각을 뒤집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주식투자 앞에다 '진보를 위한'이란 말을 붙였다.

이런 발상의 전환에다 코스피 6,000 포인트를 터치한 시대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또한 큰 인기다. 지난해 12월 발간 이래 지금까지 8만 부 넘게 판매됐다. 판매 속도 또한 빨라서 조만간 10만 부에 도달하리란 예상도 나온다.
책을 낸 21세기북스의 유현기 팀장은 "재테크 관련 책들은 돈과 투자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통적으로 돈 많고 보수적인 독자층을 상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책은 예외적으로 진보적 독자층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왜 하필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인가
눈 여겨 봐야 할 건 미국의 사례다. 미국은 1978년 401k가 도입됐다. 401k는 월급 일부를 떼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고 수익을 노후 자산으로 삼도록 하는 퇴직연금 상품이다. 노후 보장을 목적으로 했는데 401k 도입 이후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 비중은 15%에서 40%로 늘었다. 가계 자금이 이렇게 금융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이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기업들의 혁신이 추진됐다.
반면, 한국에서 주식투자는 투기이자 불로소득이란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돈 얘기 좀 그만하라고들 하기 일쑤다. 그 덕인지 한국의 여유자금 대부분은 부동산에 묶여 있다. 주식 등 투자성 자산의 비율은 전체 자산 중 4%에 그친다. 돈이 부동산에 묶임으로 생기는 여러 문제점 가운데 가장 큰 건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 모두 주식 투자를 하되, 그 대신 짧은 기간 시세차익을 노리는 단타매매 보다 장기 투자를 하도록 하자, 이를 통해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 투명성도 높이자, 정부와 시장 모두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게 이 대표의제안이다.
이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주식시장은 가장 차별이 적은 공간이다. 꾸준히 투자하면 누구나 성과를 누릴 수 있다.
2. 누구나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민주적인 제도다.
3. 진보의 가치를 시장에 반영할 수 있다. 투명 경영, 노동과 환경 같은 사회적 책임까지.
4. 돈은 수단이다. 돈을 많이 벌자는 게 아니라 많은 돈으로 다른 걸 할 수 있다.
5. 한국 가계자산의 65%가 부동산이다. 구조적으로 혁신보다 불평등에 가깝다.
'기업할 수 있는 자유'란 말의 의미
기업할 수 있는 자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자유라고 하면 언뜻 듣기에 대기업들의 자유, 대기업 총수들의 자유, 라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애초 출발점은 그게 아니다. 원래 주식회사 설립은 특권이었다. 국왕의 관심사이거나 의회의 특별허가를 얻은 사업만 주식회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본을 모아 투자하는 큰 사업을 벌인다는 건 대개 특권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관련있는 일들이었다.
이걸 깨부순 게 미국이다. 1811년 뉴욕주는 일반회사법, 유한책임법 두가지 법을 만들었다. 일반회사법은 말 그대로 회사를 보통의 것으로 만들었다.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라도 주식을 발행해서 자본을 모아 모험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유한책임법은 투자한 지분만큼만 주주가 책임을 지도록 책임 범위를 제한했다.

특권층이라거나 특권층에 연줄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실하거나 아이디어가 좋아서 투자자들을 잘 설득할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든 자본을 모아 사업을 할 수 있고, 또 누구나 그 사업에 투자해서 실패하는 경우에도 인생을 망치는 수준으로까진 가지 않고, 동시에 사업이 성공하면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게 핵심이었다.
그래서 일반회사법과 유한책임법은 이후 19세기 중후반, 20세기 초중반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서부 개발과 산업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제도적 변화로 꼽힌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기업을 할 자유,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자유, 누구나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하고, 이걸 한데 모아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주가 차이 나는 이유
최근 연달아 진행한 정부의 상법 개정을 두고 여러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런 우려에 반대한다. 단순 비교사례로 미국 기업 애플과 삼성전자를 든다.
여러가지 중 하나는 자사주 소각. 애플은 배당보다 자사주 소각으로 주가를 유지, 방어하는 편이다. 애플이 최근 10년간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한 액수만 6,000억 달러에 달한다. 발행 주식 수를 38%나 줄인 규모다. 오랜 투자자들에게 주식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배당할 경우 거기엔 세금이 붙지만 자사주 소각은 세금도 없다.

그렇다고 배당을 마냥 소홀히 하는 것만도 아니다. 2024년 기준 애플의 순자산은 570억 달러다. 10년 전엔 1,116억 달러였다. 삼성전자의 순자산은 2025년 상반기 기준 400조원이었다. 10년 전엔 181조원이었다. 10년간 한쪽의 순자산은 줄었고, 다른 쪽은 늘었다. 이는 애플은 돈을 벌면 배당하거나 투자를 했지만, 삼성은 쥐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 때문에 애플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50% 수준, 삼성전자의 ROE는 8~10% 수준이다. 그 덕에 10년간 애플의 주가가 8배 오르는 동안 삼성전자의 주가는 3배 오르는데 그쳤다.
물론 두 업체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뚜렷한 경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회사의 이익을 주주와 나누려는 경향과 그렇지 않으려는 경향. 매번 요란한 배당잔치를 벌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보통 30~40% 정도를 적당한 배당성향으로 본다지만, 2014~2023년 10년간 국가별 배당성향을 보면 캐나다 62%, 독일 55%, 미국 43%, 일본 37%인데 한국은 27%에 불과하다.
이웃 일본의 '자본시장 르네상스'를 보라
이웃 일본의 사례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일본은 가계, 기업할 것 없이 투자보다는 저축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사회다.
이 틀을 깨부수기 위해 노력한 게 2012년 시작된 아베 정권이다.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 ▲사외이사 늘려라 ▲이사회 투명성을 강화하라 ▲ROE를 높여라 같은 방안을 주문하더니 "주가순자산비율(PBR) 1 미만 기업은 상장 유지가 어렵다"는 증권거래소의 메시지까지 나왔다. 한국에선 '연금사회주의'라는 색깔론이 덧씌워졌던 '스튜어드십 코드'도 2014년 도입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일본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 배당 확대 등 소위 'PBR개혁 조치'라는 것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2011년 1만 포인트 수준이던 닛케이 지수가 4만 이상으로 치 솟고 지금은 5만 포인트 대까지 이르렀다. 일본 내에선 '자본시장의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 이재명 정부 또한 기업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주주환원 강화, 상법개정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광수 대표는 그렇기에 이를 '개혁'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정상화' 과정이라 한다. "주식회사는 가족 기업이 아니라 공적 존재라는 사실 그 자체"라는 정상성의 재확인이라는 얘기다.
제도 개선에 맞춘 투자법은
한국 주식시장은 그간 오랫동안 '국장 탈출은 지능순' '박스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악평을 들어왔다. 그 요인 중 하나로 이 대표는 '주가가 이 정도 올랐으니 유상증자나 물적분할 하겠지'라던 분위기를 꼽았다.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으로 회사 지배, 상속, 경영권 유지 등 여러 목적을 위해 계열사들을 만들고 합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를 억제해야 주식시장이 정상화되고, 이는 결국 '주식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기 투자 상품'이 되도록 이끄는 길이다. 그래야 부동산에 과도하게 몰린, 그래서 집값 폭등으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이 강화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이런 시장 여건이 형성된다면, 그런 시대에 걸맞는 투자 원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대표는 이런 것들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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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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