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양회 이후 한중 협력의 새 설계도 [박지민의 중국과 미래]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 구상은 한·중 협력의 '판'을 다시 그리려는 선언에 가깝다. 3월 초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 '양회'에서 발표된 2026년 정부업무보고는 제15차 5개년 계획의 주요 목표와 중대 과제를 별도 장으로 제시하며, 2026년 정책 방향을 그 연장선에 배치했다.
핵심을 요약하면 세 가지다. 첫째, 성장 논리는 '신질생산력(新质生产力)'을 통한 고품질 성장 전환으로 이동한다. 둘째, 그 전환의 수단은 '인공지능+'의 산업 전면 적용, 데이터 요소 제도, 고품질 데이터 집합 구축, 전국 단위 컴퓨팅 인프라(연산력) 모니터링·조정, 오픈소스 생태계 육성, AI 거버넌스 등 인프라 패키지로 제도화된다. 셋째, 계획의 숫자는 실행형이다. 사회 전체 연구개발(R&D) 지출은 연평균 7% 이상, 디지털경제 핵심 산업 부가가치의 GDP 비중은 12.5% 등 목표를 제시하고, '강한 내수(국내 대순환)', '공동부유', '발전과 안전의 통합'까지 묶어 국가 운영의 우선순위를 정렬한다. 이는 기술을 산업으로, 산업을 자본으로, 자본을 다시 기술 혁신으로 연결하는 고속 순환을 제도·시장·인프라 수준에서 고착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양회가 던진 2026년 단기 신호도 분명하다. 중국은 2026년 성장 목표를 4.5~5%로 제시하며, 재정·통화·산업정책을 한 방향으로 정렬했다. 동시에 '인공지능+'를 제조·모빌리티·유통·로봇 등 응용 영역에서 빠르게 상용화하고,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완·확장하는 메커니즘을 강조한다. 여기에 '고수준 대외개방'과 민영경제 활성화를 다시 전면에 배치했다. 외자 유치, 서비스업 개방, 제도형 개방 확대, 공정 경쟁 환경 조성 등은 한·중 협력이 '정부 간 MOU'만으로 성립하는 시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 실제로 이익을 얻는 거래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2026년 정책 프레임을 함께 놓고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도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 AI 추진체계를 정비하며, AI를 산업·공공·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AX(AI 전환)를 정책 축으로 삼고 있다. 또한 2026년 AI 관련 예산을 9.9조원 규모로 늘리고 과기정통부·산업부·중기부 등 부처별 투자를 전면에 배치했다는 점은 '전략'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한국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중심의 범정부 AX 프레임 아래, 제조·중소기업·공공·금융·의료 등 부처별 전환 과제를 묶어 '현장 도입'과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 강점은 제조·품질·규제 대응 역량, 산업 현장 데이터의 신뢰성, 글로벌 공급망 운영 경험이다. 반면 중국의 강점은 시장 규모를 기반으로 한 상용화 속도, 플랫폼과 데이터 요소 제도, 연산력 인프라를 포함한 국가 단위 실행 체계다.
한·중 산업 관계는 이미 과거와 다른 단계에 들어섰다. 2000년대 '한국 공급자–중국 조립기지'라는 수직 분업, 2010년대 중반 이후의 경쟁 관계 전환, 2023년 이후의 '구조적 역전' 구간을 감안하면 수직 분업의 복원은 어렵다. 남는 선택지는 수평적 협력, 즉 공동 문제를 공동 솔루션으로 푸는 구조다. 여기서 협력의 접점은 '정책 구호'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시장'과 '거래 가능한 구조'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첫째, 산학협력은 공동 연구를 넘어 공동 검증으로 옮겨가야 한다. 중국은 산업단지·대학·연구원이 실제 산업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증을 붙이고, 한국은 강한 기초·응용 연구 역량을 갖고도 대규모 실증과 데이터 축적에서 병목이 생긴다. 양국이 공동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협력은 공동 테스트베드, 공동 시뮬레이션 환경, 합성 데이터 기반 검증 체계다. 이때 핵심은 모델 자체가 아니라 표준·안전·데이터 거버넌스다.
둘째, 중소벤처 협력은 수출 지원에서 시장-제품 공동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중국은 국내 시장에서의 빠른 상용화가 곧 글로벌 레퍼런스가 되고, 한국 스타트업은 기술이 뛰어나도 스케일의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공동 파일럿(중국)–공동 고도화(한국)–공동 제3국 확장(동남아·중동) 같은 3단계 모델이 실용적이며, 한국의 AX 예산과 중국의 '인공지능+' 수요를 '과제-시장 매칭'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판매가 아니라 수요를 읽는 조직을 두는 것이 출발점이다. 현지 정부·산업단지·기업·대학·연구원·금융기관·서비스 업체(로펌 등)와 연결된 채널을 통해 수요기술 전달, 타깃 기업 발굴, R&D 수요 전달, 연구직 인재 채용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중국 시장을 '고객'이 아니라 '문제(수요)의 집합'으로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파트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은 설비 투자만이 아니라 규제·인증·거버넌스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 한국은 법·제도·인증·데이터 거버넌스가 강점이다. 투자유치 인센티브와 함께 컴플라이언스, IP, 데이터 이전, 인력 비자·정주, 공급망 파트너 매칭을 묶어야 '고부가 가치'가 만들어진다.
다섯째, 자본시장은 협력의 온도를 바꾸는 레버리지다. 중국은 기술·산업·금융을 하나의 덩어리로 설계해 상업화와 회수까지 연결하려 하고, 한국은 스케일업·회수 시장의 깊이가 과제다. 단순 투자 유치가 아니라 공동 실증을 전제로 한 투자(리스크 감소)와 크로스보더 M&A(기술·인력·IP 결합)를 패키지로 만드는 '구조적 거래'가 필요하다.
여섯째, 기술협력은 선택과 집중이 전제다. 경쟁·안보·규제 리스크가 큰 시대에 협력은 스마트 제조, 디지털 헬스, 로봇·물류, 에너지·탄소처럼 상업성과 사회적 효용이 동시에 큰 영역에서 데이터·표준·검증 체계를 공동으로 만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산업 인프라'다.
결론적으로 제15차 5개년 계획과 이번 양회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인공지능+와 데이터·연산력·오픈소스·거버넌스를 묶어 상업화로 가는 국가 단위 실행 체계를 강화하고 있고, 한국은 국가 AX 전략과 부처별 전환 전략을 통해 산업 현장의 실제 도입을 확산하는 실행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두 체계가 만나는 접점은 정책이 아니라 실증과 거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설계이며, 한·중 협력의 다음 단계는 기술·시장·자본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산업 생태계에서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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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대표는 한·중 산업·기술과 자본시장, 투자·M&A, 정책·기업 협력 생태계를 연결하는 크로스보더 전략 전문가다. 36Kr, BEYOND EXPO, HiredChina, Draper Dragon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피더블유에스그룹(PWS GROUP)을 창업했다. 아시아 최대 로펌 잉커로펌(YINGKE LAW FIRM) 한국 파트너로 활동하며 한·중 기업 자문,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 지원, 양국 간 크로스보더 M&A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유 철강 기업 시노스틸(中国中钢集团)과 중관촌 창업 생태계 핵심 기관인 중국 베이징 중관촌 창업거리(中关村创业大街) 창업 플랫폼 이노웨이에서 근무하며 중국 산업 및 혁신 생태계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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