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하는데 결혼식은 안 하는 '노웨딩 MZ들' [세태+]

김하나 기자 2026. 3. 6. 11:3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천태만상
결혼은 하되 예식 생략하는 노 웨딩
몇 년 전 스몰 웨딩 확산한 데 이어
MZ세대에게 새로 나타난 결혼 문화
높아진 결혼 비용이 계기가 됐지만
더 큰 이유는 결혼의 의미 변화

화려한 조명, 꽃길, 수백명의 하객 앞에서 영원을 약속하던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이를 두고 기성세대는 "결혼의 경건함이 사라졌다"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지만, 당사자인 MZ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에게 노 웨딩은 결핍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자, 결혼이라는 제도를 삶에 맞게 재정의하는 '주체적 행위'다. 노 웨딩에 숨은 변화의 가치를 찾아봤다.

노 웨딩은 말 그대로 예식 자체를 건너뛰고 혼인신고로 부부의 시작을 알리는 형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내년 결혼을 앞둔 박지민(가명·32)씨는 '예식장 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치솟는 비용도 부담이지만,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형식의 결혼식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지민씨는 "남들 다 하는 예식에 수천만원을 쓰는 것보다 그 돈을 집이나 가전제품에 투자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며 "결혼의 주인공들이 서로 축하하는 것이 본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 '청첩장' 대신 '결혼 알림장'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올해 결혼을 앞둔 황민영(가명· 29)씨는 양가 부모님 허락 아래 가족 간 식사로 결혼식을 대신하기로 했다. 그는 "직접 찾아뵙지 못하는 지인들에게는 사진과 글귀를 넣은 간단한 알림장을 만들어 결혼 소식을 전할 계획"이라며 "형식보다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식을 전하고 축하받는 것이 훨씬 마음에 와닿을 거 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결혼 문화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화려한 예식장과 수백명의 하객, 정형화된 절차를 거쳐야 완성되는 '사회적 과업'이었다. 하지만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이 공식이 깨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첫 단추는 '스몰 웨딩(Small Wedding)'이었다. 스몰 웨딩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식 규모가 제한되면서 자연스럽게 소규모·간소화 흐름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결혼식을 아예 생략하는 '노 웨딩(No-Wedding)'까지 새로운 선택지로 등장했다. 노 웨딩은 말 그대로 예식 자체를 건너뛰고 혼인신고로 부부의 시작을 알리는 형태다. 앞서 언급한 지민씨와 민영씨 사례처럼 말이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2024년 미혼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혼 인식 조사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응답자 중 절반(49.2%)이 결혼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와 의견이 맞는다면 생략해도 된다'는 응답이 37.8%, '굳이 필요 없다'는 응답이 11.4%였다.

■ 노 웨딩 이유① 비용의 덫 = 그렇다면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어떤 배경에서 출발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비용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전국 14개 지역의 올해 1월 기준 결혼서비스 평균 계약 금액은 2088만원이었다.

지역별로는 최대 3414만원(서울 강남권)에 달했다. 결혼서비스 총 비용은 예식장 대관료, 기본 장식비, 총 식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평균 계약금액을 합산한 금액으로, 선택 품목(옵션)은 포함되지 않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예식장 대관료만 놓고 봐도 부담은 상당하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은 407만원, 서울 강남권은 최대 694만원이나 됐다. 1시간 남짓한 예식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자 결혼식을 생략하는 '노 웨딩'이 늘고 있는 거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올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결혼 비용 부담이 커질 경우 '결혼식 생략(노 웨딩)'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27.0%로 가장 많았다. '보여주기'를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던 시대는 끝났다는 방증이다.

■ 노 웨딩 이유② 가치관 변화 = 노 웨딩이 부상하고 있는 배경은 또 있다. 무엇보다 결혼의 의미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체면과 형식을 중시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젊은 세대는 결혼을 '행사'가 아닌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노 웨딩 현상 이면에 숨은 가치관의 변화에 주목한다. 허창덕 영남대(사회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과거 결혼식이 가족·친족 공동체를 중심에 둔 공개적 의례였다면, 최근엔 두 사람의 관계와 선택을 중시하는 형태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높아진 비용이 계기가 됐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결혼을 '사회적 과업'이 아닌 '부부 간의 약속'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확산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2030 세대는 형식보다 의미를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노 웨딩은 결혼을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니라, 당사자 중심의 관계 선언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노 웨딩을 선택하려는 젊은 부부 앞엔 여전히 높고 견고한 벽이 남아 있다. 우리 사회에는 번듯한 예식을 치러야만 '정상적인 부부'로 승인하는 암묵적 기류가 흐른다. 개인의 가치관은 변했지만, 사회적 시스템과 기성세대의 인식은 여전히 '예식장'에 머물러 있어서다.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최영은(36)씨의 말을 들어보자. "신랑과 상의 끝에 노 웨딩을 하기로 하고, 웨딩 촬영과 혼인신고로 결혼식을 대신하려 했다. 그런데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예상보다 거셌다. 어른들 입장에선 자식을 결혼시키는 일이 단순히 당사자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제대로 키웠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또 축의금을 일종의 품앗이로 여기는 인식도 여전했다. 부모님 세대에겐 결혼식이 가족의 행사이자 사회적 의례라는 의미가 크다 보니, 결국 선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진|뉴시스]
이런 개인적 경험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듀오가 올해 2월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 간소화를 가로막는 주된 요인으로 '고착화된 결혼 절차(40.6%)'와 '양가 부모님의 전통적 사고방식(26.3%)'이 꼽혔다.

허창덕 교수는 결혼을 새롭게 정의할 때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는 형식적인 예식을 치러야만 비로소 '정상적인 결혼'으로 인정받는다는 사회적 기준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노 웨딩을 선택한 이들은 단순히 결혼식을 생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준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결혼의 본질은 제도적 형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맺는 관계의 내용에 있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을 설계할 것인가'로 기준을 재정의할 시점이다."

노 웨딩은 결혼의 정의를 새로 쓰는 뉴 노멀(New Normal)이 될 수 있을까.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