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과 증권 자금 동시에 늘었다고?…무슨 사연이 있길래

김규식 기자(dorabono@mk.co.kr),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6. 3. 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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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센터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1]
돈의 흐름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는 유동성 장세다. 하루에도 10%씩 등락을 거듭하는 주식시장의 근본원인은 유동성이다. 최근 자금흐름을 살펴보면 향후 주가흐름의 단초가 보인다.

은행부터 살펴보자. 은행 요구불예금이 2월 들어 다시 큰 폭으로 늘었다. 은행 자금이 늘었다면 증시 주변 자금이 줄었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은행 요구불 예금이 늘었지만 증시 대기 자금과 ‘빚투’ 규모 역시 동시에 사상 최대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흐름이 포착된다. 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왔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2025년 12월 말 674조원에서 올해 1월 말 651조5000억원으로 줄었다가 지난달 684조9000억원으로 늘었다. 한 달 사이 약 33조원이 증가했다. 이는 2024년 3월 이후 1년 11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요구불예금은 기업과 개인이 자유롭게 입출금할 수 있는 계좌다. 급여와 상여금, 기업 결제 자금 등 단기 현금이 가장 먼저 모인다. 금융시장에서는 투자에 나서기 전 돈이 잠시 머무는 대표적인 ‘대기 자금’으로 본다.

특이한 점은 은행 예금뿐 아니라 증시 주변 자금도 함께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증시가 크게 오르면 투자 자금이 차익 실현 이후 은행 예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에는 증시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자금과 은행 예금이 동시에 늘고 있다. 여전히 자산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 돈이 금융시장 주변에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늘어나는 증시 대기자금을 나타낸 일러스트. <챗GPT>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 예탁금은 2025년말 87조8290억원에서 올해 들어 증가세를 보였다. 1월 말 약 106조원 수준까지 늘었고 2월 27일 기준 118조7488억원을 기록했다. 두 달 사이 약 31조원이 증가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넣어 둔 돈이다. 시장에서는 증시에 들어가기 직전 단계의 자금으로 본다.

초단기 금융상품으로 분류되는 환매조건부채권(RP) 잔고도 같은 흐름을 보인다. 대고객 RP 매도잔고는 2025년 말 100조2727억원에서 2026년 2월27일 기준 111조0070억원으로 약 11조원 증가했다. RP는 단기 자금을 운용할 때 활용되는 대표적인 금융상품이다. 은행 요구불예금과 투자자 예탁금, RP 잔고가 동시에 증가한 것은 금융시장 주변의 유동성이 크게 늘었음을 보여준다.

은행과 증권 자금이 동시에 늘어나는 이유는 통화량 자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광의통화(M2)는 2024년 12월 약 3899조원에서 2025년 12월 약 4080조원으로 늘었다. 1년 사이 약 181조원이 시중에 추가로 풀렸다.

광의통화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정기예금, 단기 금융상품 등을 모두 포함하는 지표로 시중에 풀린 돈의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통화지표다. 통화량이 빠르게 늘었다는 것은 금융시장 주변에 머무는 자금 자체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은행 요구불예금과 투자자 예탁금, RP 잔고가 동시에 늘어나는 흐름 역시 시중 자금이 특정 자산시장으로 이동하기보다 금융시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2월 기준 광의통화(M2) 추이. <한국은행>
시장에서는 이런 자금 증가의 배경으로 정부의 지속적인 돈풀기와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꼽는다. 특히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면서 관련 기업들이 대규모 성과급과 협력사 결제 자금을 지급했고 이 과정에서 현금이 금융시장으로 유입됐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규모의 성과급 자금을 푼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97조1467억원,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올해 성과급 지급률은 기본급 기준 2964%다. 기본급이 연봉의 20분의 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을 받는 직원은 약 1억4820만원의 성과급을 받는다.

이런 성과급은 기업 계좌에서 직원 개인 계좌로 지급된다. 상당수 자금이 은행 예금이나 금융상품으로 유입된다. 반도체 기업이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납품 대금 역시 금융 시스템을 통해 다시 시장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자금의 다음 이동이다.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지정학 리스크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은 3월 1일 이란을 공습했고 이후 중동 긴장이 높아졌다. 이 여파로 국제 금융시장이 흔들렸고 국내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자는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 예탁금이나 RP 잔고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은 현재 상황을 “자금이 특정 시장으로 이동했다기보다 금융시장 주변에 대기하는 단계”라고 설명한다. 요구불예금과 증시 예탁금, RP 잔고가 동시에 증가하는 흐름이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 자금이 앞으로 어느 자산시장으로 이동할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본다. 증시가 안정되면 다시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 반대로 금융시장 불안이 장기화되면 다른 자산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시장의 특징은 시중에 돈이 많이 쌓여 있다는 점”이라며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경우 이 자금이 어디로 이동하느냐에 따라 자산시장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재범·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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