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10년 뒤, 버티기 10년… 최장수 연재 웹툰 그렇게 그렸어요”[M 인터뷰]
‘이 정도면 노력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지난 20년 뿌듯
차기작 ‘외계인 미스터리’ 준비… 장르 서사물 도전 이어갈것
연재 초반 ‘완성도 떨어지는 그림도 웃음 포인트’ 핑계 댔지만
그림은 만화의 외모와 같은 것… 기왕이면 잘 그릴수록 좋아
‘다른 작가도 완벽하진 않다’ 느낀 후로 마음 속 질투 사라져
괜찮은 성적 꾸준히 내면서… 70세까지 만화 그리고 싶어

태초에 ‘마음의 소리’라는 웹툰이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2006년, 네이버웹툰의 초창기에 연재를 시작해 단숨에 대한민국을 평정한 전설적인 개그 만화. 누적 조회 수 70억 회, 누적 댓글 수는 1500만 개, 회당 평균 조회 수 57만 회를 기록한 이 만화는 ‘웹툰계 전설’이다. 이보다 놀라운 건 네이버웹툰의 시작과 함께한 이 웹툰이 ‘마음의 소리2’를 거쳐 이제는 ‘마음의 소리(였던 것)’으로 변주하며 연재를 이어가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점이다.
한국 최장수 연재 웹툰 기록 보유자. 그 길고 험난한 세월을 버텨낸 조석(43) 작가를 향해 사람들은 ‘웹툰 시조새’ ‘웹툰 화석’이라는 애정 어린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화석이면 어떻고 시조새면 어떠랴. 20년이 지났고 그는 여전히 이번 주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을 지새운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출간된 그의 첫 에세이 제목처럼 그의 삶은 ‘오늘도 마음의 소리’다.
지난달 11일, 조 작가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났다. 웹툰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화요일에 같이 연재하던 동료 만화가가 홀연히 도망갔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웹툰 사이트에 만화를 그리는 일은 한국 만화계를 죽이는 짓이라며 손가락질받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그 시절 이야기. 늘 그렇듯, 살아남았다는 것은 곧 강하다는 증거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 시작은 어땠나요.
“그 당시 냉정히 얘기하면 제 실력으로 출판만화 근처에도 들어갈 수 없었어요. 만화가가 되려면 출판 만화의 도제 체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근데 운 좋게도 저희 형이 만화학과에 다니고 있었고 블로그에 만화를 올려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지난 20년을 돌아본다면?
“주식으로 치면 ‘우하향 그래프’라고나 할까요.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반짝였던 10년과 버텼던 10년. (‘마음의 소리’가 1위를 달리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모든 게 다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노력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라는 뿌듯함이 있긴 해요. 냉정하게 제 미래를 예측해 보자면 앞으로 10년간 어떤 만화를 그리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결정될 것 같아요. 관성대로 계속하면 절대 안 되고, 전례가 없을 만큼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피부로 느끼죠. 차기작도, 지금 연재 중인 작품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사이 독자들도 변했을 텐데요.
“어딘가에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초등학교 때 ‘마음의 소리’를 보던 친구가 내 나이가 될 때까지 연재하는 게 목표라고요. 가만히 계산해보니 지금이 딱 그 시점이더라고요. 그 당시의 오랜 독자들은 이제 나이를 먹고 당연히 만화보다 다른 바쁜 일들을 하러 떠났겠죠.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아요. 유튜브도 있고, 게임도 있고. 대신 그 빈자리를 새로운 초등학생 독자들이 채워줬을 거예요. 저는 그 새로운 세대의 친구들을 위해서 계속 그리는 겁니다. 근데 또 웃긴 건, 그 친구들에게 뭔가 새롭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갑자기 심오한 ‘외계인 미스터리’ 같은 만화를 들이밀면 절대 안 볼 거라는 것도 아주 잘 알아요.”
―혹시 생각하는 차기작이 ‘외계인 미스터리’인가요?
“맞아요. 제가 지금 푹 빠져 있어서요. 아직 편집부와 이야기가 된 건 아니지만, ‘행성인간’ ‘조의 영역’ 같은 제가 쓰는 장르 서사물을 재밌게 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기대에 책임을 지고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숙제죠. 완벽한 제 숙제.”
다시 한 번 서사물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마음의 소리’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2012년, 조 작가는 초대형 물고기가 등장하는 본격 서사물 ‘조의 영역’을 연재했다. 진지하고, 어두웠다.
―‘마음의 소리’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서사물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단순해요. 서사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그리는 거예요. 제 행보를 좋게 포장해주시는 분들은 ‘조석이 개그 만화로 돈을 벌 만큼 다 벌더니 이제는 마이너한 만화를 그리는구나’ 하고 칭찬해주시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조의 영역’을 그릴 때 ‘이걸 연재하고 싶으니까 마음의 소리를 한 편 줄여야지’ 하고 아주 담백하게 생각했거든요. ‘행성인간’을 그릴 때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이걸로 돈을 많이 벌어야지. 정말 모든 사람이 좋아해 줄 거야.’”
―롤모델이 따로 있었을까요?
“자신 있게 ‘슬램덩크’를 얘기하고 싶어요. ‘주인공이 해냈으면 좋겠다’라는 기분을 독자가 한순간이라도 느끼게 하는 그런 만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가훈처럼 마음에 새겨놨죠. 한국 작가로는 돌아가신 고우영 작가님의 만화에서 개그 만화의 센스, 툭툭 던지는 농담조를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인터뷰가 무르익어갈 무렵 찾아온 잠깐의 쉬는 시간. 사인 요청에 그는 망설임 없이 종이 위에 자신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조석’을 쓱쓱 그려 넣었다. 뾰족한 광대뼈와 각진 턱, 간결한 선.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그의 그림체다.
―본인의 그림체는 마음에 드나요?
“연재 초반에는 ‘완성도 떨어지는 그림체에서 오는 웃김이 있을 수도 있잖아’ 하고 핑계도 대곤 했어요. 근데 만화에서 그림은 사람의 외모 같은 거더라고요. 기왕이면 예쁘고 잘생기면 더 좋다. 그래서 간혹 지망생을 만나면 이야기해요. ‘굳이 못 그릴 필요는 없다. 그림은 재미없는 만화도 재미있는 만화로 만들 수 있는 마법 같은 도구다.’”
―오랜 시간 연재하며 겪은 징크스도 있나요?
“엄청 많았죠. 작가에게 강박이 가장 심하게 생기는 건 잘 되는데,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를 때예요. 내가 왜 잘 되는지 알면 차라리 ‘아, 나 천재인가? 나 정말 무궁무진하구나!’ 할 텐데,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환호해주니까 아주 사소한 것부터 다 신경이 쓰이는 거죠. 요새요? 징크스는 무슨…, 빨리 마감하고 누워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요.”
―출판 만화에서 웹툰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인공지능(AI) 시대, 완전히 다른 형식의 만화가 등장할까요?
“네이버웹툰 관계자가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지만, 등장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생기면 새로운 걸 상상해볼 수 있잖아요. 웹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어요. 가로로 긴 컷으로 눈만 강조해서 그리고 싶은데 세로 스크롤 화면에서 그럴 수 없으니 한계에 맞춰 새로운 연출을 생각해내고, 또 새로운 게 나온다면 작가 입장에선 재밌을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의 10년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런 맥락이에요. 못하면 도태되는 거죠.”
―20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다른 만화가를 질투하던 시기도 있었나요.
“버텼던 10년, 그 기간에는 확실히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계속 부러워하다 보면 작가가 망가지거든요. ‘나는 이걸 잘하는데, 저 사람 하고 다르니까 내가 틀렸나 보다’ 지레짐작해서 내 장점을 지워버려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뭘 지웠는지 삭제 내역조차 없는 거예요. 지금은 뭐, 저보다 먼저 검색되는 ‘조석 간만의 차’ 정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역할은?
“웹툰 산업을 이끌 ‘외모지상주의’나 ‘패션왕’, 예전에 제 ‘마음의 소리’ 같은 작품을 그리진 못하겠지만 ‘나도 20년 그리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안정적인 모습은 보여줘야 한다고 봐요. 마음의 소리를 언제까지 연재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예전엔 50세에 은퇴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리다 보니까 계속 만화를 그리고 싶네요. 나중에 한 70세쯤 됐는데, 네이버웹툰에 연재할 역량이 안 되면 제 SNS 같은 곳에 공짜로 올리면 되죠, 뭐.”

■ 조 작가의 대표작 5편
마음의 소리 1, 2(2006∼2020, 2023∼2025)
―조석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2000년대 개그 웹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차가운 도시 남자’(차도남) 등의 유행어를 남겼다. 15년간 연재 후 완결됐지만, 2023년 ‘시즌2’로 재개해 3년을 더 연재했다.
조의 영역(2012∼2013, 2017∼2019)
―조 작가가 도전한 첫 서사물이다. 초대형 물고기가 출현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장르 서사물로 이루어진 ‘조석 유니버스’의 시작이다.
문유(2016∼2017)
―유일하게 영화화된 조 작가의 작품이다. 달에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 ‘문유’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2022년 중국에서 ‘문맨’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돼 7000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행성인간(2019∼2021)
―조 작가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언급한 ‘행성인간’. 인간의 몸이 하나의 ‘행성’이라는 설정을 가진 스릴러 만화다. ‘조의 영역’의 과거 시간대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계관이 확장됐다.
마음의 소리(였던 것)(2024∼)
―조 작가가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리던 ‘너는 그냥 개그만화나 그려라’가 ‘마음의 소리 2’로 정식 연재된 뒤에 더 낮은 퀄리티로 인스타그램에 게재하던 ‘자투리 만화’. 이마저 네이버웹툰에서 정식 연재가 결정돼 현재까지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신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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