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넷플과 10조원대 독점 계약… ‘슈퍼갑’ IP 사업자로 성장하는 소니
CULTURE & BIZ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최근 넷플릭스가 할리우드 적자인 워너브러더스 인수에 나서는 등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입지를 넓히기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6년 3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광화문 컴백 라이브 공연을 190여 개국에 실시간 중계한다. 플랫폼 제국에서 시작해 이제는 영화사와 방송사 등을 한 품에 넣고 제작, 중계, 지식재산권(IP)까지 아우르는 ‘종합 스튜디오’로 진화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행보에 맞춰 2026년 초에는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SPE)와 새로운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소니가 제작한 극장 개봉 영화들을 극장 상영과 주문형비디오(VOD) 유통 이후 넷플릭스에 독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모든 소니 영화는 극장 개봉 뒤 넷플릭스에서 가장 먼저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를 한다는 의미다. 기존에는 미국과 일부 지역에만 독점권이 있었지만 2029년부터는 전세계에 적용된다. 계약 규모도 70억달러(약 10조원) 이상으로 업계 최대 수준이다. 계약 대상에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닌텐도’ 실사 영화, ‘젤다의 전설’ 등 소니의 주요 작품이 모두 포함된다.
그런데 이번 계약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이번 계약은 영화관 상영과 VOD 유통이 끝난 뒤 ‘페이원’(Pay-1)이라 불리는 구간의 스트리밍 권한을 넷플릭스가 확보하는 구조다. 대신 작품의 저작권과 캐릭터, 세계관, 후속작 제작에 관한 권리, 즉 IP는 소니가 계속 보유한다. 스트리밍 독점 기간도 18개월이다. 18개월이 지나면 해당 작품의 스트리밍 권리는 풀려 소니는 다른 플랫폼이나 방송 채널로 재유통을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최초 스트리밍 상영권을 얻지만 소니는 계속 콘텐츠의 주인으로 남는 형태다.
1980~90년대부터 IP 성장시킨 소니
혹자는 소니와의 계약이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직접 IP를 활용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소니 같은 IP 강자를 유치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한발 물러선 방식을 채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IP 명가 소니의 역사는 깊다. 소니는 1980~1990년대부터 영화·음악·게임을 아우르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해 산하에 많은 콘텐츠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1989년 미국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해 1991년 이름을 바꾼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가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배급을 담당한다. 2025년 넷플릭스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을 주도한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SPA)은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 산하의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SME)는 글로벌 음반사로서 BTS, 아델, 비욘세 등이 속한 레이블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일본 본사에는 애니메이션 전문 자회사 애니플렉스도 있다. 또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는 플레이스테이션과 게임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세계 게임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영화·음악·게임이 세 축을 이루고, 여기에 전자·이미징 기술을 결합해 소니그룹은 IP 생산과 확장에 집중하는 기업집단으로 진화해왔다.
소니는 이런 체제 속에서 ‘브레이킹 배드’ ‘크라운’ 같은 시리즈 작품을 제작하며 역량을 축적했고, ‘스파이더맨’ ‘쥬만지’ ‘고스트버스터즈’ 같은 장기 프랜차이즈도 구축했다. 즉, 한 작품을 유니버스 차원에서 기획하고 영화-애니메이션-상품화-게임-음악으로 확장하는 방식에 익숙한 기업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역시 ‘K-팝×애니메이션×글로벌 팬덤’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IP로 설계됐고, 이런 시도는 소니의 오래된 노하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IP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일본 콘텐츠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소니는 일본 내 여타 콘텐츠 기업들과도 조금 다르다. 많은 일본 영화·애니메이션은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제작된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은 방송사·광고사·출판사·완구업체가 공동출자하는 구조로, 위험은 분산되지만 IP 소유권이 분산돼 확장성은 조금 떨어진다. 소니는 이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판권을 단독 보유해 자유롭게 사업을 펼친다. 자본이 넉넉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할리우드식 스튜디오 시스템을 활용해 IP를 영화·애니메이션·드라마·게임·상품·테마파크로 확장한다.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가 대표 사례다.
소니가 가진 ‘글로벌 협업 능력’도 중요하다. 소니는 여러 국가의 제작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음악 레이블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 시장의 문화적 특성과 팬덤 구조를 이해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프로젝트에서도 한국의 K-팝 정서, 미국과 유럽의 애니메이션 소비 형태, 글로벌 K-컬처 팬덤의 동선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작품을 설계했다.
‘케데헌’ 제작 때는 유연한 선택
그렇다면 이렇게 IP를 잘 활용하는 소니가 왜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제작 때는 넷플릭스에 IP 소유권을 모두 넘겼느냐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천하의 소니라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유연한 선택을 해야 할 정도로 콘텐츠 산업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리스크가 큰 장기 프로젝트였다. K-팝의 세계관, 새로운 캐릭터 개발, 팬덤 지향적 음악 등으로 구성돼 사전 기획 단계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K-팝 기반의 신규 IP라 시장예측도 어려웠다. 그래서 2018년부터 시작된 메기 강의 기획은 제작사와 투자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소니와 넷플릭스가 제작을 결정한 것은 2021년에 이르러서였다. 이후 4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25년 발표되기까지 약 7년이나 걸렸다.

제작이 결정된 2021년은 코로나19 여파로 투자시장이 극도로 위축됐던 때다. 세계 극장 산업은 무너졌고, 초기 개발비가 많이 필요한 장르는 투자받기가 더 어려웠다. 이런 환경에서 소니는 전통적 방식, 즉 시나리오 개발→프리 프로덕션→파이낸싱 확보→외국 배급사와 공동투자로 이어지는 방식을 취할 수 없었다. 글로벌 스튜디오들도 기존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신규 IP 투자는 꺼렸기 때문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팬데믹을 계기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확대하던 때였고, 플랫폼 내 애니메이션 수요도 급증하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장르 실험이나 문화 융합적 세계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호해 충분히 투자할 위치에도 있었다. 결국 소니는 리스크가 큰 신규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넷플릭스와 오리지널 라인업 계약을 선택했다. 즉, 팬데믹 시기라는 특수한 환경, 신규 IP 개발의 리스크, 글로벌 확산을 위한 플랫폼 필요성 등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였다.
소니처럼 오랫동안 IP를 축적해온 기업조차 리스크가 커지는 순간에는 IP 소유권을 플랫폼에 넘기는 선택을 하는 것이 콘텐츠 산업의 현실이다. 우리가 콘텐츠 투자를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IP를 확보하려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 결과를 감당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전략적 우위 가지려면
소니는 ‘슈퍼갑 IP’ 위치에 있어 넷플릭스와 18개월짜리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소니는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다. 플랫폼을 운영하면 방대한 인프라 비용과 구독자 유지 경쟁 부담을 떠안아야 하지만, 소니는 그 위험을 회피하면서도 모든 플랫폼이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넷플릭스와도 협력하고, 극장·게임·애니메이션으로도 확장할 수 있는 폭넓은 선택지를 가져간다.
한국 기업들도 소니 같은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면 제작 능력 제고 외에 다른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자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본력을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1차 스트리밍권을 제외한 상태에서 다른 플랫폼이나 유통 채널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더 필요한 것은 IP를 여러 산업과 매체로 확장하는 협업 능력일 수 있다. 소니는 오랜 시간을 거쳐 영화-애니메이션-게임-음악-완구를 연결해 하나의 IP가 여러 수익원을 만들도록 설계하는 능력을 키웠다. 한국 기업들도 IP를 기반으로 수익을 늘릴 방안을 찾아야 자본을 보강할 수 있으리라 본다. 모태펀드 등 정부 투자가 늘어나도 자체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다면 투자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부 출자 펀드에 대해서는 투자 회수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수익 방안이 있어야 투자가 되는가, 투자가 돼야 수익을 올리는가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어렵다. 하지만 IP를 통해 수익을 내도록 충분히 기다려줄 자금이 있다면 우리 제작사들도 여러 시도를 해볼 가능성이 있다. 천하의 소니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윤지 연구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 총리, 미 부통령 만나 “핵잠·원자력 등 안보협력 합의 이행 속도 내자”
- 브렌트유 100달러 넘었다…전쟁 장기화 전망에 선물 가격도 급등
- 대통령실장·부총리·5선 의원…정치인들의 ‘경기교육감 쟁탈전’ 왜?
- 이란 새 지도자 모즈타바 첫 연설…“호르무즈 봉쇄, 미군기지 공격 계속해라”
- 오세훈, ‘장동혁 2선 후퇴’ 압박 초강수…서울시장 추가 모집 ‘버티기’
- 항산화·디톡스·영양제 루틴…오늘도 나는 ‘완벽한 나’를 샀다 [.txt]
- 망명 철회 이란 선수…엄마의 “돌아오지마, 널 죽일 거야” 만류 들었나
- 8년 품어온 ‘왕사남’…퇴사하고 첫 제작 영화가 1200만
- 좋니? 윤종신의 발라드가 칠언절구를 만날 때 [.txt]
- 주OECD 대사에 ‘사노맹’ 출신 백태웅 하와이대 교수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