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쏟아지는 은하수 보러 젊은 백패커 40명 영월의 겨울 산에 들다 [영월, 자발적 고립]

서현우 2026. 3. 6. 07: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화산 르포

월간<山>이 젊은 백패커 40명과 함께 영월을 찾았다. 주제는 '자발적 고립'.

스스로 고립되고자 태화산을 넘어 조용한 산골짜기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은하수가 쏟아지는 능선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목표. _편집자 주

백패커들이 태화산 신갈나무와 소나무들이 녹지 않도록 품어준 소중한 눈을 따라 오르고 있다.

강원도 영월 태화산은 짙은 산이다. 너무 짙어서 파묻혀 버릴 것만 같다. 이따금 이런 산들이 있다. 분명 산 전체를 놓고 들여다보면 육산이다. 능선도 딱히 두드러지는 암릉지대는 보기 어렵고 모난 데 없이 적당히 부드럽게 출렁거린다. 그런데 자꾸만 발걸음을 삼킨다. 숲도 빼곡해서 산을 더 자욱하게 만든다. 능선에는 소나무와 낙엽송이 우거져 있고, 산허리는 신갈나무가 전쟁영화에서 내리는 화살비처럼 땅에 수북하게 꽂혀 있다.

절로 느려지는 걸음으로 인해 태화산의 진가는 서서히, 정직하게 떠오른다. 다른 명산들이 굽이굽이 속에 절경을 감춰뒀다가 확 드러내며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게 보통이라면 이곳은 다르다. 땀을 쏟은 만큼 산그리메가 만든 깊은 궁곡과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의 명암이 우러난다. 그래서 산림청 100대 명산이다.

4억 년이 만든 동굴, 고씨동굴

이런 태화산太華山(1,027m)을 박배낭을 메고 오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출발하기 직전 모두의 관심사는 짐에 쏠렸다. 해발 1,000m가 넘는 덩치다. 고민 끝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야영 짐을 따로 박지로 보내는 방안을 마련했다. 운행은 가벼운 산행 배낭으로 하면 되기에 한결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산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박배낭을 멘 이들도 있었다. 제각각 저마다의 이유는 있었다. 누구는 "당연하죠"라고 했고, 누구는 "백패커니까"라고 답했다. '가뜩이나 걸음이 무거워지는 태화산인데 왜 더 걸음을 무겁게 만드냐'는 질문에 대해선 머쓱해하며 구태여 답하지 않았다. 걸음이 힘들면 남들보다 더 못 볼 수밖에 없지만, 그 대신 그렇게 제한적으로 본 것에서 더 다르고 깊은 감동과 보람이 온다. 그 미학을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 없다. 아, 물론 어떤 이는 "그러게요?"라며 뒤늦게 배낭을 보내는 방법을 알아보긴 했다.

고씨굴교를 건너 태화산 들머리로 향하고 있다.

백패커들의 산행 들머리는 고씨동굴. 여기서 1,000m 가까이 고도를 한 번에 쭉 끌어올려야 한다. 고씨동굴은 주차장에서 고씨굴교란 이름의 다리 건너 남한강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다. 고씨굴교 입구에는 초소처럼 매표소가 들어서 있다. 관리인은 "등산하는 분들은 표를 사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고씨굴을 보실 거라면 여기서 표를 사신 다음 다리 건너서 보여 주시고 출입하시면 돼요"라고 설명한다.

고씨동굴은 볼 가치가 차고 넘치는 곳이다. 형성된 역사만 4억 년이고 지금도 인간의 눈으로 따라가지 못할 뿐 계속해서 그 기묘한 형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전체 길이는 6km인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구간은 600m다. 그 속에는 희귀한 도롱뇽, 노래기, 나방 등이 살아 동굴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특히 화석으로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갈로아 곤충이 서식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슬픈 역사도 있다. 동굴 이름에 '고씨'라 붙은 건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족이 피란 왔었던 일화 때문이다. 고씨 가족이 이곳에 있는 걸 알아챈 왜군은 입구까지 추격해 불을 놓아 산 채로 포박하려 했고, 그러자 고씨의 부인이 도망갈 틈을 만들고자 연못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바치기도 했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토성, 태화산성 가까워지면 조망 드러나

등산로는 고씨굴 입구 오른쪽 뒤로 나 있다. 한동안 길은 까마득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다. 고요하게 흐르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틈이 없다. 강제로 떼어내 생이별시키려는 듯 가혹하다. 번갈아 나타나는 계단과 바위를 통과하고, 줄난간을 한동안 잡고 오르면 어느새 저만치 아래에 흐르는 남한강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고씨동굴에서 오르는 태화산은 끊임없는 오르막이 이어져 꽤 체력 소모를 요한다.

"아, 역시 육산의 오르막은 정말 지겹네요."

박인희, 김종형씨가 거친 숨을 돌리며 내뱉는다. 모두 부산 출신이다. 부산에서 영월로 오는 길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러자 평소에는 영월을 잘 오지 않았을 거란 물음을 던지게 됐다. 박씨도 빙그레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부산에서 머나먼 강원도까지 오게 되면, 아무래도 태백이나 설악처럼 더 이름값 높고 암릉도 멋진 산을 가게 되죠."

"사람들이 이 분을 '돌친자'라고 그래요. 바위산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김씨가 날것의 한마디를 거들자 박씨가 팔꿈치로 쿡 찌른다. 그 모습을 보고 "그러면 태화산이 영 맘에 안 들겠다"고 하자 놀란 토끼눈을 하고 손사래 친다.

"지겹다는 게 곧 싫다는 얘긴 아닌데요? 오늘 이렇게 태화산을 오르게 돼서 정말 좋아요. 원래라면 저희가 선택하지 않았을 산을 이런 행사를 계기로 오게 된 거니 오히려 더 좋죠. 어차피 골산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백패킹 스팟으로 이동하는 어프로치이자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행복하게 걷고 있어요."

태화산은 전체적으로 육산이지만 약간의 바위지대도 통과해야 한다. 

태화산도 눈치는 있다. 이 정도로 객이 노력했으면 선물을 내줘야 한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태화산성삼거리에 이르자 그저 가파르기만 했던 능선이 조금씩 잠잠해지며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탁월한 조망이 간혹 열리기 시작한다. 삼거리에서 태화산 정상 방향이 아닌 북쪽은 잠깐 내려서면 태화산성인데 이곳은 삼국시대 토성으로 인근 산세와 영월 읍내가 한눈에 들어와 적을 감시하기 좋았다고 한다. 둘레가 1,200m 정도였는데 대부분 터만 남았다. 지금은 벽돌이 아닌 숲으로 세워진 벽이 성을 이뤄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신비로운 신갈나무숲에 남겨진 궁예의 자취

유난히 가물었던 겨울 탓에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눈도 능선 응달 곳곳에 야무지게 쌓여 있다. 백패킹 크루 '더블월' 팀과 오진곤 코너트립 대표팀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향해 신나게 달려 나간다. 특히 더블월 팀의 경우 박배낭에 둥그런 양은밥상을 짊어진 정동식씨가 눈길을 끈다. 더블월은 2022년 창설된 오픈톡 크루 모임으로 '지킬 건 지키는 백패킹'을 지향한다고 한다. 이들은 양지바른 곳이 나타나면 바로 밥상을 펼치고 주전부리와 와인을 놓고 풍류를 즐겼다. 풍류의 고장 영월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큰골로 내려서는 날머리는 신갈나무숲이 아름답게 우거져 있다.

큰골삼거리로 줄달음치는 길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 잘생긴 소나무를 남한강과 겹쳐서 볼 수 있는 조망 터가 여러 곳 나온다. 대신 태화산 등산로가 한창 개척됐던 20~30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과거엔 남한강이 주연을 맡고, 소나무가 화각의 구석에서 조연으로 살짝 멋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역전됐다. 소나무가 웃자라 화려한 액자프레임이 돼 남한강을 담아낸다. 전망대란 안내판이 붙어 있는 지점이 화룡정점. 고꾸라질 것 같은 고도감으로 남한강을 내려다보는데 그 주변을 소나무가 두 손으로 받쳐 안아 올린다.

간만에 설산 산행을 즐기며 계속 정상으로 향한다. 영월은 1,000m급의 높은 산이 많으면서 또 강원도의 다른 깊은 오지보다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 눈이 귀한 겨울에 가벼운 설산 산행을 즐기기 좋다.

태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백패커의 힘찬 발걸음에 눈이 쏟아져 내린다.

도착한 태화산 정상에는 정상석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영월, 다른 하나는 단양에서 세웠다. 두 지자체의 경계 지점이라 나란히 공동경비 중이다. 단양 쪽으로 좀더 내려가면 남쪽으로 소백산자락과 월악, 금수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만 갈 길이 멀다. 다시 되짚어 돌아와 큰골삼거리에서 꺾어 골짜기로 내려간다. 이 길은 마치 썰매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미끄러운 급경사 사면이 능선부터 골짜기 아래까지 활강하도록 닦여 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등산스틱으로 제동을 걸면 천천히 하산한다.

태화산 서쪽 기슭은 모두 어마어마한 신갈나무숲. 범상치 않은 지세에는 비범한 인물이 들기 마련이다. 이 산기슭에 흥교사란 절터가 있었는데 이곳이 궁예가 열 살에 출가했던 세달사라고 한다. 원래 다섯 살 때부터 안성 칠장사에서 지냈다는 궁예가 왜 먼 길을 달려 이곳까지 와서 출가했던 걸까? 그도 태화산 신갈나무숲의 매력에 빠졌던 걸까? 그런 상상의 나래를 꽤 오래 펼치다 보니, 겨울바람에 나뭇가지를 비비던 숲이 침묵에 빠졌다. 어느덧 백패커들이 박지인 '추보삼림'으로 들어선다. <2편 추보삼림 백패킹에서 계속>

월간山과 함께하는 '자발적 고립' 백패킹 행사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40여 명의 백패커들이 참여했다.

산행길잡이

태화산의 능선을 가장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코스다. 고씨동굴 오른편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태화산성삼거리까지 쉼 없는 오르막을 내어준다. 큰골삼거리에서 큰골로 내려서는 길은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는 경사인데다 계단도 많지 않은 흙사면이라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좀더 난이도가 쉽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건 정상 서쪽 흥교를 들머리로 삼는 코스다. 들머리의 해발고도가 600m 정도로 400m만 고도를 올리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한결 덜하다. 흔히 태화산을 1,000m급 산 치곤 쉽다고 하는데 이러한 평은 바로 이 코스 때문에 나왔다.

정상이 목표라면 흥교에서 왕복, 아니라면 고씨굴까지 종주해서 넘어가는 것이 좋다. 다른 들날머리들은 모두 상당한 경사를 각오해야 한다.

교통

들날머리마다 크고 작은 주차장이 있다. 정상에 오르기 가장 수월한 흥교 방면의 주차장은 협소한 편이라 주말이면 정상 인증을 위한 차량으로 북적거린다. 반면 고씨동굴은 워낙 유명 관광지라 큰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수월하다. 태화산을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경우 들날머리를 팔괴리와 고씨동굴로 잡는 것이 좋다. 남한강변을 따르는 버스 노선이 많아서 배차간격이 괜찮은 편이다. 영월터미널에서 10, 12, 12-1, 15, 17, 17-1번 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숙소 및 맛집(지역번호 033)

남한강변에 펜션과 숙소가 많다. 태화산 남쪽 북벽교, 북쪽 팔괴리 일대에 펜션이 다수 있어 전화로 운영 여부 정도만 확인한 후 적당한 가격대를 골라 묵으면 된다. 가장 조용하게 쉬는 방법은 추보삼림(0507-1335-6903)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식사는 고씨동굴 앞에 있는 식당가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동굴칡국수(372-9294)의 칡칼국수와 칡비빔국수(9,000원), 감자전(6,000원), 대영매운탕(372-2989)의 매운탕류(메기, 잡어, 빠가사리, 쏘가리 등 5만~13만 원)와 어탕국수(1만2,000원) 등이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메뉴들이다.

* 등산 지도 _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